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평로 329
2024년 10월 19일 ~ 2024년 10월 27일
자본주의 안에서 쓸모증명은 무조건 돈으로만 이루어진다. 그러나 예술인들에게 어디 돈이, 쓸모증명이 호락호락한가? 무급노동, 열정페이로 점철된 예술계 안에서 자본은 극히 일부에게만 허락된 행운이나 특권처럼 보인다. 예술인들은 스스로 직장을 가지려면 “고대 그리스로 돌아가야 한다”는 밈을 되새김질하며 자조한다. 우리의 직업은 설 자리를 잃은 지 오래되었다. 기실 대다수의 창작은 정부나 기관의 공모와 같은 시스템으로부터 비껴나 이루어지잖는가? 설령 공모에 선정되거나 후원을 받은 창작이라도, 노동 비용을 목으로 잡을 수 있는 경우는 드물다. 재료비, (타인의) 인건비, 임대차 비용 등을 모두 제하고 예술가에게 온전히 사례로 지급되는 금액이 운좋게 책정되었다 한들, 그 비용은 최저시급에도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너네들은 그래도 좋아하는 거 하잖아.” “예술하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 배가 고파야지.” “예술하는 사람이 돈을 그렇게 밝혀야겠어?” 예술행위를 노동으로 인정하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의 몰이해와 편견 속에 수많은 예술가는 점차로 예술을 지속해야 할 이유도 동력도 찾을 수 없게 된다. 정말로 배고프고 힘드니까! 그리고 그 길로 곧장 “탈예술” 계획을 수립한다.
이번 전시(?비슷한 것)에 자신의 작업을 선보이는 10명의 예술가들은 탈예술 경험이 있거나, n가지의 머니잡(생활을 이어갈 만한 돈이 되는 직업)을 따로 두(려고 하)고 있으며, 스스로를 “다툴러(먹고살기 위해 다양한 매체와 도구를 다룰 줄 알게 되고 만 사람)”라고 칭한다. 예술작업이라는 일련의 과정과 노동, 그로부터 산출되는 물질, 거기에 투입되는 시간과 공간 등 모든 요소가 자본으로부터의 외딴섬일 수 없다는 점을 우리는 모두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다지 “예술적”이지는 않은 일들로 생활의 면면을 꾸려가려 미친 듯이 노력한다. 이 노력에는 흔히 계약서가 존재하지 않는다. 앞서 말했듯 예술 관련 노동에는 최저시급에 가까운 비용이 보수로 책정되고, 많은 경우에 일용직 혹은 플랫폼 노동으로 분류된다. 당연하게도 고용보험의 적용도 받지 못할 확률이 높다. 부당노동계약일지라도 법의 사각지대에 있어 상담조차 어렵고, 퇴직금이나 휴가는 보장되지 않는다. 예술과 상관없는 일을 하며 예술활동을 이어가는 경우, 전문성이 없는 “단순노동”으로 평가절하당하기도 한다. 예술활동을 할 시간과 자본을 확보하기 위해 시작했던 일이 외려 예술활동을 막는 착취적인 과로로 이어지기도 부지기수다. 이런 일들이 예술인들과 아주 멀리 떨어진 현상이 아닐진대, 예술계 안팎에서 살아남기 위한 “노오력”을 약속이나 한 듯 모두가 함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들 고고한 한 마리 백조처럼 수면 위를 미끄러지듯 유영하고 있다. 그 아래에서 일어나는 발버둥에 대해서는 어째서 한마음 한뜻으로 모르는 척할까?
우리는 더 이상 이어지는 침묵을 참지 못하고, 농담하고 자조하며 전시(비슷한 것)을 기획했다. 백조가 유영하는 수면의 아래와 위 모두를 조망하는 전시(비슷한 것)을 열기로 결단했다. 할 말은 많았고, 보여줄 것은 적었다. 우리의 상황 안에서 전시(비슷한 것)를 열 수 있는 공간은 전시장이기보다 작업실이었다. 이 행사를 자꾸만 “전시(비슷한 것)”라고 일컫는 것은 우리가 전시장 안에서 드러나는 이야기뿐만이 아니라 그 바깥까지도 전시 안으로 기어코 끌어오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예술 밖 현생(갓생 또는 혐생)과 예술-생은 뭐 얼마나 다른 층위에 있나? 모두 결국 우리가 스스로 겪고 헤쳐나가야 하는 것 아닌가? 우리에게는 얼마나 더 많은 페르소나가 필요한가? 아무도 (짜쳐서?두려워서?슬퍼져서?괴로워서?구려서?) 여태 언급하지 않았(못했)던 투잡, 쓰리잡, 다툴러, 사업자번호 없는 개인사업자, 비정규직, 플랫폼 노동자의 이야기를 누군가는 해야 하지 않나? 우리는 도대체, 언제 “전시”할 수 있나?
자조와 농담, 얼마간의 진심, 노력, 다층적인 감정들의 비빔밥을 차리며 우리 스스로 가장 궁금한 점은: 파트타임이라고 보기 어려운 수준의 격무에 시달리면서도, 우리는 “왜 또 예술을 도모하는가?”이다. 이쯤에서 전시 제목에 대해 소명할 필요가 있겠다. “좋은 기회가 생겨서 입사를 포기하겠습니다“는 많은 노동자가 늘 가슴 한쪽에 품는 사직서 문장도 아니고, 복권 당첨자의 기쁨에 찬 탈노동(?) 장면 대사도 아니다. 슬프게도, 이는 오히려 예술인들이 늘 마주하는 최악의 직장을 피하기 위해 머리를 굴려 짜낸 최대치의 정중한 거절이었다는 점을 밝혀둔다. 실제로 꼰대 상사와 착취적 부당노동의 가능성으로부터 안전이별하기 위해 최선의 문장을 수없이 쓰고 또 지운 모든 예술인에게 심심한 위로를 보낸다. 우리에게 도대체 언제 ”좋은 기회“라는 것이 올까? 그 좋은 기회란 어엿한 상업예술인으로의 진입일까? 아니면, 완전한 갓생러로의 전환일까? 탈예술일까? 로또 당첨일까? 귀농일까? 국립현대미술관에서의 호명일까? 예술사업 성공일까? 아니면, 혹시,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도저히 찾을 수 없는 탈자본적 대안 공동체일까? 서로 불가능해 보이는 질문을 던지고, 또 받으며, 상상에 최대한 힘써보자. 상상할 수 있다는 건 어쩌면 우리가 가진 가장 큰 가능성일 테니까.
일시: 2024.10.19(토), 20(일), 25(금), 26(토), 27(일)
시간: 13:00 - 18:00
장소: 경기 안양시 동안구 관평로 329 (관양동 1396-4) 현대상가 307호
참여작가: 김수영, 어깨빵, 오새얼, 이강선, 이상돈 이파 정다희, 정량, 정웅호, 조은후
글: 조은후
그래픽 디자인: 정웅호
주최: 다그다
*10월 19일(토) 1시에는 오프닝 및 라운드테이블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예술계 안팎의 이야기를 같이 나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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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관평로 329, 현대상가 30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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