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예술공간
2019년 10월 5일 ~ 2019년 10월 25일
이은영은 이번 개인전에서 새로운 주제를 탐구하기보다 기존 작업의 조형을 다채롭게 하기 위한 형태를 발전시키고 재료적인 실험을 진전시킨다. 묘지공원의 산책 경험이 계기가 된 인사미술공간에서의 개인전《빛으로 세운 목소리》(2018)의 주제와 형식을 세밀하게 발전시키면서도 재개발로 사라진 외할머니의 집을 기억하면서 제작한 <오래된 구름들의 집>(2019)을 선보이는데, 이들은 “밤을 달여 놓아두었다”라는 전시의 전체 틀 안에 자리한다.
작가가 여러 장소에 걸쳐 방문한 묘지공원은 근작의 작업이 탄생하는 배경이 된다. 작가에게 “오래된 묘지공원은 누군가의 생을 기억하고 그 추억으로 위안을 얻는 장소이지만, 이곳에서 이름을 잃어가는 묘비와 그것들 사이사이 자라나는 나무, 풀더미로 인해 기억을 잠식하는 망각에 대해 생각”하게 된 양가적인 장소였다. 여러 작품을 통해 사회적 죽음을 애도하려 했던 마음이 묘지공원이라는 장소에서도 동하였지만, 구체적인 사회적 사건과 연결된 죽음을 다루던 과거 작업과 달리 죽음이 자리한 공간 그 자체를 만나게 된 것이다. 작가에게 묘지공원은 무섭고 두려운 곳이 아니었으므로 그 장소가 간직하고 있는 특유의 분위기를 받아들일 수 있었고, 또한 죽은 자와 산 자를 잇는 여러 매개체에 관심을 두고 관찰할 수 있었다.
우선 그 경험이 감상적이면서도 쓸쓸하게 표현된 작업이 묘비와 뒤엉킨 풀더미 드로잉들이다. 그것들은 가까이 있음에도 먼 곳의 풍경처럼 아득해 보이지만, 작가가 느낀 감정을 솔직하게 전달한다는 점에서 전시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런데 이런 감상적 이미지가 기념비적 조형물로 드러날 때는 다른 형상을 보인다. 추모비, 봉헌물, 기념물, 유골함, 마른 풀, 시든 꽃, 빛바랜 조화(造花) 등도 작가가 묘지공원에서 본 것들인데, 이들은 큰 변형을 거치지 않으면서도 다르게 연상되고 연쇄되는 조형물로 전환되며 죽음과 연결된 여러 상징물과 함께 배치된다. 이러한 방식은 할머니 집을 이루는 특정 요소나 물건에 영감을 받아 새로운 기념비로 만든 <오래된 구름들의 집>에도 적용된다. 이들 기념비적 조형물은 아름다운 것 같으면서도 또 달리 보면 그리 보이지 않기도 하고 이질적인 결합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는 여러 재료의 결합과 부딪힘 때문이기도 하지만 완전하고 통일된 기념비를 만들고자 하지 않았던 작가의 의도도 포함되어 있다.
이 기념비적 조형물의 뼈대를 이루는 것은 작가가 수년간 다루어온 도자이다. 이은영의 도자 작업은 도자에서 쉽게 연상하게 되는 완벽한 결과물과는 다르다. 흙으로 형을 빚을 때부터 의식적으로 자유로운 조형을 표현하는 재료로 도자에 접근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자유로운 조형적 시도를 유지하지만 작은 성전(聖殿) 같은 건축적 구조물을 만들어 크기를 키워보거나 사발이나 항아리, 대접 같은 단일하고 구체적인 형태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물론 여전히 그 표면의 질감이나 색감은 표현적이며, 또 여러 장식을 덧붙임으로써 원래 형태와 다르게 보이도록 유도한다. 그리고 유물이나 비석의 부식된 표면이나 흘러내리는 촛대, 천사를 닮은 형상 등도 변형을 거쳐 도자로 표현된다.
아마도예술공간의 분할된 공간을 따라 놓인 기념비적 조형물과 드로잉, 영상 설치는 작가가 누군가의 죽음을 기억하고 사라진 장소를 추억하는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그것이 특정한 대상이나 장소를 지시하기보다는 전시의 경험이라는 전체적인 맥락 안에서 삶과 죽음, 사라진 것의 의미가 드러나기를 의도한다. 작가는 “특정 시나 텍스트의 은유에서 발생되고 연쇄되는 이미지를 따라 과거나 현재의 사건들을 회상하고, 상상과 현실의 간극 속에서 새로운 이미지를 발견하는 작업을 하고자 한다. 그 이미지들의 경계를 파괴하거나 또는 해체된 경계를 다시 유기적인 하나의 이미지로 만들고자 드로잉, 도자, 입체, 영상 등 다양한 매체와 재료를 이용하여 공간 속에서 실험한다.”고 말한다. 이 전시도 작가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에서의 한 단계이자 그 요소를 만들어가는 시간일 것이다. 그렇기에 대상을 지극하게 관찰하고, 그것을 다르게 표현하기 위해 형태와 재료를 고민했던 태도가 전시 명에는 녹아 있다. / 신양희 아마도예술공간 큐레이터
디자인: 배지선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산실 공간지원
출처: 아마도예술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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