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예술창작스튜디오
2022년 11월 9일 ~ 2022년 11월 13일
소환된 태도
박천(독립큐레이터)
인류 역사에서 도시가 탄생하고, 현대로 넘어오며 새로운 유형의 군상이 생겨났다. ‘플라뇌르 (flâneur)’라고 일컬어지는 ‘산책자’, 그리고 노마드(nomad)라 불리는 ‘도시의 유목민’ 혹은 ‘디지털 유목민’이 그것이다. 두 개의 개념이 서로 대립되는 부분이 있지만, 도시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는 둘 다 부분적으로 해당하는 개념이 된다.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가 말 한 산책자는 목적 없이 배회하며 도시를 관찰하는 사람이지만, 들뢰즈(Gilles Deleuze)가 말한 유목민은 생존방식에 우선적 목적이 있다. 때문에 상투적으로 표현되지만 너무도 익숙한 ‘바쁜 현대인’이라는 표현은 위의 두 가지 개념을 모두 함유하고 있다. 근대에서 현대로 접어들며 도시의 지속적 장소는 점차적으로 사라져가고, 한시적 장소 혹은 비장소(non-site)가 늘어 나게 됨으로써 플라뇌르와 노마드가 더욱 많이 생겨나게 되었다. 혹여 코로나 이후의 세계가 이러한 플라뇌르와 노마드를 더욱 양산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정 작가는 이러한 지점에서의 사유들을 의도적으로 실천한다. 작가는 영천과 서울을 오가며 작업을 이어오고 있고, 이와 같이 장소와 장소를 지속적으로 넘나드는 중에도 영천 스튜디오의 주변을 지속적으로 배회한다. 이번 개인전의 타이틀인 ‘바깥뜸’도 이러한 작가의 실천적 태 도에서 착안되어 설정되었는데, 바깥뜸이란 한 마을의 바깥쪽에 위치한 구역을 이르는 말이다. 하지만 작가가 배회하는 장소가 바깥뜸인지 안뜸인지 특정하기 불가능한데도 불구하고 바깥뜸이라고 지칭한 이유는, 작가의 입장에서 중심이 될 만한 물리적이거나 심리적인 구역 자 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작가가 거니는 장소가 어쩌면 마을 내부라 하더라도 작가에게는 그 장소가 바깥뜸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작가가 목적 없이 바깥뜸을 배회하던 처음에는 그저 관망자에 불과했다. 한가로이 거닐며, 바라봤던 장소에는 다소 낮지 만, 확실한 경계를 긋고 있는 담장들이 있었기에 볼 수 있는 것은 한정적이었고, 그저 산책이 과정이자 목적이 되었다. 그렇게 배회하던 어느 날, 많은 집의 담장마다 공통적으로 삐져나와 있는 ‘엄나무’를 발견하게 된다. 공통적으로 탐색된 이 엄나무로 인해 담장 안의 풍경이 문득 궁금해졌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거주민과 소통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 시점에서 작가는 관망 자에서 적극적 태도의 관찰자로 변모하였으며, 작가는 담장 너머에 있는 장소에 도달하여 공 간을 탐색하고 미처 도달하지 못했던 새로운 장소로 이동하게 되었다. 이러한 작가의 실천은 바깥뜸으로 설정된 장소에 노마드에서 플라뇌르, 그리고 다시 노마드로 이어지는 자취를 남기 게 되었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모험하듯 관찰했던 바깥뜸의 장소와 실천적 태도의 자취를 전시장에 소환한다. 여러 드로잉들과 펜스처럼 가로막히듯 설치된 구조물, 그리고 오래된 냉장고 하나가 전시장을 채우고 있다.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드로잉은 작가가 바깥뜸을 관찰하며 보고 느꼈던 풍경이며 감정들이다. 그 앞의 구조물들은 담장을 삐져나온 엄나무와 그 장소를 배회하며 만난 사물들이며, 냉장고는 더욱 적극적인 자세로 탐색했던 공간에서의 내러티브이다. 작가는 이렇게 배치한 작업들에서 자신의 태도를 관객에게 전이시킨다. 전시장에 들어선 관객은 먼저 드로잉 앞의 구조물에 막히며 작가가 최초에 느꼈던 ‘담장’의 기분을 상기하게 된다. 일견 위험하게 돋아나 있는 엄나무의 가시들이 풍경을 쉬이 허락하지 않는 것 같지만, 적극적인 관찰자의 입장을 취함으로써 비로소 작가가 제시한 풍경을 볼 수 있게 된다. 이렇게 관망자에서 관찰자의 역할을 부여받은 관객은 마지막으로 오래된 냉장고를 마주하게 된다. 안을 들여 다보면, 냉장고에 응당 있어야할 음식들이 아닌, 각종 다양한 사물들이 보관되어 있음에 잠시 인지부조화에 빠지게 되는데, 이는 작가가 담장 안에서 만났던 냉장고의 형태를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작가가 담장 안에서 처음 만났던 냉장고는 집 안이 아니라, 정원에 자리하고 있었고, 냉장고 속에는 이와 같은 사물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어쩌면 냉장고 역시도 장소에서 장소를 옮겨오면서, 옮겨진 장소에 맞는 쓸모를 찾은 것처럼 ‘노마드적 냉장고’가 되었고 전시장에서는 냉장고가 아닌 ‘
’라는 작품명으로 제시된다. 어쨋든 마지막으로 마주한 ‘
’를 끝으로 관객은 바깥뜸에 있었던 풍경과 사건을 모두 작가와 같이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작가가 전시를 통해 소환한 태도는 무엇을 지시하거나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소환자인 작가가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소환된 풍경, 소환된 태도를 관찰한 관객에게 있을 것이다.
참여작가: 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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