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 TUM
2026년 6월 2일 ~ 2026년 6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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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독, 오해. 또는 자의적 해석, 어긋난 의미, 미끄러지는 위치. 근사치로 다가가려는 노력은 완수되지 못한다. 말하려고 하는 바는 완전히 그 말일 수 없고, 이해는 영원히 온전할 수 없으며, 같고자 한 것은 절대 동일하지 않다. 문자로 가득 찬 세계 어디에서나 그렇다. 한 문자와 다른 문자 사이는 마치 일 대 일로 번역과 대응이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아주 비슷한 발음과 의미로 다가가는 말은 다른 누군가에게 완전히 다른 말로 느껴지기도 한다. 문자가 만드는 한계에서 태연한 척 굴어도 위축될 수밖에, 문자는 법이 되고 질서로 공공연하게 나타나 세계를 구분 짓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라는 세계 안으로–안으로 들어간다. 외부가 부수되는 장소로써 ‘나’의 안에는 더 깊은 자유가 도사린다. 아득하고 광활한 너머에.
외부 세계에 그어지는 온갖 한계에서 언어와 몸뚱이는 좁은 테두리에 갇힌다. 내가 누구이며 어디서 왔고 무엇을 한다는 설명은 내 입에서 나왔지만 그 말의 방식은 외부의 규칙을 따르고 있어서 때론 자신조차도 스스로를 오독한다. 나를 말하면서 내가 부족해지는 공허로 나는 조금씩 금이 간다. ‘나’의 세계를 말하려는 행위로부터 되려 ‘나’의 세계는 깎이고 왜곡되기 마련이다.
비현실과 비논리를 검증하지 않아도 되는 장소에서 문자는 부차적이다. 그러므로 왕칸나는 제 외피를 그대로 그려내는 대신, 자신의 내부 세계를 널뛰는 키메라(chimera)를 소환한다. 어디에도 태생을 빚지지 않은 채 끝없는 자유만을 지닌 키메라는 왕칸나의 투사 대상이자, 그녀의 세계 안에서 자연 발생한 존재이다. 그저 그렇게 생겨나 그리 존재하는 생명체. 구태여 설명하기 위해 이름이 붙여졌으나 명칭에 끼어 붙은–서구의 신화를 비롯한–맥락을 모두 털어낸, 그저 키메라다. ⟨우리 간 문 There Is A Door Between Us⟩(2026)에서 정면을 향하는 키메라의 선연한 얼굴은 아무것도 개의치 않는 듯 보인다. 작가의 고향에서 구전된 이야기와 지난밤 꿈이 뒤섞인 모습으로 등장하는 가지각색의 키메라는 둥글고 긴 몸과 윤기 넘치는 검은 털을 지니고, 오묘한 표정을 지으며 이 공간을 점유한다. 그렇게 여기는 작가의 내부로, 그의 세계이자 꿈의 한 장면으로 변모한다.
구전과 꿈은 문자의 한계로부터 멀리 위치한다. 개인의 무의식을 반영하는 꿈은 물론이고, 보다 넓은 범주에서 집단무의식은 관념과 상징, 주제와 원형을 종(種)과 공유한다. 작가는 유난히 꿈을 많이 꾼다고 말한 바 있는데, 어느 괴물에게 쫓기거나 먹히는 등의 기이한 꿈의 분위기 혹은 풍경을 그림으로 그려내기도 한 바 있다. 키메라는 그 꿈의 흔적과 더불어 키르기스스탄의 설화를 일부 내포한다. 일례로 ‘알 바르스트(Albarsty, Албарсты)’¹는 ‘받다(take, al)’와 ‘밟다(Bas, step)’라는 뜻이 합쳐진 설화 속 존재이다. 그의 외형에 대해서는 여러 가설이 있는데, 하나는 정해진 모습 없이 검은 털로 뒤덮여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허리가 굽고 젖가슴이 아주 길게 늘어진 노파라는 것이다. 또한 ‘부구 에네(Bugu Ene, Бугу-Эне)는 사슴 어머니라는 뜻으로, 인간과의 사이에서 두 아이를 낳았고 이 아이들이 부구 부족의 시초라 전해진다. 요컨대 ⟨악악 The Best Gift Left⟩(2026), ⟨Mamas⟩(2025) 등에서도 보여지듯이, 이곳의 키메라는 그 모든 무의식 내 실마리가 뒤엉켜 나타난다. 검은 털을 지니고, 어린 개체와 함께 나타나기도 하며 인자함과 서늘함을 동시에 갖고 있다. 집단무의식이 일종의 상속 개념을 포함한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세대와 집단에서의 여성 간 연결, 즉 아이를 낳는 어머니가 실타래로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닐까. 이는 아버지의 법-상징계-과 다른 편에 선 채, 문자와 질서가 아닌 여성성²으로 구성된 세계의 가능성을 상상하게 만든다.
우리는 꿈 안에서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꿈에서 순순히 받아들이는 사건을 설명하려 치면 있지도 않은, 있을 수도 없는 당위를 설명하기 위해 괜한 변명이 덧붙는데, 말이 덧붙고 해석이 가해지면 꿈은 색이 바래버린다. 문자로 적힌 이 장황한 글은 구태스럽게 작가의 세계를 부연하지만, 실상 적확한 설명 같은 것은 없다. 나는 그 안을 잠시 엿보고 방문할지언정, 오롯이 들여다보지 못한다. 각 키메라의 모습과 추상적인 무늬 색상의 숨은 뜻 따위를 알아내려는 노력은 애써 피해 온 언어의 한계를 다시 불러들이는 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저 꿈 안으로 들어가 잠시 머물러 본다. 한 땀씩 작가가 떠내려간 침구 위에 누워 사방의 키메라에 에워싸인 채, 뜨인 눈으로는 영 이해되지 않는 추상적인 형태를 잔상으로 떠올리면서. 두서 없이 흘러가는 상념의 어느 순간에 왕칸나의 꿈 한 조각이 나의 꿈 안으로 파고들지도 모를 일이다. 비록 그것이 눈을 뜬 뒤에 말도 안되는 오독처럼 느껴진다 하더라도!
작가: 왕칸나 @kalyapoka
기획, 글: 한문희(아모) @minimanimunimo
그래픽 디자인: 이유진 @endless_humming
촬영: 이유영 @010_110__10
설치 및 도움: 이유영, 이유진
주최.주관: SPACE TUM
* 아트바바에 등록된 모든 이미지와 글의 저작권은 각 작가와 필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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