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산문화회관
2020년 10월 30일 ~ 2020년 12월 27일
올해 유리상자 전시공모 선정작 네 번째 전시, 「유리상자-아트스타 2020」Ver.4展, 곽이랑(1990년생)작가의 설치작업 주제는 ‘위로의식’입니다. 이 전시는 ‘삶과 죽음’에 대한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만 마냥 무겁게만 다가오지는 않습니다. 작가는 20대 젊은 나이에 암 진단과 항암치료 그리고 30대 초반이 된 최근 원격 전이 판정을 받고 또 어려운 병원을 오가며 힘든 과정을 겪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의 준비도 쉽지 않은 과정임을 알기에 전시진행자로서 안타까우면서도 조심스러웠지만, 다행히도 자신을 주제로 내보이고 담담하게 작업에 임하는 역량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는 결코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은 알지만 죽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작가는 죽음을 오랫동안 직시하고 대면하는 삶을 살아오며 삶과 죽음의 문턱 너머 세상을 설계하고 있습니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스스로의 위로는 작품의 개념이 되었고 삶을 바라보는 의식은 작품을 마주 보는 태도가 되어 화려하지는 않지만 차분하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유리상자 안에 4개의 병원커튼이 높낮이가 다르게 시선을 가로막으며 드리워져 있습니다. 유리상자의 일반적인 설치는 외부의 빛이나 내부의 조명에 의해 작품의 가시성을 살리는 방법을 취하지만 작가는 작품을 온전히 들어내지 않도록 설치하여 관람하기 위해서는 몸을 움직이고 시선을 좌우로 돌려야 하는 불편함을 안겨 줍니다. 다른 사람 즉, 타인의 삶을 엿보는 듯한 이런 행위를 통해 병원커튼 안에 작가의 속살인 작품을 온전하게 보여주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충분한 분유와 약 한가득과 한 줌의 뼛가루”라는 문구가 병원커튼에 희미하게 적혀져 있습니다. 충분한 분유는 삶의 시작이고 약 한가득은 삶의 영위이며 한 줌의 뼛가루는 죽음이란 의미로 나름대로 해석이 되며 커튼 사이로 무덤 혹은 여자의 유방을 형상하는 크기가 다른 라탄줄기로 엮은 바구니가 봉긋이 자리 잡고 마치 해방의 공간인 듯, 아니면 미완의 삶의 공간인 듯, 듬성듬성하게 엮어져 있으며 뒤집힌 바구니 안에는 현무암과 검은 가루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현무암은 작가에게 적출된 암덩어리를 은유하며 이것마저 생명순환의 일부분, 즉 우주의 에너지 순환의 일부분으로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추정하건데, 작가는 ‘생(生)’과 ‘사(死)’의 경계에 대한 자유, 경계선 너머의 세상을 바라보는 믿음 그리고 자신의 불행을 창작활동으로 승화시켜 힘들고 예민했던 감정들을 추스를 수 있었다고 봅니다. 절박한 순간만큼 작업에 대한 집중은 성찰로 나아가는 과정이 되어 내재적인 두려움을 떨치면서 안식을 찾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작가의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의 일기인 이번 유리상자 Ver.4 ‘위로의식’은 삶과 예술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스스로의 질문에 답을 나열한 전시로 관람자에게 공감의 손길을 내밀며 우리가 삶을 대하는 방식을 한 번 더 주의 깊게 살펴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봉산문화회관 큐레이터 / 조동오
작가 노트
Covid-19로 인해 전반적인 생활형태가 이처럼 바뀔것을 우리는 예상할 수 없었다. 이처럼 살아가는 동안 여러 상황들은 우리를 자주 당황하고 방황하게 하지만 늘 그러했듯 또 받아들이고 적응하며 살아간다.
20대 중반 처음 병을 알아 수술 할 당시 한쪽 가슴에 자리잡았던 돌같은 덩어리는 의료폐기물로 버려졌을 것이다. 꼭 이루어져야 할 일이었지만 그건 참 서운한 일이었다. 마치 준비 못한 이별을 맞이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최근 병의 재발로 삶의 감각이 다시한번 크게 휘둘렸지만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것은 뭉툭하면서도 직관적인 결심이었다.
사실 우리 모두는 시한부 인생이다. 겪어보지 못한 죽음을 생각한다는건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일일 것이다. 투병생활을 시작한 뒤로 죽음은 줄곧 내 주변을 맴도는 것 같았고 그것에 대한 의문은 지속되었다. 그러던 나는 우연히 <열역학 제1법칙>이라는 아주 멋진 이론을 발견하였다. ‘에너지는 형태가 변할 수 있을 뿐 새로 만들어 지거나 없어질 수 없다. 즉, 우주의 에너지 총량은 시간이 시작된 때로부터 종말에 이르기까지 일정하게 고정되어 있다.’라고 설명되는 에너지 보존법칙이다. 언뜻 난해해 보이는 이 개념을 나는 ‘언젠가 우리가 죽더라도 그것은 소멸이 아닌 다른 형태로써 우주의 일부가 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 나는 이것이 불교의 윤회사상과 닮은 점이 있다고 생각했고 죽음을 이렇게 이해하기로 하였다.
이런 일련의 상황과 생각들은 내 작업을 지탱하는 에너지가 된다. 척출당한 그 덩어리들과의 미련 가득한 이별을 정리하는 위로의식이 필요했고 우리의 죽음은 소멸이 아닌 다른 형태로 변하여 순환하는 것임을 전하고 싶었다.
곽이랑
참여작가: 곽이랑
출처: 봉산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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