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센터예술의시간
2025년 11월 29일 ~ 2026년 1월 10일
바람과 새의 소리를 내는 여자들에 대하여
김지율
몇 개의 문턱과 좁은 계단을 통과해 도착한 이곳에 어떤 소리가 들린다. 익숙한 언어이지만 억양과 리듬이 생소하게 느껴지는 목소리. 명료하지 않지만, 이렇게 들을 때에야 확실해지는 것이 있다. 낯선 언어로 말하는 사람의 문장은 단순해지고 수식은 최소화되며, 꼭 전해야 하는 말만 남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목소리가 주변의 바람과 새 소리처럼 자리를 찾지 못한 채 공중을 떠다니듯 흩어져도, 우리는 이것을 주의 깊게 들어볼 필요가 있다.*
«Desir Angin 바람의 속삭임»은 이동하는 여자들에 대한 전시다. 여자들은 온갖 역사와 언젠가 가득했던 절망과 희망, 그 뒤에 남은 지루함을 껴안고 대담하게 움직인다. 이때 이동은 정해진 출발점과 도착점이 있어 그 사이를 잇는 선분과 같은 형태가 아닌, 멈추지 않고 계속해 이어지는 형세로서의 이동, 달리 말해 삶의 모양새와 같은 움직임이다.
아주 먼 역사에서부터 지금까지 이동은 권력과 자본의 궤적을 따라 이루어져 왔다. 영토 확장을 위한 항해와 비행, 강제 동원, 추방된 이들의 행렬, 수탈한 자원의 운반에서부터 이제는 자발적인 이주 노동, 물류와 항공의 체계, 소비와 체험 중심의 관광까지. 이 커다란 말들이 멀리 있는 추상이 아님을, 또한 이 말들 속에서 삶을 만들어 가는 여자들이 있음을, 그리고 이 여자들이 우리 가까이에 있음을, 당신은 알 수 있을까?
전시는 이를 전하기 위해 동굴을 파고든다. 제주와 인도네시아, 홍콩과 필리핀 곳곳에 위치한 동굴이다. 식민지를 건설하기 위해 지어진, 일본군이 만들었다 하지만 그 이전에는 네덜란드군이, 영국군이 사람들을 부려 산과 해안 절벽에 구멍을 뚫었다던, 그리하여 섬으로부터 빼앗은 것들과 비행 연료를 저장하는 무기고로 사용했거나 사람들을 가두었다던.* 죽음을 부르는 뱀이 우글거린다는 소문이 파다한 수많은 구멍. 떠도는 소문에는 이 동굴들이 개미굴처럼 서로 이어져 있다고 한다. 이 나라로 들어가 나아가다 보면 저 나라로 연결된다는 것인데, 이는 일견 믿음직스러워 보인다. 애초에 이 동굴들은 각 나라의 사람과 물자, 자본과 권력을 잇기 위해 뚫린 구멍이었으므로.
그리고 이곳을 이용하는 여자들이 있다. 관광 상품이 된 역사 앞에서 물과 주스, 떼 보똘*을 판매하는 노점상을 열고, 가이드로 일하며 돈을 버는 여자들이다. 이들은 작은 바람 같은 기회가 불면 짐을 꾸려 떠난다. 그러니 동굴과 동굴이 이어져 있다는 소문을 들은 여자들은 미련 없이 그곳으로 들어간다. 여자들은 구멍을 통과하는 동안 뱀과 지혜를 나누고, 다른 여자들과 노래를 부르고, 유급 휴가를 받는 좋은 일자리를 구해보려 할 것이다. 가지지 못한 권리를 취하기 위해 이곳과 저곳을 넘나들면서, 역사가 만든 구멍을 자기 방식대로 사용하는 것이다. 이 대담함은 누군가의 입에선 이주 노동자라거나, 불법과 합법이라는 제도의 단어로 가려지지만, 여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뜻대로 되지 않아도 상관없다. 더 나은 환경을 기대하며 약간의 바람에도 날아갈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날아간 곳에서 바람과 새 소리처럼 들리는 낯선 언어를 배우며 또 시작하면 되기에.* 그렇게 여자들은 자신이 속한 시공간을, 식민이라는 역사와 이주 노동이라는 산업, 모든 현실을 구체적인 삶의 통로로 만든다.
다시, 낯선 억양과 리듬의 익숙한 언어가 들린다. 그 목소리는 매끄러운 역사와 현실에 완전히 속하지 않은 채, 그러나 거기서 완전히 벗어나지도 않은 소리로, 동굴 같은 전시장을 떠다닌다. 그것을 따라 우리는 어디로 향할 것이며, 그곳에서 어떤 소리를 내게 될까.
* 이 문단은 “낯선 혀로 말하는 사람은 조류학자이자 한 마리의 새”라고 말하는 다와다 요코의 시학 강연이 담긴 책 『변신』의 1강 「새의 목소리 또는 낯섦의 문제」에 기대고 있다.
* 작가의 에세이에서 발췌.
* 인도네시아 국민이 즐겨 마시는 달콤한 재스민차.
* 태평양 전쟁 시기 동원된 일본의 자살특공대 가미카제가 일본어로 신풍(神風), 즉 신이 일으킨 바람이라는 뜻을 가졌다는 사실은 기묘하다.
작가 소개
이희경은 한국 사회에 정주 중인 아시아 이주민들의 삶과 배경을 리서치하며 영상과 드로잉 등을 매체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개인의 미시사에 잠재된 문화, 역사적 배경과 도착지의 여러 사회적 레이어로 형성되는 이주 여성의 다층적인 정체성의 구현 방식에 주목하고 있다. 글로벌 자본 체인망을 타고 이동하는 그들이 자신을 재구성하기 위해 실천하는 일상의 현실과 여전히 유효한 아시아의 식민근대의 그림자 사이를 오가며 공동체의 미래에 질문한다. 개인전 《둥글지 않은》(더레퍼런스, 2023), 《너의 이름을 부를 때》(보안여관, 2022), 《깊고 고른 양질의 숨》(테미창작센터, 2020), 《Next Door》(쇼앤텔, 2020)을 가졌다.
후원: 서울문화재단, 아트센터예술의시간
주최·주관: 이희경
협력 기획: 김지율
그래픽 디자인: 권수진
영상 설치: 올미디어
목공: 공작실
사진: 송호철
* 아트바바에 등록된 모든 이미지와 글의 저작권은 각 작가와 필자에게 있습니다.
운영시간
월요일 10:00 - 18:00
화요일 10:00 -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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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10:00 -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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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휴관
휴관: 일요일, 공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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