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켄드
2018년 8월 25일 ~ 2018년 9월 23일
천장 위에 바닥, 바닥 위에 천장
<천장 위에 바닥>은 탄성충돌구에 대한 ‘교작' 시리즈 13점과 ‘엄격한 템포', ‘처음 같지 않은 마음', ‘더 더 더 더 더' 3점으로 구성된 전시로, 지난 몇 달간 정덕현이 사물의 본질을 보기 위해 거쳐온 일련의 수련 과정을 선보인다.
최근까지 사물은 작가가 경험하고 느낀 세상의 어떤 면을 명확히 담아 화면에서 작용하는 작업의 주축으로 기능했으며, 이를 화면에서 구성하는 방식은 조금씩 변해왔다.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정덕현은 주로 재봉틀, 볼트, 못 등의 한 가지 사물을 화면 정중앙에 배치하거나 반복하며 노동에 대한 강력한 정치적,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압도적인 작업을 선보였다. 이후 작년까지는 작가의 직접적인 경험에서 비유한 자화상을 그렸다. 이 작업에서 그는 여러 사물로 마치 한 편의 시나리오나 극적인 상황을 포착한 장면처럼 연출했을 뿐만 아니라 박스 4면에 한 사물의 위, 아래, 옆을 그리며 이전의 화면 구성에서 변화를 꾀하는 동시에 사물을 보는 관점에 대한 고민 또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근래에 작가는 그가 본 정면(천장)이 누군가에게는 반대면(바닥) 일 수도 있음을 확실하게 깨닫고, 자신이 내온 목소리가 의도치 않게 본질을 일방적으로 판단하거나 단정 지어 정해진 답을 강요할 수도 있다는 점을 인식했다. 하여 사물의 본질을 알기 위해서 사물에 담긴 의미나 목적을 철저히 배제하고 다양한 각도에서 물리적 특성만을 관찰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즉 이전 작업에서의 ‘사물(오브제)’은 작가가 보고 경험한 현실을 명확하게 투영하는 매개체로 작용했지만, 이번에는 ‘사물’에 부여된 특정한 의미가 없는 것이다. 탄성충돌구라는 오브제를 선택하게 된 이유는 단지 5개의 추와 받침대로 이루어져 있고 양 옆의 추에 들어간 에너지가 상호작용을 하는 재미있는 운동성에 매력을 느껴서였다.
‘교작' 시리즈에는 탄성충돌구라는 물체를 최대한 다양한 관점으로 보고 그리기 위해서 노력한 작가의 고민과 인내가 드러나 있다. 탄성충돌구는 회색톤의 뼈대, 줄, 추와 버건디색의 지지대로 이어져 있고 플라스틱, 얇고 굵거나 둥근 쇠의 매끄러운 질감을 가졌다. 뼈대와 추가 매달려있는 줄은 곧았으며 움직이는 추를 지탱하는 줄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있었다. 작가는 이렇게 관찰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가지런한 추를 꼬거나 한 부분만 확대해서 보는 등의 다양한 변화를 주기도 했다. 작가의 시선은 표면에서 시작하여 구조, 그리고 특성으로 점점 옮겨간 것을 볼 수 있다.
이번 작업에서는 화면의 크기 또한 눈에 띄게 달라졌다. 주로 가로세로 1m가 훌쩍 넘어가는 커다란 화면에서 1m 이내 크기로 작업하는 일은 작가에게 테크닉적으로나 육체적으로도 또 다른 도전이었다. 이전에는 큰 덩어리로 그려도 충분히 표현됐지만 이러한 테크닉은 작은 화면에서 쓰기 어려웠고, 몸의 움직임을 제한하고 섬세하게 표현하자 작품의 크기가 달라져도 완성하는 데에는 이전보다 비슷하거나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렇듯 제한적이고 반복적인 작업에 작가는 점점 지쳐갔다.
그래서일까, ‘교작’ 시리즈 외의 세 작업에는 그동안 억눌러온 그만의 작업 성향이 다시 나타난다. ‘엄격한 템포'는 지친 자신을 다시 채찍질하려는 의지가 담겨있고, ‘교작' 시리즈를 끝낸 뒤의 작업인 ‘처음 같지 않은 마음'에는 내면의 갈등이 분해된 탄성충돌구와 줄다리기로 표현됐다. 이 작업과 연결되는 ‘더 더 더 더 더'는 탄성충돌구 그리기를 멈췄다가 시간을 갖은 뒤 다시 작업한 것으로, 추에 비친 작가의 무료한 얼굴과 여러 각도의 탄성충돌구, 계속 이어진 밧줄로 끝이 난다. 이 작업은 예전처럼 큰 화면에 사물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는 자화상과 비슷한 선상에 있지만, 냉소적이고 강력히 주장하는 목소리보다는 좀 더 객관적이고 솔직한 목소리를 내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개인전은 관객에게 정덕현이 완성한 완벽한 결과물을 선사하지 않지만, 그의 작품 세계의 결정적인 변화를 알리는 예고편이다. 언젠가 작가와 작업에 대해 이야기를 하던 도중 그는 마지막에 여러 의미를 담은 작업을 하게 되어 사물의 본질을 보고자 했던 목적과 어긋났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하지만 오히려 자연스러운 변화의 과정을 통해 전과 같지만 새로운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본다. 사물을 제대로 보기 위해 사물을 보기로 한, 즉 자신의 믿음과 그에 따른 행동이 달라져야 한다고 깨달은 상황에서 꼬인 것을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작가만의 단순하고 명쾌한 시도가 통한 것 같다. / 박혜린 위켄드 공동디렉터
디자인: 윤지영
출처 : 위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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