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먼센터
2013년 11월 29일 ~ 2014년 1월 18일
이은우, ‹보도블럭›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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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공간을 미술의 배경으로 사용하는 일은 흔한 일입니다. 그런 장소에서 열리는 전시는 보통 ‘우리’가 돌보지 못하고 지나쳤던 ‘과거’에 대한 ‘기억’을 상기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되곤 합니다. 누군가의 일상의 공간이었던 적이 있는,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지만 급격한 도심재활성화로 버려지게 된, 공간이 주는 기묘한 더러움과 노스텔지아가 미술가에게 어필하는 구석이 분명 있으리라고 봅니다.
커먼센터가 들어선 빌딩 역시 이러한 의혹에서 자유로운 편은 아닙니다. 인사동이나 삼청동이나 청담동이나 홍대나 이태원이나, 심지어 문래동도 아닌 영등포의 원래 용도의 수명이 거의 다 한 건물입니다. 게다가 서울의 오래된 대표적 상업지구였던 영등포는 현재 마치 상처 속에서 보이는 나이테처럼 근대 서울의 발전 양상을 한 시야에 담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백화점과 거대 쇼핑센터가 들어서면서 혁신적 서울의 21세기를 상징하는 듯 보이기도 하지만, 오래된 역 앞의 전형적 풍경을 그대로 보여주는 노숙자와 사창가 역시 여전히 영등포를 상징합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커먼센터의 개관준비전은 화이트큐브와 애써 각을 세우며 일부러 도심의 구석을 찾아 헤매거나 도시의 시간성을 주제로 해서 꾸려지는 미학적 태도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지기 위해, 감상적 접근보다 좀 더 깊숙한 방향을 시도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가장 큰 전시장인 101호를 우선 다듬어, 미술의 용도에 걸맞는 공간으로 전환하는 과정을 전시하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는 꾸준히 제 영역에서 사물과 공간에 대한 비감상적 접근을 시도하던 두 명의 미술가, 김영나와 이은우가 참여했습니다. 그래픽 디자인과 현대 미술이라는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영역에서 제 활동을 공고히 해오고 있던 두 작가는 각기 주어진 조건과 공간 속에서 사물을 활용하는 법에 대한 독특한 감각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선 김영나는 그래픽 디자이너로서의 작업과 미술가로서의 작업을 분리해 전시에 참여합니다. 그러나 김영나가 둘이 아닌 이상, 전시 및 공간의 아이덴티티를 ‘디자인’하는 일과, 실제 전시장에 ‘작품’으로 놓일 ‘사물’을 ‘작업’하는 일을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이러한 조건을 두고 김영나는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클라이언트(커먼센터)의 로고를 만들어 활용하면서 제약을 정면 돌파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그리고 빈 건물에 들어가 제 생존권을 스스로 보장하는 방식인 스쿼팅에서 착안, 이 건물은 이제부터 커먼센터의 것이라는 점을 선언하는 몇 개의 태그를 전시장 안에 설치했습니다. 여기에 설치된 조형물은 모두 다른 미술 전시장에서 특정 행사를 위해 임시로 제작된 사물인데, 이것 역시 ‘고물을 주워다가 필요한 용도에 맞춰서 사용하는’ 스쿼팅의 생활 방식을 지칭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선별된 사물이 늘어선 전시장은 정식 오픈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미술관에서 쓰이게 될 사물을 미리 저장하는 일종의 임시적 창고이기도 합니다. 즉, 앞으로 커먼센터의 모습을 어렴풋이 짐작하게 하는 단서이자 기존 미술계와의 구분을 의미하는 미술적 행동인 셈입니다.
이에 반해 이은우는 전시장에서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물품을 만드는 것으로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미술관마다 임시로 제작되어 사용된 후 파기되는 가벽을 재현함과 동시에, 그것이 단순히 공간을 구획하는 기능 이상을 가질 수 있도록, 사무실처럼 사용할 수 있게 수납공간을 함께 만들었습니다. 이 사물은 실용적인 쓰임새를 노리지만, 정작 두 개의 기능이 충돌하면서 묘한 체증을 낳습니다. 보도블럭처럼 밟을 수 있어야 그 기능적 요구가 충족되는 사물을 깨지기 쉽고 때묻기 쉬운 재질로 만들어 놓은 점에서는, 그 모양으로 뻔히 짐작 가능한 기존의 용도와 실제로는 사용이 불가능하다는 점이 충돌하며 묘한 관계적 아이러니가 도출됩니다.
이은우의 작업을 관통하는 또 다른 키워드는 ‘단위’입니다. cm나 kg처럼 절대적 기준으로 사용되는 단위 뿐 아니라, 특정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마치 은어처럼 사용되기도 하는 어떤 질서의 총체에 주목합니다. 목재나 콘크리트 등 주로 건설에 쓰이는 자재들의 단위에 집중하면서, 일률적으로 구획되는 단위가 아니라 단위를 기준으로 형성된 어떠한 실용적 사물의 형태를 뒤섞으면서 유희적인 단위를 만들어 냅니다. 그러므로 이 전시에서 시트지는 두 개의 다른 패턴에 부여된 어떤 규칙 속에서 자연스럽게 서로가 서로를 참조하는 양상으로 뒤엉키면서 유일무이한 형태를 빚어냅니다.
이 전시에서 ‘적합한 종류’의 사물이 있다면, 그것은 과연 어디에 적합하다는 말일까요? 실제로 사용할 수 없는 사물을 만드는 일을 적합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혹은 미술 전시에 적합한 상태로 공간을 테라포밍하기 위해 꺼낸 미술가들의 아이디어가 정말 미술을 전시하기에 적당한, 혹은 미술 전시장을 꾸미는 데에 적당한 것일까요? 김영나, 이은우의 ‹적합한 종류›는 앞으로 운영될 커먼센터라는 미술 전시장에 칼집을 넣는 일이자, ‘젊은’ 미술가들이 현재의 미술계를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대한 알레고리가 될 것입니다. 본 전시는 2014년 1월 18일까지 열립니다.

이은우, ‹보도블럭›, 아크릴, 락카 페인트, 각 1.5×30×30 cm; 8개, 2013

기획 함영준
후원 서울문화재단,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출처 - 커먼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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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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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13:00 -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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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13:00 -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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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관: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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