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원아트센터
2009년 10월 17일 ~ 2009년 10월 23일
이준_나무_디지털 프린트_60×42cm_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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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틀로직스-빈 병에서 풀어져 나오는 감각들의 다양한 변주곡
프롤로그
빈 병 하나가 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빈 병에 지나지 않지만, 그의 손을 거쳐 다시 보여 지는 빈 병은 지니를 담고 있는 알라딘의 낡은 램프처럼 낯설지만 신기한 세상들에 대한 다양한 변주곡을 들려준다.
바틀로직스
『바틀로직스』는 '병'을 소재로 하고 있는 이야기이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병을 빌어 하는 미디어의 세계와 미디어를 통해 펼쳐지는 다양한 감각적 경험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라는 편이 더 옳을 것 같다. 병을 의미하는 '바틀(bottle)' 말 혹은 이성을 의미하는 '로고스(logos)'의 합성어인 '바틀로직스'라는 용어는 작가 이준이 만들어낸 용어이다. 그동안 이준은 병에 관한 연작을 해 왔는데, '바틀로직스'는 같은 맥락에서 보여지는 병으로 그리는 다양한 변주곡이라 할 수 있다. 전시 '바틀로직스'에는 크게 네 개의 작품이 소개된다. 각각의 작품을 음악처럼 구성한 것은 아니지만, 작품을 보게 되는 맥락은 마치 4장으로 구성된 하나의 악곡을 듣는 것 같은 기분을 자아낸다. 전시장 입구에서 만나게 되는 「나무 Tree」는 프렐류드, 「만찬 Dinner」2악장, 「바틀과 테이블을 위한 연습곡 Etude for Bottle and table」는 3악장, 그리고 작가의 퍼포먼스와 음료시음까지 이어지는 「바 바틀 Bar Bottle」, 대단원의 4악장을 구성하는 듯하다.
프렐류드. 「나무」- 그림자 빈 병에서 '천천히' 나무가 자라난다.
언젠가 향기로운 와인을 담았을 법한, 그러나 지금은 비어 있는 빈 병 하나가 얌전하게 놓여있다. 왠 빈 병인가 싶지만, 조명이 만들어내는 빈 병의 그림자가 왠지 걸음을 멈추게 한다. 실재하는 빈 병과 그림자의 빈 병. 그림자가 실재를 배반할 수 있을까. 실재하는 병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이 그림자 병에서만 무엇인가 일어나게 할 수는 없을까. 현실과 허상사이, 실재와 그림자 사이에 관한 믿음은 잠시 유보하고, 지금부터 펼쳐지는 변주곡의 세계에 빠져보기라도 하라는 듯 그림자 병에서 하나 둘 작은 가지들이 뻗어져 나가며, 그림자 빈 병 안에서 가지들이 펼쳐지며 나무 하나를 만들어낸다. 여기에서 서서히 자라나는 나무는 다의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나무 구조, 좀더 일반적으로는 '트리구조'라 불리는 이 이미지는 종종 계통이나 가문, 혈통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기도 하지만, 컴퓨터 분야에서는 집합의 개념이 계층구조에 의해 연결된 자료구조를 지칭하는 것으로 종종 사용된다. 이준의 '바틀로직스' 역시 컴퓨터를 기반으로 데이터들을 가지고 하는 다양한 변주작업으로 「나무」가 보여주는 이미지들은 '바틀로직스'에서 보여주게 될 다양한 작품들의 기본 구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데이터구조를 통해서 갈라져 나가는 나뭇가지들은 현란한 사운드도 없고, 화려한 색상도 없지만, 어딘지 관객을 잡아끄는 묘한 매력이 있다. 앞으로 펼쳐질 다양한 악곡을 기대하게 하는 서곡처럼.
2장. 「만찬」, - '빠르게' 쏟아져 나오는 검색어를 통해 바라본 세상은 무미건조했다.
어두운 방 한가운데 놓인 하얀 식탁, 하얀 식탁 위 한가운데, 하얀 병. 그리고 네 개의 하얀 접시. 만찬을 위한 준비는 끝났다. 모든 준비가 완료되자 오늘의 주요리가 접시위에 흩뿌려진다. 오늘의 주 요리는 '검색어'. 흩뿌려지는 단어들 속에서 실시간으로 정신없이 돌아가는 세상의 단편을 맛본다. 세상을 경험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특히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가능해진 세상은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세상 경험, 이전과는 다른 세상경험을 가능하게 했다. 구글 검색을 통해 걸러지는 새로운 정보들, 네이버와 같은 새롭게 등장한 온라인 미디어에서의 실시간 검색 순위는 지금 바로 이 순간 나와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주된 관심사가 어떤 것이라고 나에게 전하며, 그것을 통해 걸러진 현실을 맛보기도 한다. 만찬은 하나의 검색어와 그 검색어를 통해서 트리구조처럼 펼쳐지는 또 다른 검색어들을 시시각각 보여준다. 때로는 너무 많은 검색어들이 순식간에 밀려들고, 개별 검색어들의 연관과 그것을 통해 읽어낼 수 있는 세상의 모습을 생각해 볼 겨를 도 없이, 글자들은 뭉개져버린다. 엄청난 가능성과 정보들이 밀려들고 있지만, 그것을 통해서 세상을 읽을 수 있다는 혹은 세상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오만하고 멍청한 발상인가를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다양한 검색어가 흩뿌려지지만 무색무취의 식탁과 테이블세팅처럼 무미건조할 뿐이다.
3장. 「바틀과 테이블을 위한 연습곡」변용된 오브제의 사용은 일상을 '경쾌하게' 물들인다.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 반드시 악기만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항변이라도 하듯, 테이블 위에는 몇 개의 빈 병들이 놓여있다. 한 때는 무엇인가를 담고 있을 때 실용적인 용도가 있으나, 실용적인 용도를 상실한 병은 어찌해야 할까. 병은 악기로 다시 태어난다. 테이블 아래에는 조명이 장치되어 있고, 테이블은 격자로 나뉘어져 있다. 빈 병을 이리저리 옮겨보면서 다양한 사운드와 시시각각 바뀌는 색상의 조명이 만들어내는 리듬은 무료한 일상을 경쾌하게 물들인다. 늘 보던 방식으로 세상을 보지 않고, 늘 하던 방식으로 세상과 상호작용하는 대신 가끔은 엉뚱한 생각은 삶을 경쾌하게 물들인다.
4장. 「바 바틀 Bar Bottle」시각과 청각이 빚어내는 향연을 '맛보다'
'바틀로직스'의 하이라이트이라고 할 수 있는 「바 바틀」은 기존에 보아왔던 시각과 청각의 상호작용에 '미각'을 덧붙인 작품이다. 그저 은유적인 표현으로서 예술을 '맛'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음식(음료)를 만드는 행위를 전시장 안으로 들여와 특별히 고안된 머들러(인터페이스)와 테이블을 사용하여 만든 오디오-비쥬얼 칵테일을 관객에게 제공한다. 싱그러운 레몬이 들어간 병(컵)을 옮기면 병의 움직임에 따라 테이블에 레몬 이미지가 번져가고, 번져가는 이미지에 맞춰 사운드가 만들어지면서 관객을 위한 '레모네이드 연습곡'이 완성된다. 관객은 레모네이드를 맛보는 동시에, 레모네이드가 빚어내는 사운드와 이미지의 다양한 변주를 즐긴다.
에필로그
'빈 병'을 매개(medium)로 하여 네 개의 작품을 연계하여 조화롭게 보여주겠다는 이준의 시도는 어쩌면 위험천만한 일일 수도 있었다. 왜냐하면, 인터랙티브 작업의 경우, 사용된 기술이 중첩되거나 혹은 누가 보아도 어떻게 작동하는 것인지가 훤히 보여질 때, 관객은 작품 앞에서 작가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미디어 작가들은 개인전 보다는 그룹전에서 단품을 소개하는 것을 마음 편해 한다. 자칫 그들이 가지고 있는 기술적 노하우가 쉽게 노출되거나, 작품의 얄팍한 주제의식이 노골적으로 바닥나게 될 수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준은 그동안 지속해 왔던 작업의 연장에서 『바틀로직스』를 완성했다. 인터랙티브 작업들로 구성된 『바틀로직스』는 개별 작품들이 산만하게 보일 수 있었으나, 미니멀한 '병'의 이미지를 매개로 해서 작품과 작품을 연결시켰다. 뿐만 아니라, 작품 별로 경험과 상호작용의 속도에 변주를 주고, 검색어와 같은 키워드를 부여하여 단순 자극과 반응의 미디어작업이 아닌, 미디어 문화에 대한 작가 자신의 은근한 비판의식도 담았다. 게다가 밋밋해지기 쉬운 오디오-비쥬얼 상호작용에 덧붙여진 '미각'은 관객에서 새로운 감각경험을 제공하기도 한다. 특히 「바틀 바」에서는 공연적인 요소를 도입하여 관객과의 직접적인 소통창구로 활용하면서 작품과 작품사이의 경험에 강약을 주며 관객의 경험치를 변주해 나간다. 사실 인터랙티브 아트는 이제 더 이상 새롭지 않다. 비슷비슷한 인터페이스는 이미 식상하고, '새로움'을 찾아 보기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게다가 주제의식이나 테크놀로지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 없이 그저 기술을 보여주는 작품에 열광하기에 지금의 관객은 미디어에 너무 많이 노출되어 있는 생활을 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바틀로직스'는 '병'이라는 메타포와 '미각'이라는 새로운 감각적 경험을 덧붙여 지금까지와는 다른 감각적 경험을 관객에게 제공한다는 점에서 조금은 신선한 시도라 할 수 있다. 때로는 느리게, 때로는 경쾌하게 변주되는 『바틀로직스』의 연주는 무료하고 지루하기만 한 일상에 찌든 관객들에게 시원한 레모네이드 같은 짜릿함을 선사해주며, 아직도 미디어 아트(인터랙티브 아트)가 해볼 만한 시도들이 많이 있음을, 아직도 우리가 예술로 개척해볼 수 있는 영역들이 남아있음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게 한다. 신보슬
출처 : 송원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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