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I미술관
2026년 8월 20일 ~ 2026년 10월 8일
윤기언은 수묵이라는 전통 매체의 한계와 전형성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그리는 행위’의 본질을 다각도로 탐구해 온 작가다. 그는 오로지 필획의 역동성을 제한한 세밀한 선묘를 반복하는 〈손 연작〉(2008~2016)을 선보여왔다. 이후 붓을 눕혀 한지 표면에 짓눌러 비비고 문지르는(찰준) 역동적인 붓질을 시도하면서 본격적으로 수묵 작업에 빠져들게 되었다.
이러한 전환은 2017년, 역동적 수묵 표현을 바탕으로 한 전시 제안을 계기로 본격화되었다. 손 연작에서 극도로 억제되어 있던 긴장은 이제 화면을 짓누르고 긁는 붓질의 압력과 마찰로 표출되며, 손끝의 미세한 떨림 대신 화면 위에 남는 거친 흔적 자체가 감정을 드러내는 언어가 되었다. 이는 자연스럽게 그리는 대상의 변화로도 이어져, 화면을 채우던 소재는 손이라는 자기 신체에서 벗어나 일상에서 마주치는 풍경들로 점차 확장되었다.
이번 개인전은 신작 17점으로 구성되며, 그중에서도 도로변 가로수 풍경을 담은 가로수 연작 7점과 대표작 〈터널 01〉을 두 축으로 한다. 벽면에 일정한 간격으로 병렬 설치되는 가로수 연작은 필묵의 미묘한 농담 차이로 나무 하나하나를 구별해내며, 이들 작품은 벽면에서 살짝 띄워 설치되어 실제 도로변에서 스쳐 지나가는 나무들처럼 미묘한 각도 차를 이룬다. 전시장 정면 벽을 가득 채우는 〈터널 01〉 앞에 서면, 관람자는 마치 실제 터널 입구 앞에 마주선 듯한 감각을 느끼게 된다.
전시명 《흑백의 분투》가 가리키듯, 화면 위의 검은 먹과 남겨진 흰 여백은 이번 전시를 관통하는 핵심 조형 언어다. 수묵화에서 획과 여백은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채우고 남은 결과물이 아니라, 서로를 팽팽하게 견제하며 화면을 완성해가는 대등한 두 힘이다. 이러한 흑과 백의 관계는 이번 전시가 다루는 인공과 자연의 관계와도 고스란히 맞닿아 있다. 도로와 가로수, 터널과 산처럼 일상 속에 나란히 놓인 인위와 자연 역시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밀어내기보다, 서로 힘을 주고받으며 긴장 속에 공존하는 풍경을 만들어낸다.
이번 전시를 통해 관람자는 화면 앞에 머무르며 자신의 일상과 내면에 잠재되어 있던 기억의 풍경을 새롭게 마주하게 될 것이다.
백소현 (OCI미술관 큐레이터)
참여작가: 윤기언
출처: OCI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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