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렴가옥
2022년 4월 2일 ~ 2022년 5월 1일
1 / 9
중대한 사건을 마주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일상은 무언가에 쫓기듯 바쁘고 정신없이 흘러간다. 급변하는 세상과 매일의 속도에 튕겨 나가지 않기 위해 앞만 보며 달려가는 현실 속에서, 예술은 간신히 몸을 뉘어 숨을 쉴 수 있는 안식처가 되기도 한다. 긴 하루의 끝에 무심코 집은 책의 책장을 넘기다가, 별다른 기대 없이 예매한 영화를 보다가, 혹은 걷다가 우연히 들른 전시장에서 발견한 작품들을 바라보다가 문득, 우리는 작품 속에 펼쳐진 세계와 맞닥뜨린다. 그 세계들은 때때로 평소와 다름없던 일상에 작은 변화를 일으킨다. 예견한 경로로 궤적을 그려온 우리들의 여정은 이런 작은 변화들로 인해 미세하게 틀어져 앞으로의 궤도를 달리할지도 모른다. 전시 «잠재감각:cryptesthesia»은 이처럼 예술적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세계가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고 있는 현실에 미치는 영향과 가능성, 그리고 그 작동 방식에 주목한다.
문학, 음악, 미술 등 예술의 장르나 매체를 막론하고 예술가는 자신의 상상력에서 출발하는 크고 작은 세계와 이야기를 창조한다. 그 무수히 많은 세계는 물론 창작자의 치열한 고뇌 끝에 탄생하지만, 창조된 세계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 그것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 되었는지를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우리가 속해 있는 우주의 탄생 시기나 원인을 추측만 할 뿐 과학이나 종교적으로 명징하게 증명할 수 없듯이, 상상력으로 빚어진 세계의 시발점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데에도 한계가 존재한다. 전시의 제목인 ‘잠재감각cryptesthesia’은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지각 작용을 일컫는 심리학 용어이다. 잠재감각이 의미하는 바와 같이 전시는 예술가들이 잠재감각을 말미암아 이성 중심주의적 가치관에서 지금까지 비화해 온 비이성과 직관, 상상력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고 있음을 역설한다.
우리는 조금이나마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노력을 계속해오고 있다. 그러나 이따금 현실의 삶은 깊은 절망과 무력감의 연속으로 다가오곤 한다. 지난한 세월 동안 축적되어 온 역사가 만들어낸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은 지극히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기억을 가지고 과거로 돌아가는 회귀물이라든지 세계 종말을 다루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에 대한 관심 역시 실타래처럼 뒤얽힌 문제들에서 벗어나 완전히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는 막연한 욕망이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예술가들은, 그리고 예술적 상상력을 가지고 있는 우리들은 이처럼 어떤 속박과 제한도 없는 저마다의 세계를 꿈꿀 힘을 가지고 있다.
예술가들이 그리는 세계는 어딘가 현실과 닮았으면서도 완벽하게 조응하지 않는 가상의 세계이다. 가상과 현실의 불일치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이격은 감상자가 마치 ‘다른 그림 찾기’ 퍼즐을 맞추는 것처럼 두 세계를 교차로 겹쳐보며 미세한 차이를 인지할 수 있도록 만든다. 그리고 저마다의 생각을 펼칠 수 있는 정서적인 틈을 마련한다. 상상력 위에 세워진 세계에는 앞으로 도래할지 모르는 혹은 이미 도래한 사건들이 채워져 있다.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미래의 모습을 예측하거나 기술의 발전으로 바뀌어버린 감각과 지각의 단면을 다룸으로써 작품 속에 가장 최신의 경향성을 담아내기도 하고, ‘다시쓰기’를 통해 과거와 마주하고 대화를 나누며 (때로는 오염시키기도 하면서) 오늘의 현실과 앞으로의 미래에 영향을 미친다. 작품을 통해 과거와 미래, 혹은 현실의 모습을 미묘하게 어긋나도록 포착하고 이를 시각적으로 제시하는 이들의 모습은 기록되지 않은 과거,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다룬다는 점에서 앞으로 다가올 일을 미리 알고 있는 예지자를 연상시킨다.
우리가 이곳에서 마주할 세계들은 지금껏 절대적으로 받아들여진 지배적인 역사관과 현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잠재감각:cryptesthesia»은 비주얼스프롬., 장재록, 최하늘, 추수, 태 킴의 작품들을 통해 이분법적으로 재단할 수 없는 것들의 경계를 탐색하고, 쉬이 규정할 수 없는 모호한 상태와 존재들을 불러온다. 작가들은 무기력한 태도로 현실 속의 문제점을 드러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덧씌우고 때로는 완전히 새롭게 써 내려가면서 그 변화의 가능성까지도 제시한다. 예지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기억된 하나의 역사가 아닌, 수많은 목소리가 노래하는 무한한 가능성의 영역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진다. 그리고 그들의 손끝에서 시작된 이야기의 여정은 우리의 마음으로 이어져 작품 밖 현실로 뻗어 나간다.
/ 이규식 독립 큐레이터
참여 작가: 비주얼스프롬., 장재록, 최하늘, 추수, 태 킴
기획: 이규식
디자인: 이현송
사진: 심규호
* 아트바바에 등록된 모든 이미지와 글의 저작권은 각 작가와 필자에게 있습니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계동길 89
운영시간
월요일 휴관
화요일 10:00 - 18:00
수요일 10:00 - 18:00
목요일 10:00 - 18:00
금요일 10:00 - 18:00
토요일 10:00 - 18:00
일요일 10:00 - 18:00
휴관: 월요일, 공휴일
모든 프로그램은 주최측의 사정으로 변경될 수 있으니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