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O
2026년 8월 10일 ~ 2026년 8월 23일
알고 있는 것들 사이로 알지 못하는 것들을 끼워 넣는 것. 추리는 하나의 장면으로 다가가기 위해 여러 가능성이 담긴 가설들을 필요로 한다. 단서와 단서, 그 사이의 빈틈이 맞물리기를 기대하며 수많은 허구의 조각들을 넣어본다. 사건은 이미 일어났고 장면 또한 분명 존재했지만 그것은 누구에게도 온전히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부분을 관찰하고 연결해 가장 그럴듯한 하나의 장면에 도달한다. 그림을 바라보는 일 역시 이 추리의 궤와 같다. 다만 명확한 진실을 재현하기 위해서가 아닌, 점과 선, 면 사이를 더듬으며 실제와 닮되 결코 동일하지 않은 광경을 향해 나아간다.
하나의 미스터리이자 수수께끼를 던지는 유석주의 화면에는 사진으로부터 주워 온(pick) 조형적 단서들이 화면 위로 얹어져(up) 있다. 우연히 눈길을 붙잡았던 몸짓, 시선의 방향, 어색한 간격, 공간의 리듬. 이들은 대상을 재현하기 위한 증거가 아닌 다른 모습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품은 흔적이 된다. 명확한 형상을 갖지 않기에 얼마든지 지워지고, 과장되고, 뒤틀리며 다른 단서들과 연결된다. 우리의 기억처럼, 눈매의 휘어짐 정도나 입은 옷에 적힌 문자보다도 오래 남아있는, 존재의 기척들처럼 말이다. 감정이라기에는 희미하고, 서사라기에는 단편적이지만 쉽게 사라지지 않는 미미한 생명력. 그는 이를 붙잡기 위해 사진을 찍고 그리기를 반복하며 회화 속에 그 기척을 머물게 하고자 한다.
유석주의 먹선은 깎은 연필심에 묻혀 그어졌기에 휘어지는 방향마다 속도가 강하게 실려 있다. 마치 급정거의 순간에 응축된 힘이 남긴 아스팔트의 마찰선을 보는 듯하다. 그러나 그 선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미묘하게 다른 굴곡의 선들이 서로 덧대어져 있다. 선이 울타리 지은 형상들은 완전한 윤곽을 이루는 듯하면서도 언제든 다른 형태로 미끄러질 수 있는, 아이러니하게도 물렁한 경계를 지닌다. 어떤 형상을 붙잡으려는 움직임은 동시에 그것을 방해하고 무너뜨리는 힘이 된다. 얼핏 그의 그림은 무엇을 그렸는지 알아보는 데 그리 어렵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형상을 단언하려는 순간, 그것을 이루던 단서들은 이내 다른 형체를 가지고자 이동하며 판단을 유예해버린다. 시작과 끝의 맺힘은 분명하나 이미지를 확정하기에는 한없이 미끄러지는 선. 서로를 긋고 덮는 먹선과 기름층은 형상과 공간의 경계를 침범하며 물질적으로 뒤섞인다. 파편처럼 흩어진 단상들은 서로를 더듬고 가리키며 하나의 장면을 구성한다. 굳고 확정되기를 미루는 유화의 느린 건조는 그 사이 다양한 층들을 만들어낸다. 기름과 섞이지 못해 맺힌 먹의 방울들, 질척한 기름을 지나치느라 흑색을 잃어버린 선. 이 상반된 물성들은 단일한 물체부터 이들이 펼쳐질 풍경에 이르기까지 인식의 방향을 뒤섞는다. 그렇기에 그의 그림들은 결코 작가가 바라보았던 장면과도, 사진이 기록했던 장면과도 완전히 일치할 수 없을 것이다. 이는 하나의 결론이면서도 끝내 풀리지 않는 사건이며 진실이면서도 거짓인 장면으로 남는다.
추리소설의 마지막에 다다라서 사건은 결국 해결되지만, 독자는 결말을 통해 처음의 장면들을 다시금 읽게 된다. 사건이 끝난 뒤에 비로소 시작되는 추리는 그림을 보는 듯하다. 감상이란 어쩌면 이미 존재했던 혹은 필히 존재할 하나의 세계를 복원하는 일이 아니라, 끝내 닿을 수 없는 장면을 향해 끝없이 가설을 세우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유석주의 회화 또한 그러하다. 그의 그림은 단정된 이미지를 제시하기보다 수많은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화면 위에 남겨 둔다. 그의 그림 앞에서 우리는 정답을 발견하는 대신, 흩어진 형태들을 다시 연결하며 장면을 만들 것이다. 회화는 실제를 복원하지도 허구를 꾸며내지도 않는다. 다만 실제와 허구, 기억과 오차가 겹쳐지는 지점에서 참이면서도 거짓인 하나의 장면을 오래 바라보게 한다
글: 박현윤
작가: 유석주
기획: 유석주
서문: 박현윤
포스터디자인: 유석주 김소현
사진: 신예영
주최/주관: 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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