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민현대미술관
2024년 3월 12일 ~ 2024년 4월 11일
으스름 달 Gloaming Moon
고결
윤영호(b. 1987)의 6번째 개인전 《으스름 달 Gloaming Moon》에서는 그가 최근 몰두하고 있는 33점의 회화를 소개한다. 전시의 제목은 작가가 작품의 표면적인 특징과 주제를 포괄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 어둠이 짙게 깔린 밤풍경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개념을 고민 하다 ‘gloaming’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되었고, 이를 역으로 번역하여 만들어 낸 것이다. 이러한 소재를 염두에 두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윤영호의 작품을 마주하기 전 우리는 그의 작업 세계를 어렴풋이 유추해 볼 수 있게 된다.
윤영호는 자신이 마주하는 이미지를 수집하여 회화의 형식으로 재해석하는 과정을 수행한다. 동네를 걷다 우연히 보게 된 풍경, 낯선 여행지에서 만난 이국적인 풍경, 혹은 영화 속 강렬한 인상으로 남은 이미지를 기록해두었다가 이를 기반으로 작업하는 것이다. 흥미로운 지점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작가의 화면은 어떠한 풍경을 담아내든지 항상 밤 시간대를 배경으로 한다는 것이다. 그의 화면에서 빛은 거리를 비추는 가로등 불빛이나 상점의 네온사인과 같은 인공적인 빛뿐이다.
작가가 풍경이라는 일상적이고도 평범한 소재에 집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화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는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서로 다른 요소들이 함께 뒤섞여 새로운 존재를 만들어내는 ‘하이브리드(Hybrid)’가 바로 그것이다. 작가는 이탈리아와 런던에서 약 10년의 유학생활을 했다. 당시 그의 작업은 추상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특정한 내러티브 보다는 붓터치만으로 캔버스를 가득 채워 자신의 생각을 표현했던 것이다. 타지에서 이방인 신분으로 낯섦을 느꼈던 그는 한국에 돌아와서도 비슷한 감정을 가지게 되었고, 이는 작가의 정체성뿐만 아니라 작업에 대한 고민으로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작가는 결국 이질적인 존재들이 얽히고 뒤엉키는 과정이 본인에게 매력적인 부분으로 다가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긴 방황 끝에 그는 과감히 구상 작업으로 돌아서서 자신이 보고 느낀 것들을 좀 더 솔직하게 표현하기 시작했다. 작가는 자기 자신 안에 내재된 다듬어지지 않은 감각을 회피하지 않고 마주하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최근 그의 작업에서는 이러한 면모가 더욱 극대화된다. 윤영호는 이태원이나 해방촌, 방콕이나 홍콩 등 동서양 문화가 공존하는 장소를 찾아다니며 발견한 상징적인 모습을 한 장의 이미지에 담아내고 있다. 〈이태원 방랑자들〉(2023)과 〈망고스틴 엄마와 게임하는 딸〉(2023)과 같은 작품이 이에 해당 하는데, 문화나 장소 그리고 감정이 연결되었다는 측면에서 넓은 범주의 하이브리드로 읽을 수 있으며 이러한 관점으로 캔버스 앞에 섰을 때, 우리는 더욱 입체적인 해석을 할 수 있게 된다.
특정한 장소를 그려낸 작품들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의 화면도 보인다.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달과 나무를 표현한 〈차가운 달〉(2023) 그리고 〈파란 버드나무〉(2023)와 같은 작품이 바로 그것이다. 달과 나무는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누구나 볼 수 있는 것이지만, 작가에겐 외로운 시절 위로가 되어준 그래서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키는 소재이다. 노스탤지어는 단순히 과거의 어느 순간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상황과 맞닿아 선택적으로 생겨나는 감정이며 나아가 미래까지도 이어지게 된다. 결국, 윤영호의 이러한 작품 또한 다층적인 시간의 결합을 내포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하이브리드로 수렴하게 된다.
전시장에서 마주하는 작품 속 풍경은 실재하는 곳이지만 동시에 부재하는 곳이며, 누군가에겐 익숙하지만 어떤 이에게는 생경하게 다가온다. 자연스레 윤영호의 캔버스 앞에서 우리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그 공간을 상상하며 화면에 더욱 몰입하게 된다. 추상에서 구상으로, 보편적 내러티브에서 개인적 서사까지 아우르는 그의 작업은 이방인으로서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는 경계를 무너뜨리고자 하는 개인의 욕망이 고스란히 투영된 결과물이다. 나아가 작가가 만들어 낸 하나의 공간, 캔버스 안에서는 이질적인 시간이 동시에 흐르며 그로 인해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하이브리드’가 생겨났다. 이를 통해 우리는 더욱 유연하고 다채로워질 그의 작업 세계를 기대하며 대체불가능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참여작가: 윤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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