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한원미술관
2017년 8월 17일 ~ 2017년 9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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畵歌(화가)전은 한국화의 지속적인 성장을 도모하고 젊은 한국화 작가들에게 전시의 기회를 제공하여 활발한 작품 활동을 독려하고자 2010년부터 기획된 전시이다. 매해 한국화의 위상을 제고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해온 지난 일곱 번의 전시를 통해 한국화가 한국 현대미술계를 넘어 국제 미술계에서 소통될 수 있는 동시대 미술로서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8번째 畵歌전 《플라뇌르 Flâneur – 어느 산책자의 기록》은 한국화가 동시대 예술로서 소통 가능한 지점이 무엇인지, 관람객과 어떻게 공감대를 형성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한 전시로서, 동양의 전통 기법을 고수하면서도 현대적인 소재를 더해 우리 사회를 인상학적으로 조망하는 민재영, 정희우의 2인전이다.
전시 제목에 등장하는 ‘플라뇌르(산책자)’는 발터 벤야민이 제안한 용어로, 도시 속 산보객, 즉 사회 속 텍스트를 읽고 이해하고 비판하는 자를 말한다. 민재영은 도시적 일상의 기록을 통해 우리 사회 속의 보편성을 얘기함과 동시에 개인의 개별성의 표지를 은유적으로 드러냄으로써 모든 관자들을 작가 작품의 주인공으로 유도한다. 정희우는 탁본이라는 고유한 기법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의 흔적을 기록하며 대도시의 표면적 현시를 넘어 그 안의 참된 성격을 되묻는 작업을 선보인다. 이들 두 명의 작가는 우리 사회의 집약적 표본이라고 할 수 있는 도시의 모습을 산책자의 위치에서 수집, 기록한 작업을 보여줌으로써 현대사회와 미술의 관계 맺기에 주목하고자 한다.
작가소개
민재영 Jaeyoung Min
삶은 연속되는 수많은 장면들로 이루어져 있다. 장면場面에는 사전적으로 '영화/연극/문학 등의 한 정경, 어떤 장소에서 겉으로 드러난 면이나 벌어진 광경'이라는 뜻도 있지만 ‘심리적으로 어떤 행위를 하는 개체에 영향을 미치는 각 순간의 환경‘이라는 정의도 있다. 후자의 의미에 방점을 두고 자신의 행동반경을 구성하는 물리적인 동선動線, 이에 조응하는 내재적인 체험 풍경으로서의 이미지를 채집하고 있다.
이제까지 그려온 그림들은 도심에 사는 비슷한 시민들의 매일의 생활, 그 기억 속에 가장 많이 누적되었을 체험 이미지들의 보편적 교집합 같은 것을 상정하고 그런 접점이자 전형이 되는 심리적 잔상을 실제적으로 재현하려는 시도에 가까웠다.
그렇게 나름대로 생각하던 ‘보편普遍’의 개념이나 범주에 재고가 필요하다는 것을 시간이 갈수록 확인하게 된다. 같은 공간을 점유하는 한 도시의 일원이라 해도 중장년기로 접어든 체험들은 순간에 잡히는 단면으로서의 유사성 너머로 점차 다른 양상을 보이게 되는데 그것을 자각하면서 오히려 서서히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그간 뭉뚱그려 생각해오던 어떤 세대의 삶들이 내포한 각각의 개별성, 그리고 내가 속한 사회 내內 생활양상의 관성이나 반복되는 특성들이다.
정희우 Heewoo Jeong
〈경(境)〉
2013년 4월, 개성공단 폐쇄에 관한 뉴스를 보았다. TV에서는 개성에서 짐을 가득 싣고 출입사무소를 빠져나오는 차의 행렬을 보여주었다. 차가 지나는 도로 바닥에는 ‘개성’이라고 쓰여 있었다. ‘서울’, ‘광화문’처럼 갈 수 있는 곳을 표시하는 글씨체와 규격으로 북한의 지명이 쓰여 있으니 낯설게 느껴졌다.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으로 안내하는 도로 표시가 거기 남아있는 것이다. 길을 안내하는 기능을 잃어버린 그 ‘개성’이라는 도로 표시를 탁본으로 남기고 싶었다.
〈종로의 나무간판〉
종로 1가에서부터 6가에 남아있는 나무간판을 탁본해서 전시했다. 빠르게 변하는 도시 속에서 무엇이 사라지고 있는지 눈치채기도 전에 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있다. 나무간판도 그중의 하나이다. 종로거리를 지나가다 나무간판을 발견하고는 ‘방금 옛날이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제 막 사라지기 시작하는 것들을 주목하고 탁본으로 기록했다.
〈강북의 달〉
서울의 동네들은 지역에 따라 각각 다른 시간을 품고 있다. 사람이 사는 마을이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계획’되어 ‘개발’되기 때문에 언제 계획, 개발되었나에 따라 그 지역의 시대를 보여준다. 백사마을은 이제 서울에 몇 안 남은 ‘마을’이다. 개발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모여들어 하나둘씩 집을 짓고 살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백사마을로 걸어 들어가면 옛 기억으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다. 그곳의 공간과 소리, 냄새가 만드는 경험은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백사마을도 개발되고 나면 우리의 경험은 조금 더 현재에 갇히게 된다.
〈담지도〉
1970-80년대에 지어진 대단지 아파트의 담을 탁본해서 전시했다. 대단지 아파트라는 것은 도시미관을 해치는 주범으로 인식되곤 한다. 그러나 그곳에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인생의 한 부분을 차지한 배경이다. 오래된 아파트들이 경제논리에 따라 재개발되면서 많은 사람들의 개인사에 스며들어 있는 풍경들이 함께 사라져버린다. 그 풍경을 탁본으로 남겼다.
〈Peeling the City〉
도시의 바닥은 온통 기호로 이루어져 있다. 아스팔트는 차가 다니는 길이라는 기호이고, 그 위에 그어진 선들은 넘지 말라는 것이고 화살표는 이리로 가라는 표시이다. 아스팔트가 아닌 블록으로 되어 있는 것 또한 보도라는 뜻이다. 군데군데 있는 맨홀 뚜껑은 이것을 열면 통신 설비가 들어있거나 하수배관이 있다는 것 등을 나타낸다. 보도블록 중에서 반복적으로 볼록한 양각이 들어가 있는 것은 시각장애인을 안내하기 위한 촉각적인 기호이다. 도시는 사람들이 모여, 사람들이 만들고, 사람들끼리 약속을 하고 살아가는 곳이다. 그리고 그 약속들은 도시의 바닥에서 조용히 도시의 흐름을 만들고 있다.
주최·주관 : (재)한원미술관
출처 : 한원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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