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도스
2021년 3월 17일 ~ 2021년 3월 23일
속을 들여다보면
갤러리도스 큐레이터 김치현
이따금씩 서랍을 열어본다. 이제 와서 보면 대수롭지 않은 시시콜콜한 잡동사니와 편지들이 쌓여있고 기준을 알 수 없이 분류된 사진들이 담겨있다. 귀퉁이에는 부속이 소실되어 쓸모를 잃어버린 장난감 몇 개가 나뒹굴고 있다. 당장 손가락 아플 일도 없이 보기 좋은 글자로 메시지를 보내거나 화려한 사진을 찍어 저장하고 근사한 물건을 주문할 수 있는 시대이다. 하지만 기분을 좋게 하는 찰나의 보상에서 그치지 않고 시간이 흘러도 마음을 채워주는 것은 첨단의 광택이 아닌 추억의 먼지다. 지현정은 내가 아닌 모든 것을 관대히 이해하기 위한 첫 노력으로 자신의 지난날을 가림 없이 바라본다.
감정을 보관하는 장소는 어떤 형태로든 존재할 수 있다. 감정과 연결된 기억의 조각들은 지난 시간의 자취를 돌아보고 남은 삶으로 다시 고개를 돌릴 수 있는 힘을 준다. 소중한 물건이 담긴 상자나 서랍, 자신의 방에 애착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까닭은 그 공간이 자신의 모습을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거창하게 부르면 금고일 수도 재미를 곁들이면 보금자리라고 불릴 수 도 있는 공간은 흠 없는 자신의 장점이 빛을 발하는 곳이 아니다. 남에게 보여주지 않은 조용한 탄식과 눈물이 스며있고 상처와 실수에서 나온 얼룩으로 물들어있다. 그리고 이를 양분으로 삼고 자라 피어날 미소를 심어둘 화분도 준비되어있다.
자신만의 공간을 다루는 이야기는 상징적인 사물이 화면에 의도적으로 배치되어있기 마련이다. 그 사물에는 작가의 개인적인 사연이 담겨있지만 관객이 다가서서 몰입하기 어렵지 않을 만큼 조정되어있다. 벽의 틈새로 흘러들어와 방을 침수시키는 물과 길고 복잡하게 매듭지어진 머리칼, 허공을 헤엄치는 허리가 긴 생물들은 친절하게 꾸며진 추리소설 속 사건현장처럼 작가의 삶을 알지 못해도 서서히 공감할 수 있는 기호이다. 작가 자신이 투영된 화면 속의 인물들은 표정 없이 시큰둥한 얼굴을 지니고 있다. 시선의 방향은 다양하지만 그 눈길의 끝에 특별히 신경 쓸 만한 사물이 없기에 작품을 바라보는 이의 시선 역시 금방 갈 곳을 잃고 다시 방황하게 된다.
무신경한 표정이 아니라면 눈을 감고 잠을 자고 있는 인물들은 어쩌면 진짜 잠든 것이 아니라 방해와 관심을 피하기 위해 잠자는 척을 하고 있는 듯 보이기도 한다. 어린 시절을 보듬어줄 누군가가 없이 빠르게 철들고 굳건하게 버텨내야 한다는 다짐은 때로는 대견하고 때로는 가혹하게 마음을 단단히 담금질했다. 쇠는 두들기고 식힐수록 단단해지지만 사람의 마음은 그렇지 못했다. 아무리 티 없이 견고하고자 해도 흠집투성이일 수밖에 없는 것이 감정임을 깨달은 시기는 그동안 재련해온 자신을 성인이 되어 꺼냈을 때였다.
지현정의 작품은 무심하게 두들겨온 스스로의 강도가 아닌 목적에 대한 탐구이기도 하다. 동시대 청년이 지닌 자신에 대한 불확실과 지난 짧은 삶의 복습이 담겨있다. 운명을 점치는 타로카드처럼 수수께끼 삽화의 모습을 한 지현정의 작품은 한 장으로 완결하고 이해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작품 전반에 새겨진 분위기와 단서를 차분히 더듬어가며 조합해야 해석을 시작 할 수 있는 하나의 문장이 만들어진다.
참여작가: 지현정
출처: 갤러리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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