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밈
2017년 7월 12일 ~ 2017년 8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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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노트
기적, 텔레파시, 잔여물
진부한 일상에 균열을 일으키는
밤의 가시성
의식의 정전상태에서 임박하는 에덴
유령적인 이미지,
투명한 사태
나타날 수 없는 것의 나타남.
나에게 예술은 언제나 일상의 진부함 가운데 시적 순간, 비언어적인 틈, 그리고 비일상을 기입하려는 시도였다. 10여 년간‘블러(blur)', 즉 아웃오브포커스(out-of-focus)의 사진 이미지를 재현하는 유화 작업을 이어가던 나는 <희박한 이름 (Fleeting Names, 2013)>를 계기로 탈회화적인 시도와 구성방식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회화 작업의 동력이었던 블러가 ‘재현의 불가능성’을 지칭하는 유일한 회화적 표상이었다는 것, 그리고 이미 ‘탈회화’로 향하는 어떤 수식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구름이 덮였을 때: 기원과 심연에 관한 에세이 (Shrouded in Clouds: An Essay on Origin and Abyss, 2015)>를 기점으로 그래픽과 설치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회화 이후의 회화(post-painting)’라고 명명한 이 작업은 스트라이프(stripe) 패턴을 중첩시키는 행위의 반복(layering)을 통해 회화의 매체와 재현을 해체하는 시도이다.‘흐린 풍경(blur-painting)'작업이 가시성에 비가시성을 기입하는 ‘비틀거리는 재현’을 수행했다면, 포스트페인팅 작업은 여기서 더 나아가 회화로부터의 ‘거리두기’와 ‘재현으로부터의 이탈’을 감행한다. 이를 통해 조명하고자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심연’이 나타나며 사라지는 장소로서의 회화이다.
<기적, 텔레파시, 잔여물 (Miracle, Telepathy, Leftovers, 2016)>과 <청천벽력 (Out of the Blue, 2016)>은 보다 적극적인 스트라이프의 반복과 확장을 시각화한 전시들로, 주변성과 장식성을 특징으로 하던 스트라이프 패턴이 작품의 중심을 차지하면서 어떤 ‘결핍의 경험’과 ‘무의 상황’을 연출하고자 했다. 또한 나는 문학적 코드가 담긴 텍스트를 제목으로 첨부하여 또 다른 상상의 균열을 일으키고 싶 었다. <서로 입 맞추는 코라 (Kissing Khôra)>, <알수 없는 문전성시 (Unknown Popularity)>와 <무기력 한 애드리브 (Helpless Improvisation)>는 유리, 아크릴, 금속 등의 재료를 사용하여 평면에 머무르던 레이어들을 공간으로 호출하는 입체 조형물 작업이다. <소용없는 회상 (Useless Flashback)>, <나타나는 회화 (Appearing Painting)>, <밝은 방 실험 (Studies on Origin)>, 그리고 <심연의 실험 Studies on Abyss> 연작은 모두 디지털 드로잉 작업으로, 회화의 진리로서의 심연과 언어화할 수 없는 회화의 휘광에 관한 이야기이다.
나의 작업은 회화에서 다른 매체로의 이탈, 평면에서 공간으로의 이탈, 그리고 재현과 환영주의로부터의 이탈, 이론이 회화에 덧씌운 규정으로부터의 이탈 등 다양한 의미에서의 ‘탈회화’를 시도한다. 스트라이프는 회화로부터의 단절, 혹은 회화의 혁신을 주도하는‘탈회화’운동의 도구로서, 회화에서 환영주의의 프로그램을 제거하고 닫힌 것(동일성)과 열린 것(타자성)의 반복적 병치를 가능하게 한다.
낭시(Jean-Luc Nancy)에 의하면 회화는 넘쳐나는‘휘광', 즉 보이지 않고 절대로 볼 수 없는 순수한 나타남'의 가능성이다. 낭시에게 회화는 이미지의 통로, 회화라는 사건의 지나감일 뿐인 것이다. 회화 작품 앞에서 시인 발레리(Paul Valéry)는 탄식한다.“이토록 단명하는 불멸성이라니!”
포스트페인팅은‘낯선 모습으로 돌아온 회화의 잉여물, 회화에서 분열된 거짓말, 혹은 회화를 향한 영원한 그리움'이다.
출처 : 갤러리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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