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GG
2016년 7월 7일 ~ 2016년 7월 21일
이경민 개인전 : 눈을 감는 방법

예측할 수 없이 지속해서 변하는 일상의 단면을 오랫동안 관찰하고 체화된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작가의 몸에 밴 오랜 습관이다. 스치면 그뿐이었을 시간을 빼곡히 기록해 두었고 그럼에도 놓친 순간은 손으로 쓸어 담았다. 이번에는 빛 앞에 감은 눈으로 바라본 일상을 기록했다. 보이지 않지만 본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전시에서는 작가의 눈과 손의 기록을 거쳐, 눈을 감아도 보이는 것에 대해 남긴 작업이 소개된다.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비문증(飛蚊症)을 갖고 있었다. 비문증은 망막에 드리워진 그림자의 형태를 인식하는 것으로, 먼지나 잠자리 날개와 같은 것들이 어른하게 떠다니는 것처럼 '보이게 되는' 증상이다. 눈을 감아도 보이는 것, 혹은 눈을 감으면 더 잘 보이게 되는 것을 기록하는 것. 작가는 매일 밤 빛 앞에서 눈을 감고, 감은 눈 위로 어른거리는 것을 그렸다. 지난 10월부터의 일이다. 〈눈을 감는 방법〉(2016)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눈을 감는 방법〉은 레이저와 카메라 노출을 이용하여 감은 눈 너머로 제일 잘 보이는, 움직임의 궤적을 빛으로 드로잉 한 작업이다. 작가는 시선을 옮기면 변화하는 움직임을 쫓아 눈을 질끈 감았다고 했다. 지난 10월부터 5월까지, 매일의 16초를 기록하여 일력(日曆)의 형태로 만들어진 이 작업은 밤마다 빛으로 그린 드로잉이 숱하게 스쳐 갔을 작가의 방 벽면사이즈와 같은 비율로 만들어진 종이에 기록되었다. 작가는 작업을 위해 감열지를 선택했다. 영수증으로 흔히 사용되는 감열지는 열로 기록을 남길 수 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기록이 휘발되는 매체이다. 작가는 촛불에 달군 송곳으로 매일의 감각을 새겼다. 매체의 특성상 흔적은 날로 흐려지며 차츰 변형되어간다. 이는 끊임없이 움직임을 멈추지 않고 작가의 눈앞에 어른대는 비문증의 특징과 닮았다. 기록하지 못한 날에는 까만 먹지로 시간을 메웠다. 지금까지 기록되지 못한 14번의 날들은 가득 찬 여백으로 남았다.
이러한 관심에서 나아가 〈Night Crawler〉(2016)에서는 밤을 기어가는 ‘상태’ 속 기억의 채집을 시도한다. 〈Night Crawler〉는 귀갓길 작가가 자주 이용하던 심야버스의 각기 다른 형태의 조명을 기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밤으로부터 밤을 지나가는, 그러나 낮보다 밝은 조명등을 가진 심야 버스. 눈을 감아도 스며드는 아이러니한 빛을 표현하기 위해 작가가 고른 것은 5-6H의 옅은 연필이다. 손에 익은 매체를 통해 낯선 감각의 시각적 상태를 다른 방식으로 듣게 하는 작가의 이 작업은 〈눈을 감는 방법〉에 이어 ‘본다’는 것에 대한 작가의 동일한 질문이자 태도이다.
시각적인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을 갖게 하는 이경민의 작업은 소멸해버리는 순간을 붙잡아두는 힘을 가졌다. 실체 없이 실재하며, 볼 수 있지만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물음에 작가는 성실한 매일의 노동의 작업으로써 답을 시도한다. 바람이 나부끼는 비닐 연의 움직임을 추출하여 정지된 55장의 드로잉으로 남긴 〈Kite-Light〉(2014)가 그랬고, 작가의 발걸음에 따라 으스러져 보이던 보름달을 기록한 〈Hide & Seek〉(2015)가 그러했듯이.
작가의 요동치는 선을 좋아한다. 그것은 포착된 순간으로 기록되어 정제되어있으나 동시에 펄떡펄떡 숨을 쉰다. 때로는 여리고 가늘지만, 때로는 그 자체가 강한 목소리가 된다. 그 선이 갖는 무게감이 좋다. 그래서일까. 감은 눈으로 또렷이 응시하여 그려진 작업은 그 자체로 지금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되어 다가온다. 거기에는 수고스럽고 긴 일련의 작업 과정을 지속해 나가며 매일을 가다듬는 치열함과 온건함이 담겨있다.
손에 까맣게 묻어나는 일력을 가만 넘겨보거나 흐릿하게 번진 조명 빛을 바라보며, 흐트러지거나 사라지는 방식으로 존재하는 호흡과 순간들을 떠올려 본다. 어느 날엔가 생겨났다가 차츰 사라진 줄도 모른 채, 기억에서 휘발된 순간들이 있는지 문득- 되짚어보는 것이 전부라 할지라도 말이다. 언젠가 감열지의 기록들은 모두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매일의 매일을 자신만의 감각 방식으로 기록하는 작가의 작업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함으로 시간을 재구성한다. 이렇게 재구성된 시간은 일상에 대한 시계추로 남아 기억에서 오래도록 똑딱일 것이다. / 글 안성은
출처 - MRG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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