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
2026년 9월 9일 ~ 2026년 9월 29일
깊은 시간의 표면, 돌의 기억을 그리는 회화
조영진 작가는 십년 이상 회화 작업에 몰두해왔고, 작년에야 첫 번째 전시회를 열었다. 그 전시 이후 작가의 발상은 바위그림의 ‘깊은 시간’을 어떻게 미학적 전략으로 사용하는가, 나아가 그림의 화용법으로 구사할 수 있는가로 진전되었다. 이 두 번째 전시회는 이 젊고 유망한 작가가 초기 인류가 바위라는 대지 표면에 새겨놓은 숭고의 창작이자 상서의 기호학이 어떻게 그림의 언어로 문장화되는가를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우리는 지금 모더니즘 서사의 궤멸 이후 시간성의 공백 상태에서 마치 림보처럼 하염없이 대기하는 것처럼 생각된다. 서구로부터 공급되어온 단일한 시간, 역사주의, 진보 관념은 허물어졌고, 모든 세기의 지식은 인공지능에 의해 ‘지식의 수조’ 속에서 응축되어 우리 앞에 제시된다. 그러나 조영진 작가는 이러한 알고리듬의 노스탤지어 효과에 승복하기보다 <미디어의 지질학>에서 수억 년의 지층에서 추출된 희토류와 광물의 원소들이 빚어내는 ‘깊은 시간’(Deep Time)에 다이빙한다. 그럼으로써 그는 바위그림의 ‘석판’ 기울기에 따른 빛의 연출, 날카로운 ‘석각’에 의한 홈선이 빚어내는 상징의 환각, 여러 추상적 생명기호와 구상적 생명기호가 하모니를 이루며 빚어내는 어떤 문장력을 발휘한다. 이 문장력은 여러 세계들이 켜켜이 중첩된 회화의 표면에 ‘돌의 완강함’과 ‘시간의 저항’을 함께 느끼며 일종의 새겨넣는 행위이며, 원소적 미디어로서의 바위가 지닌 거친 마티에르를 회화적으로 전유하려는 시도다. 이 모든 행위가 마치 <삼국유사>에 경주 남산신이 바위로부터 나타나 왕 앞에서 춤을 추었고, 왕은 그 춤을 따라췄다는 일화와 비슷하다. 춤의 언어로 미래를 예시한 것이다.
도상들은 조영진 작가의 화편 속에서 지질학적 단위의 생명적 연대기를 엮어내는 일종의 ‘사슬세우기’에 기여한다. 우주뱀 기호, 세 마리 거북과 함께 구성된 시원적 현무 기호, ‘존재의 집’을 향해 점프하는 고래 기호, 하이 소프라노 음색의 사슴 기호 등이 이미 두텁게 쌓아올린 바탕, 일종의 바탈태우 위에 붓질의 궤적을 환하게 밝히면서 ‘사슬세우기’의 신명을 신나게 탄다. 선사 인류가 목도했던 우주의 질서와 생명의 차원 높은 외경을 이 세워진 생명사슬의 미학적 전략으로 출현시킬 심산인 것이다. ‘깊은 시간’은 단순히 태초와 현재의 교차적 시간이 아니라 바위 표면이라는 캔버스 위에 그려진 생명의 동화가 현재의 사람들과 호흡하는 단독적 시간이다.
조영진 작가는 선사 시대 인류가 미지의 선진적인 도구로 바위 표면을 쪼아내고 긁어내며 깊이 새겼던 홈선들이 얼마나 비타협적으로 신체적 흔적들, 만년 가는 시간성의 징후와 숭고 지향의 삶의 증거들을 남겼는지 보여주며, 우리들 잃어버린 시간의 우주미아들이 그 단독적 시간의 경험 속에서 자신의 삶의 토포스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그림의 언어로 표현된 문장이 디지털 미디어의 표면성 아래에 숨겨진, 인류 원리 저편에 있는 수억 년의 지질학적 밤을 건너온 ‘깊은 시간’의 연대기를 재구성하기 때문이다. 지금 시대의 회화가 동시대의 이 기나긴 冥界의 바닥을 어떻게 딛고 지나가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접근한다
참여작가: 조영진
기획: 김남수
안무: 한상률
음악: 라예송 음악프로젝트 바아라
디자인: 이수빈
촬영: 유경하
설치: 정재훈, 신도진
출처: 공간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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