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랜비프로젝트스페이스
2018년 10월 11일 ~ 2018년 10월 28일
금요일에게, 우리가 다시 만나서 정말 반가워 | Dear Friday, I’m so glad we are back together
글 임보람(Director of Plan B project space)
인간이 반복을 경험하는 것은 재현을 통한다. 반복되는 경험은 습관에 일반성을 부여하고, 기억에 특이성을 부여한다. 틀림없이, 머리는 교환의 기관이지만 심장은 반복을 사랑하는 기관이다. 그러나 이것은 들뢰즈의 논리이다. 전시의 제목 <금요일에게, 우리가 다시 만나서 정말 반가워>는 작가의 신작<금요일에게>(2018)에 삽입된 스크립트의 일부에서 따온 것이다. <금요일에게>(2018)는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에 이르는 시간의 흐름을 넌지시 제시하면서도 실은 시간의 축 위에서 정진행의 섭리를 어기고 진행되는 영상이다. 요일이 바뀌면서 영상 속 텍스트가 내러티브를 이끌지언정 과거의 어느 시간에 기록된 영상과 이 텍스트가 맞물린 상태에서 관람자가 맞닥뜨리는 것은 시점(時点)의 혼재이다. 요일은 시간의 축이자 시간의 반복이며, 반복되는 요일이 상징하는 것은 인류의 오랜 시간의 축 위에서 여전히 반복되어 일어나는 사건이자 순간이다. 들뢰즈의 반복은 특이성을 가진 차이를 만들어내는 데 반해, 전지인의 반복은 재현의 표상만이 특이성을 가질 뿐 반복이라는 현상에 의해 발현된 개념은 여전히 동질성을 가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반복되는 개념의 동질성을 깨닫고 나니, 인류의 시간의 축은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일주일의 반복에 불과함을 깨닫게 된다.
작가는 반복에서 발현된 차이는 결국 고착화된 사고방식-관념 안으로 회귀하여 작동한다고 본다. 작가에게 관념이라는 것은 사물의 본질을 파악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사회 안에서 간접적으로 전달되는 개념들로 인해 개인이 경험을 토대로 하여 주관적인 의식을 일으키는 현상이다. 즉 작가의 언어가 관념에 접근할 때에는 매우 개인적인 경험으로서 의미를 가져야 하는 것인데, 역설적으로 이것은 한 사회 안에서 공통성-일반성을 갖는다. <금요일에게>(2018)에서 화면을 구성하는 것은 세상을 구성하는 RGB-삼원색이며, 우리가 늘 보는 풍경을 구성하는 색들은 결국 이 삼원색이라는 틀 안에서 조합된다. 풍경을 구성하는 다채로운 색들과 삼원색 모형은 각각이 마치 사적인 이야기와 공적인 이야기의 관계처럼, 서로 간에 교차점을 만들어내면서 무한히 이어지는 궤도를 반복한다. 작가의 시각에서 색과 텍스트로 이루어진 사물의 세계가 한 바퀴 돌아 (매우 반가운) 금요일을 다시 만난다는 것은, (매우 주관적인) 기원으로 회귀하는 영원회귀의 세계이다. 이러한 회귀는 일반성을 가진 법칙들의 질서처럼 보이지만 실은 순수하게 주관적인 의식의 세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의 축 위에 놓인 일상-일주일의 반복-은, 재현의 논리에 의해 사회 안에 암묵적으로 합의된 (주관적이지 않은) 개념들에 개인이 부응할 것인가를 판단하는 기준을 제시한다. 재현의 논리 하에서 개체는 개념에 부응할 경우에만 참된 개체가 되기 때문이다. 여성이 여성이라는 개념에 부응하여 참된 개체가 된다는 것은 즉, 인류가 쌓은 시간의 축 위에서 재현을 반복함으로써 고착화된 사고방식 안에서 가능한 것이므로 하나의 개별적 존재로서 지니는 고유한 차별성이 무시된다는 뜻이다. 개별적 존재로서의 고유성이 대명사로 치환되어 고착화된 관념 안에서 재현에 재현을 거듭한다는 것은 작가의 전작 <Harmony Directory>(2016-2017)와 <자연은 너를 자기 걸작으로 만들고자 했다>(2017)에서 먼저 드러나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두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인용하는 속담들은 각기 다른 국가의 문화권에서 이어져 내려온 ‘너’에 관한 이야기, 여성에 관한 속담이다. <Harmony Directory>(2016-2017)는 성장과 변화의 과도기에 있는 장소를 배경으로 하면서 동시에 변하지 않고 전해지는 속담을 통해, 변화하는 물리적 시간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너’에 대한 시대적•계층적 관념을 말한다. 은경 아크릴에 각국의 속담을 수집하여 새겨 넣은 작업 <자연은 너를 자기 걸작으로 만들고자 했다>(2017)는 이번 전시에서 기존의 조각-파편의 집합적 형태로부터 ‘하나씩 집에 가져가 장식할 수 있는’ 액자 속으로 들어가면서 독립성을 추구한 작품 <Folder: 직박구리>(2018)로 변형되었는데, 전작에서의 ‘너’는 집합적으로 관념화된 수많은 ‘너’로서 기능했다면 개별적으로 독립한 은경 아크릴 위의 ‘너’는 더욱 더 개인의 관념–습관과 기억-에 접하는 것이 가능한 ‘너’이다. 여성이라는 개체를 치환하기 위한 대명사 ‘너’는 과거로부터의 경험과 습관에 의한 반복을 통해 개념에 부응했다. 인류의 시간의 축에서 매번 새로 생겨나는 반복은 결국 ‘너’를 재정의하지 못한다. 아름답지만 비정하고 거칠지만 고요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으로서 일종의 위악이자 동시에 위선을 택하며, ‘너’는 타인의 요구에 응답했다. 이로써 ‘너’는 이 세상에서 존재의 당위성을 얻었다.
확대된 이미지의 망점들로 이루어진 <큐비클 바디>(2018)는 작품 뒤에 숨은 이미지의 원본을 알아볼 수 없다. 재현이라는 것이 개념과 그 대상 사이의 관계를 지칭하는 것이라면, <큐비클 바디>(2018)로 재현된 그 대상-이미지의 원본-을 식별하고자 하는 시도는 의미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재현이라는 것은 대상과의 관계일 뿐이며 예술작품은 재현으로써 근원이 없는 모사를 유의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관객이 인지하는 것은 원본이미지가 아닌, 이미지의 망점들이 뭉치고 흩어져 진열된 형태이며, 개인의 관념이 인지과정을 통해 습관과 기억으로부터 표상을 관람의 순간으로 끌어낸다.
사회 안에서 개인이 ‘너’로서 존재함으로써 특이성을 가진 차이가 관념 안으로 고착화하는 과정이 오랜 시간의 축 위에서 끝없이 반복되고 있음을 인지한 작가가, 이러한 주제를 두고 수년간 다양한 매체와 텍스트로 고민해왔다는 것은 이번 전시의 작품들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은, 습관과 기억이 결합되고 반복되면서 만들어낸 이 세상의 개념과 표상에 부응하는 사고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짊어지고, 다가오는 금요일을 또 다시 기다린다.
주최: 플랜비 프로젝트 스페이스
포스터 디자인: 테이블스튜디오
후원: 문화체육관광부, (재)예술경영지원센터, 미술공유서비스
출처: 플랜비 프로젝트 스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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