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선
2022년 6월 10일 ~ 2022년 6월 19일
fonds은 무분별하게 정돈되지 않은 자료다.
네모난 속이 빈 조각
화판은 회화를 위한 느슨한 울타리 된 공간이다.
구겨진 종이
모습을 예상하기 어렵다.
회화로 그려진 대상은 그 대상이 아닌 하나의 미학적 수수께끼와 같은 이미지로 보이는 것처럼, 회화 화면에 그려진 ‘무엇’은 거의 신성한 것에 가깝다.
그림의 경계 그 바로 앞 긴장 상태에 있는 회화의 표현들이 화면의 끝에 기여할 수 있을까?
조각의 뼈대와 아래 면은 굴욕적이다. 이 둘과 조각의 생김새를 약속한다.
통제에 종속될 수는 있으나 자신만의 삶을 고집하면서 어떤 방식으로든 통제에 저항할 수도 있는 살아있는 영역
이미지 이동에서 이미지의 거주지는 이미지가 이동함으로써 거점이 된다.
탐험가의 거점이 궤적을 만들고 크고 무거운 동상들이 세워진 다음 탐험가가 떠났을 때, 브론즈 캐스팅 기법을 배우고자 하지 않는다.
화판이 회화를 위한 기념비가 되는 것을 포기할 때, 그것은 과거와 미래를 상실하고 항구적 현재, 혹은 시간 속 어딘가에 유폐된다.
이때 회화와 구조는 결별한다. 이제 자율성을 얻는다. 남은 것은 끊임없는 유희와 재배치이다.
방수포 덮인 뼈대
영원하지 않음에서 그 생기는 가치 있는 것이 된다.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그 생기는 더욱 힘을 가지게 된다.
거점은 변화 혹은 변형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이때 발생하는 상호작용은 또 다른 생기를 발생시킨다.
회화는 대상을 삶에서 양식상의 가치로 인식을 전환시킨다. 이는 회화의 불치병 중 하나로 보인다.
금송아지는 가루로 빻아질 수 있지만, 금송아지 이미지는 살아있다.
급격한 나선형 섀시는 가루 사이 빈 공간을 만든다.
깎음은 표면적인 것을 해체하는 동시에 이미지까지 해체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든 환영을 중단하고 도달한 것은 다시 이미지였다.
서류 사이 먼지
저작물을 다른 사람과 분리하여 유지하는 출처와는 다르게, des fonds는 이와 더불어 창조자의 원래 질서를 유지 및 재참조하는 것이다. 즉, 배열을 떠나야 하는 것이다.
참여작가: 이종환, 임재균
주최: 오시선
사진: 양이언
디자인:downleit
* 아트바바에 등록된 모든 이미지와 글의 저작권은 각 작가와 필자에게 있습니다.
운영시간
월요일 12:00 - 19:00
화요일 12:00 - 19:00
수요일 12:00 - 19:00
목요일 12:00 - 19:00
금요일 12:00 - 19:00
토요일 12:00 - 19:00
일요일 12:00 - 19:00
모든 프로그램은 주최측의 사정으로 변경될 수 있으니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