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시립미술관
2025년 7월 15일 ~ 2025년 9월 7일
‘이동훈 미술상’은 2003년에 제정되어, 한국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며 대전 미술의 형성과 발전에 기여한 故이동훈 화백의 예술정신을 기리는 상으로, 대전미술의 위상을 확립하고 지역 미술의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을 도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상은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한 작가들을 발굴·지원하며, 한국미술의 발전에 기여한 예술가들을 조명하는 데 의의를 두고 있다. 이를 통해 대전미술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동시대 미술의 흐름 속에서 지역 미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는 중요한 지표로 자리 잡고 있다.
이은정은 부계 중심의 역사 서술이 간과해온 여성들의 삶을 회화의 장면으로 복원해낸다. 〈박금 할머니 3대 가계도〉, 〈조외순 할머니 4대 가계도〉는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어머니, 딸, 며느리, 종부의 존재를 시각적 족보로 불러들이는 작업이다. 흐릿하게 번지는 먹선과 은은한 펄의 반짝임은 삶의 흔적을 직조하는 동시에, 여성 주체를 다시 호명하는 회화적 장치로 기능한다. 이는 단순한 회고가 아니라, 존재의 증명이며, 감각의 정치학이다. 이은정은 여성성과 한국화를 교차시키되, 어떤 양식에도 고착되지 않은 방식으로 주변부의 서사를 중심에 위치시킨다.
〈만들어진 백합〉 연작은 순결과 정절이라는 이름 아래 여성에게 부여된 상징들을 해체하는 비판적 작업이다. 백합의 상징성을 직접 키운 꽃잎으로 말려낸 뒤, 플라스틱 빨대라는 인공 구조에 꽂아냄으로써, 순결의 기표가 얼마나 사회적으로 구성된 허상이었는지를 날카롭게 드러낸다. 〈못난이 삼형제〉 연작 또한 젠더 고정관념을 재구성하는 장이다. 여성의 외형을 지닌 인형이 ‘삼형제’라는 명명 하에 유통되었던 당시의 문화는 성별 인식조차 시대의 관습에 의해 구성된 것임을 반증한다. 이은정은 익숙한 오브제를 통해 사회가 내면화한 위계를 해체하고, 사소해 보이는 대상 속에 구조적 질문을 숨긴다. 그녀의 작업은 조용하지만 뚜렷하게, 회화라는 매체를 통해 사회적 규범과 인식의 층위를 되묻는다.
정우경은 뜨개라는 수공예적 행위를 회화적 실천으로 전환하며, 시간성과 촉각성, 공간성과 정서성의 접면을 섬세하게 직조해낸다. 〈과거, 현재 그리고 대지〉 시리즈는 어머니에게서 전해 받은 리듬과 기억을 반복적 붓질로 옮겨오며, 생명과 감정의 결을 쌓아 올린다. 실의 중첩이 만들어내는 틈과 결은 단순한 평면을 넘어, 생명력과 시간의 지층이 되는 화면으로 확장된다. 작가는 캔버스를 구부리거나 부풀려 평면의 물리적 조건을 변형하고, 그 안에 관계적 공간과 감각의 층위를 부여한다. 이는 회화를 감상자의 신체적 경험으로 확장시키는 조형적 전략이며, 정우경 작업의 핵심적 미학이다.
〈과거, 현재 그리고 에너지〉 시리즈에서 드러나는 강렬한 색채는 에너지의 시각화이자 감정의 응축이다. 작가는 보색 대비를 활용해 긴장감을 조율하고, 반복된 형태와 손의 결이 남긴 흔적 위에 역동성을 밀도 있게 새긴다. 이 시리즈에서 반복되는 꽃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생명의 기원, 모성, 공동체를 상징하는 구조적 은유다. 뜨개와 꽃, 색과 결이 맞물려 하나의 유기적 화면을 이루며, 이는 생명과 감정, 관계와 기억이 한데 엮인 생동의 장이 된다.
출처: 대전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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