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학동사진미술관
2015년 10월 31일 ~ 2015년 12월 3일
‘밝음’이 있기에는 ‘어둠’이 있었기 때문이다. ‘죽음’이 있기에 ‘생’이 가능한 것이다.
서양화가로 입신을 한 이상조가 사진을 들고 나왔다. 왜 사진일까? 궁금했다. 그는 사진의 진실성을 믿고 사진이 단호한 사실의 증명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사진이 진실하지도 사실의 증명을 왜곡 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러한 사실을 그가 모를 리가 없다. 그런데도 그는 주장한다. 사진은 진정성이 가장 큰 의미가 있다고.
그래서 나는 그의 사진에서 진정성을 보고자 한다. 그의 사진은 주제가 부도(浮屠)다. 부도의 사전적 의미는 ‘원래 불타(佛陀)와 같이 붓다(Buddha)를 번역한 것이라 하고 또는 솔도파(率屠婆, stupa), 즉 탑파(塔婆)의 전음(轉音)이라고도 한다. 어원으로 본다면 불타가 곧 부도이므로 외형적으로 나타난 불상이나 불탑이 바로 부도이며, 더 나아가 승려들까지도 부도라 부르기도 한다(다음백과사전)’.고 설명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큰 사찰의 경내에 들어서면 큰 스님들의 부도를 마주하게 된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경건함과 엄정함과 무상함 등을 느끼게 한다. 우선 그 오묘한 석조물의 건축미와 선의 정갈함, 석조물에 새겨진 훌륭한 글씨등이 사람의 마음을 압도한다. 거기에 이른 새벽에 숲을 조용히 가르고 비쳐드는 햇살 속에 서있노라면 무념, 무상, 무아의 경지에 빠질 지경이다.
이상조는 작업노트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나는 부도전에 도열해 있는 하나하나의 부도들에서 산사 한적한 곳에 자리 틀고 용맹정진하는 수행자들의 모습들을 발견한다.”
그렇다. 부도가 큰 스님들의 사리탑에 지나지 않고 여전히 축생 지옥 아비규환 같은 이 생의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서 용맹정진하는 수행자의 모습을 발견하고자 하는 그의 의지가 카메라를 들고 새벽길 남도의 사찰, 그 장엄한 어둠 속을 다니고 거기서 ‘밝음’을 찾고자 한 것이리라.
‘明’은 ‘밝음’이며 ‘지혜’며 곧 ‘깨달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말은 시장판에서 ‘도덕경’을 외쳐대는 사람의 구호처럼 공허한 말로 들릴 수도 있다. 이 시대에 무엇에 대한 ‘밝음’이며 ‘깨달음’이란 말인가? 어쩌면 이상조는 세상은 혼돈이며 허무한 것이기에 거기서 해탈을 해야 비로서 明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일까?. 이 세상에 발을 딛고 서 있는 이상 그것이 가능하겠는가? 그런데 나는 오늘 그의 사진을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깨달았다. 그의 사진에는 세상이 어둡고 절망적이어도 끝까지 지켜내려는 용맹정진하는 수행자는 살아있고 언젠가는 ‘빛’으로 돌아오리라는 기대가 있다. 그의 사진은 새로운 시도나 모험적인 장치는 없다. 그 이전의 작업으로 볼진데 그에게는 그런 능력이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번 사진에서는 사진의 진정성을 믿고 있었다. 그림이어도 좋을 풍경을 사진이기에 더욱 가능한 시간의 실체를 붙잡고 거기에 부유하는 공기를 불러오고 있다.
이상조의 사진에는 죽음과 삶의 경계를 넘어선 실체(부도)가 보인다. 그리고 그 실체는 과거 옛 선사의 존망과 불심의 표상을 넘어선 ‘밝음(明)’의 명제가 있다.
나는 그의 그림은 잘 알지 못하나 사진으로 보여주려는 몸짓과 결과를 함께 고민해 볼 수 있어서 영광이다. / 서학동사진관 김지연

출처 - 서학동사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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