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학동사진미술관
2017년 8월 23일 ~ 2017년 9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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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노트
단일민족, 백의민족의 동질성에 대한 자긍심은 더 이상 가지기 힘든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국경을 넘는 이주가 보편화되고 새로운 사회구성체가 형성될수록 우리의 의식은 완고하게 배타적 경계를 유지하고 있다. 뿌리 깊은 ‘민족주의’ 때문이다.
우연한 기회에 ‘외국인주부 한글교실’에 참석을 하게 되었다. 외국인 주부들을 대상으로 한글 교육을 하며, 자연스레 사회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유도하는 ‘다문화가족’ 정책의 프로그램이다. 외국인 주부들 대부분은 동남아시아에서 온 결혼이주민들이었다. 우리와는 다른 외모, 어눌한 발음은 타 문화권 출신임을 나타내는 강력한 표식이었으며, 어린나이에 맞지 않게 무겁고 무표정한 얼굴은 그들의 공통된 모습이었다.
우리사회의 부정적 시선에 쉽사리 동화되지 못한 그들은 각각의 특수한 삶의 방식을 존중받지 못하고 그 경계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낮선 장소, 낮선 문화, 낮선 사람과 모호함으로 가득 찬 삶을 살아야 하는 그녀들은 소수자들의 불확실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녀들의 정체성을 한 장의 사진으로 기록하게 된 지점이다.
경제적 약소국으로 과거 우리사회가 격을 수밖에 없었던 기억들(독일 간호사 파견, 기지촌 여성문제, 아메리칸드림 등)의 흔적은 이제 상대적 입장에서 고민하는 시대가 되었다. 급속한 경제발전은 우리사회뿐 아니라, 아시아 여러 나라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을 기피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상대적으로 비싼 임금은 동남아시아의 풍부한 노동력을 불러들이는 계기가 되었으며, 남아선호사상에 의한 남녀비 불균형은 외국의 신부를 맞아들여 해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과거 서구에 인력을 파견하고, 결혼 이민을 가는 상황과 정반대의 입장에 서게 된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도 다문화사회로 진입하게 되었다.
이 작업의 큰 틀은 우리사회의 가장 당면한 과제중의 하나인 국가, 민족 등을 포괄하는 다문화주의에 관한 것이지만, 세부적인 작업의 의도는 우리사회와 아시아에 속한 제3세계권 여성의 ‘결혼’, ‘이주’, ‘가족’, 그리고 ‘그녀들의 정체성’에 관한 것들이다.
결혼
인간은 관습화되고 사회화된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생리적 본능, 즉 자신의 유전자를 영속시킨다. 하지만 인간의 결혼에 있어서는 생리적 욕망뿐 아니라 ‘심리적 이끌림-사랑’이라는 감정적 변화가 상대를 선택하는데 중요한 작용을 한다.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인 결혼은 문화권에 속한 관습의 영향을 많이 받지만 현대사회에서는 기본적으로 남.녀간의 사랑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사진 속의 대상들은 사랑으로 결혼을 결정하게 된 경우가 드물다. 10~20분의 짧은 대면으로 아내이자 아이의 엄마가 될 사람을 결정하고, 평생 자신의 삶을 의지할 남편을 결정한다. 한순간의 운에 모든 것을 맡기는 결혼의 형태가 우리사회에 새로운 가정의 유형을 만들고 있다.
이주
‘다문화가정’은 우리사회의 급격한 변화과정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최근 한국사회는 이주노동자 그리고 결혼이주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다양성과 차이를 포괄하는 ‘다문화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단일민족이라는 민족주의적 사고의 틀을 넘어 세계화라고 하는 시대적 흐름에 부응하기 위해 정부 주도하에 많은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과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의식과 사회의 구조는 여전히 진부함 속에 갇혀있다. 이주민들은 여전히 피부색 다른 이방인으로 범주화되고 다문화 정책은 그들을 소외시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대화를 통한 경제력의 상승은 이주노동자와 함께 결혼이주민을 받아들이게 되는 근본적인 이유가 된다. 동남아시아에서 온 대부분의 결혼이주민들은 빈곤을 탈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결혼을 선택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족들을 위해 또는 본인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코리안드림’을 꿈꾸며 한 장의 초청장에 의지해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가족
우리는 단일민족의 신화로부터 만들어진 ‘순혈주의’에 익숙하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다양화되면서 가족의 형태와 가치관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하지만 운명으로 엮여진 순수한 혈연의 공동체라고 하는 의식은 크게 변함이 없다. 이러한 인식은 ‘우리’를 더욱 공고히 한다. 결혼이주민에게는 국적이 다른 두 가족이 있다.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가족, 그 가족을 구원할 부유한 한국의 가족. 지긋지긋한 가난이 싫어, 자신의 희생으로 가족들이 가난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부모, 형제를 떠나 한국으로 온다. 우리가 되기 위한 연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다문화가정’이라고 하는 이름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면서.
촬영 대상자들을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어려운 것은 카메라 앞에 세우는 문제였다. 흔쾌히 촬영에 응하는 분들도 많았지만 꺼려하는 분들도 많았다. 그런 분들은 대게가 동남아에서 온 여성들과 결혼한 것에 대해 내심 부끄러워한다던지 드러내기를 부담스러워 하였다. 촬영은 전적으로 남편이 결정하였다. 결혼이주여성들과 한국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것도 어려운 문제이기도 하거니와 의사결정의 주도권을 가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최종 결정은 언제나 남편의 몫이었다. 결혼초기의 이주여성들은 남편에 의해 대리되고 중계되는 삶을 산다고 할 정도로 주체적 활동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외부로부터의 차별적 시선을 걸러주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가부장의 권력이 더해져 이중의 고통을 받는 경우들도 더러 있었다. 그 속에서 그녀들은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었다.
촬영에 있어서는 연출을 최소화함으로써 스스로 드러낼 수 있는 방식을 취하고자 하였는데, 카메라 를 대하는 태도로부터 나타나는 가족 간의 관계, 질서 등에 유의하였다. 이러한 가족의 관계 속에서 결혼이주여성들의 위치는 결정되었다. 집은 그들의 삶과 상이한 문화적 태도가 서로 부딪히고 스며들었는데, 집안에서 입고 있는 옷, 집을 꾸미는 방식, 소품들의 종류와 배치에 유념하면서 촬영을 진행하였다. 눈에 띄는 것 중의 하나는 거실에 붙여놓은 한글 글자판이었는데, 어린 자녀의 한글 교육을 위한 것이지만, 결혼이주여성들이 배우고 익혀야할 언어의 문제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동남아시아에서 온 엄마와 한국에서 태어난 자녀는 한국과 한글로 묶인 공동의 운명체였다.
촬영을 하면 할수록 궁금한 것이 있었다. 그녀들의 고향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왜 한국으로 와야만 했을까? 이 물음은 그녀들의 근원을 찾는 계기가 되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자 하는 노력은 많지만, 언어와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괴리감, 그리고 동남아 사람들을 바라보는 차가운 시선들은 쉽게 한국생활에 정착하지 못하는 이유가 되었다. 그 속에서 그녀들의 정체성은 점점 희미해져 간다.
새로운 가족과 국가를 얻었지만, 쉽게 동화되지 못하고 경계에선 그녀들, 디아스포라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자 한다.
이제 그녀들의 흔적이 남아있는 ‘고향’으로 시선을 돌린다.
작가와의 대화 2017년 8월 26일. 토. 4시
출처 : 서학동사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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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료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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