공간힘
2017년 9월 9일 ~ 2017년 9월 29일
1 / 9
9월 9일부터 29일까지 오용석 개인전 <홀리 그레이 HOLY GRAY>를 개최합니다. 회화작업을 주로 하는 오용석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작은 크기의 회화작업과 드로잉뿐만 아니라, 벽면을 가로지르는 드로잉을 통해 공간 전체를 화면으로 삼아 작업을 선보입니다. 홀리 그레이 HOLY GRAY에서 '홀리 HOLY'는 고결함이라는 의미보다는 성스러움을 지칭하며, '그레이 GRAY'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사이(Between)의 애매모호함, 명확하지 않은 상태를 의미합니다. 작가는 자신의 성적 정체성과 긴밀한 작업을 이어오고 있는데, 이번 전시에서 특히 이것과 저것, 내부와 외부, 안과 밖이 구별되지 않은 무경계적인 것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바라보며 이를 어떤 '성스러움'으로 드러내보고자 합니다. <리드마이립스>(합정지구, 2017)에서 처음 선보인 롤드로잉 연작을 이번 전시에서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전시 오픈식은 9월 9일 토요일 6시입니다.
작가노트
홀리그레이 HOLY GRAY
신성한 유기체로서의 신체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스의 유토피아적 신체는 환영의 형태로 포르노그라피에서 관찰될 뿐이다. 신체와 신체 사이의 결합을 가로지르는 툴들은 이미 세상의 모든 것들을 픽셀화하였고, 우리는 그것을 자연스레 실재라고 여긴다. 하지만, 기술과 과학의 도움으로 만들어진 신체의 확장된 경계들 사이에서 우리는 여전히 완벽한 유기체로서의 정체성을 꿈꾼다. 그 노스탤지어적 지점에서 현실의 비극이 시작된다.
완벽한 남성 혹은 여성, 아버지, 가족, 민족, 인종, 신과 관련된 유토피아적 고대를 현재적 노스탤지어로서 부활시키려는 시도들은 지독히 파괴적이다. 상상하는 세계가 완벽해질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타자들의 세계를 파괴하려는 광폭한 시도들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지구 곳곳에서 진행중이다. 수많은 ‘곡성 哭聲 2016’의 ‘종구’는 자신을 변화시키는 대신 주변을 초토화하기로 결정한다. 그 지치지 않는 숭고한 에너지는 인류의 생존을 위해 꼭 필요했던, 마땅히 존경받을 만한 것임에 틀림없다.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것을 하나도 지킬 수 없다는 단 하나의 이유만을 제외한다면.
1985년 도나 해러웨이의 사이보그 선언문을 언급하지 않아도, 테크놀로지가 이끌어오는 현재의 상황은 충분히 기사를 통해 접할 수 있다. 먼 상상 속에 있는 것들이 서서히 구현되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 멀지 않은 미래에 드론이 배달을 시작할 것이고, 거대한 교량을 만들고 있는 3D 프린터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 순간은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분명 자본과 노동 사이의 견제균형점이 생기기 전에 도래할 것이고, 쉽게 더 심각한 자본의 불균형을 불러올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인류 전체가 회색지대에 불과해질 때도 그닥 멀지 않았다. ‘매트릭스 Matrix 1999’에서 시작된 디스토피아에서 인류는, 상상하는 세계를 경험하면서 발생하는 전기에너지를 제공하는 발전소로 지구 위에 존재한다. 더이상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 아닌 시점을 이미 우리는 상상했다.
그레이 혹은 회색은 중간 혹은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는 지점이라 일컫는다. 칼라로서는 과거를 상징하기도 한다. ‘리히터’의 그리자이유는 과거를 직시하도록 만든다. 보통 우리는 화이트와 블랙을 꿈꾸지만 모두 블랙에 가까운 회색지점, 화이트에 가까운 회색지점에 위치할 뿐이다. 온전한 화이트, 블랙은 미적분의 1과 0처럼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 1과 0사이는 무한한 경계의 세계이고, 실제로 우리가 발을 디디고 있는 곳이다. 하지만, 1과 0의 지점, 화이트와 블랙의 지점에 있다고 믿는 이들은 경계 사이의 무한을 인지할 수 없다.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을 지각할 수 없다.
성스러움은 신성하고 아름다운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홀리’의 세계는 오히려 성유물의 세계와 가깝다. 성유물은 평소라면 혐오의 대상일 신체를 성스러움으로 끌어올린다. 기괴함에 혹은 보잘것없음에 성스러움을 부여하는 그 프로세스 자체가 기묘한 성스러움을 뿜고 있다. 조도로프스키의 ‘홀리마운틴 Holy Mountain’처럼 성스러움은 홀리마운틴으로 가는 여정에 존재할 뿐이다. 그 목적지에는 인간이 만든 우스광스러운 도상과 신에 대한 상상만 존재한다.
태양의 흑점 외부에 조금 덜 어두운 부분을 반암부 penumbra라고 부른다. 빛의 영역에 어둠이 존재하는 것이 의아한 것처럼, 어둠의 그늘진 부분이 어둠보다 더 밝다는 것 역시 흥미롭다.
자연이 신적 의지의 발현이라면, 우리가 위치하는 곳은 영원한 중간지대이다. 우리가 여분과 중간지대를 사랑할 수 없다면,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파국 뿐이다. 우리는 태양에서 살 수 없으며, 진공의 우주에서 살 수 없다. 태양이 지구를 돌든, 지구가 태양을 돌든 상관없이 이것은 명백하다. 인류는 애초에 1과 0의 지점, 화이트와 블랙의 지점에 있지 않았다.
이번 전시의 작업들은 이 작은 공간 안에서 존재하는, 그림자와 벽의 사이, 조명과 조명의 사이, 공간의 틈과 틈 사이, 영상과 드로잉의 사이, 드로잉과 글의 사이, 사고와 드로잉의 사이, 페인팅과 사고의 사이, 페인팅과 벽 사이에서, 그 정의되지 않는 시공간과 경계를 구석구석 만져보려고 시도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실날처럼 가는 공기층의 중간지대에서 무한한 경계로 이루어진 중간지대를 꿈꾼다. 경계는 가는 선처럼 보이지만 숨겨진 광활함으로 무한하다. 그 광활함을 경험하는 것은 오히려 경계를 인정할 수 없는 이에게 더 큰 자유로움을 선사할 것이다.
오용석 20170909
출처 : 공간힘
* 아트바바에 등록된 모든 이미지와 글의 저작권은 각 작가와 필자에게 있습니다.
운영시간
월요일 휴관
화요일 11:00 - 19:00
수요일 11:00 - 19:00
목요일 11:00 - 19:00
금요일 11:00 - 19:00
토요일 11:00 - 19:00
일요일 11:00 - 19:00
휴관: 월요일, 공휴일
모든 프로그램은 주최측의 사정으로 변경될 수 있으니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