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도스
2020년 5월 6일 ~ 2020년 5월 12일
저편에서 이곳으로
갤러리도스 큐레이터 김치현
경험 속의 순간을 기억하고 보존하고자 하는 사람의 욕망은 시대와 문화를 막론하고 이어져왔다. 돌의 표면을 깎아내거나 안료로 벽화를 새기던 옛날부터 그림과 사진, 연극과 영화를 통한 발전의 양상은 당시의 상황이나 상상 속의 이야기를 마치 실제로 보는 듯 생생하게 구현하는 방향으로 발전되어왔다. 시각적 표현은 동시대에 이르러서까지 미디어에서 다루어지는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느껴지게 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사람들은 배우에게 보다 사실적인 연기를 요구하고 장면에 어울리는 배경음악에 심취하며 과거에는 감상의 방해요소로 여겨지던 물리적 충격과 냄새까지 경험하고자 한다. 재현된 경험을 향유할 때 오는 쾌감은 하나의 감각으로 국한되지 않기 때문이다.
평면에 그려진 회화이지만 높은 채도와 대비가 명확히 드러나는 이미지로 인해 화면은 물리적 깊이감이 느껴진다. 실제로 존재하는 공간이 아니기에 밝음과 어두움의 표현보다는 화면 안의 어느 지점마다 사용된 색의 차이로 풀어서 이야기하는 것이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색이 칠해진 구역으로 분할된 형태는 자연스럽게 선 원근법을 연상시키며 화면 중앙의 저 멀리에서 관객을 향해 발산하는 밝은 빛의 공간을 구현한다. 대칭 구도로 그려진 작품의 경우 앞서 이야기한 색의 차이는 서로 충돌하는 파형의 이미지를 떠오르게 한다. 하지만 역시 색의 차이와 칠해진 구역의 크기 차이로 인해 관객은 갈림길에 도달한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된다. 밝은 빛으로 보이는 색은 작은 범위에 칠해졌기 때문에 터널의 중간지점에서 모양이 각진 출구의 끝을 바라보는 듯한 상황으로 다가온다. 이렇게 연상된 이미지에서는 자연스럽게 공기의 온도 차이나 소리의 울림과 같은 해당 공간이 지닌 공감각적인 특징이 함께 느껴진다.
화면을 전부 물감으로 칠하지 않고 특정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천의 질감이 느껴지게끔 남겨둔 경우 앞서 이야기한 화면의 깊이보다는 평면성이 강조된다. 깔끔하게 정돈된 그라데이션과 색이 칠해진 구역 밖으로 미묘하게 삐져나온 물감은 캔버스 표면의 직조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결의 방향을 타고 번지다 말라붙었다. 스케치로 분할된 부분을 채우는 것 뿐 만 아니라 농도가 묽은 물감이 뿌려진 모습은 기하학적 모양으로 구획 지어진 화면의 고요함을 깨트리고 리듬의 변화를 준다. 천을 프레임에 끼워 맞추지 않고 그대로 당겨서 설치한 작품은 그로 인한 미묘한 요철로 인해 작품을 구성하고 있는 형상뿐 아니라 재료의 특성이 강조되며 회화성이 강하게 느껴진다. 사물의 물질성을 완전히 제어하지 않고 남겨둔 부분과 작가가 의도한 화면 속 이미지는 서로 차이를 도드라지게 하며 작품이 관객에게 주는 감각적 정보를 확대한다.
이채현은 미디어에서 익히 보이는 어떠한 상황에 대한 재현이 아니라 촬영 기계가 기록할 수 없는 감각 그 자체의 시각적 재현과 공유를 추구한다. 이는 구체적인 시각요소로 채워진 작품이 아니며 관객이 자신의 기억에서 비롯된 연상을 최소로 줄인다. 동시에 증강현실과 같은 첨단 기술이 떠오르고 있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감각적 체험이 구체적인 이미지 없이 어떻게 다가올 수 있는지 전해준다.
출처: 갤러리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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