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떼에고
2019년 8월 23일 ~ 2019년 10월 2일
보고 싶은 광경
지효섭 작가는 분명 다작형의 작가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니 이번 전시는 그의 그림을 ‘전시’라는 진지한 형식을 통해 만날 수 있는 아주 소중한 기회이다. 지 효섭 작가의 그림을 처음 본다면 어떤 인상을 받을까. 아마 그의 그림이 어딘가 기 묘하고 어둡다고 느껴질 수도 있겠다. 작가가 구축하고 있는 내밀한 판타지의 양상 은 감상자의 취향과 의지에 따라 신비하고 매력적일 수도, 무섭고 불편할 수도 있 다. 그러나 만약 좀 더 가까이 들여다보고 싶어졌다면, 당신이 망설임 없이 그의 세계로 다가가면 좋겠다. 우리에겐 작가의 안내도 필요치 않을 것이다. 지효섭 작 가의 그림은 안내도가 없이 여행할 때 더욱 매력적인 미지의 섬과도 같다. 이제 전 시장에 걸려있는 그림은 우리를 가로막는 벽이 아니라 다른 차원으로의 문이 된다. 혼신의 힘을 다해서 파고든 작품이라 할지라도 일단 완성하여 손을 뗀 다음엔 작가 역시 문을 열고 나와서 우리들처럼 작품의 외부에 서게 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그의 그림은 여기 모두에게 공평하게 열려있다.
그림에 한 발 더 다가가기 위해, 우선 그의 그림에 반복적으로 등장하곤 하는 모 티브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이를테면 먹먹한 마음이 드는 어둡 고 거대한 산, 바다, 여인, 식물과 동물들에 대해서. 그리고 이러한 소재들로 구성 된 평면 위를 강력하게 지배하면서 시공간의 깊이를 만들어내는 고전적 인상의 빛 과 어둠에 대해서. 또 다른 측면의 접근으로는, 지효섭 작가가 사용하는 재료와 페 인팅 기법, 혹은 특유의 습관들로 구축된 마티에르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만하다. 실제로 작가는 자신의 작업에 특정한 두께감이나 부피감을 주기 위한 재료탐구를 중요하게 여기는 눈치다. 그렇게 오랜 시간 의식적인 노력을 통해 이루어진 고유한 마티에르는 분명 그의 작품세계에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반면 그림을 그린다는 특별하고도 고독한 행위를 통해 지효섭 작가가 추구하는 바 는 의외로 순수하고 단순하리라 추측해본다. 첫 개인전의 도록에 실린 글을 읽어보 니, 당시 작가는 ‘단지 내가 보고 싶은 광경을 그릴 뿐입니다’라는 말로 자기 그 림에 대해 정의내리고 있다. 그렇다. 꽤 적절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동안 작가와 그의 그림을 유심히 지켜본 사람이라면, 그의 언어로 자기 작업의 본질을 이보다 더 잘 설명할 길은 없었으리라고 납득할 것이다. 물론 여러분이 작가에게 그림에 대한 설명을 부탁한다면, (그가 수줍거나 귀찮아서 도망치지 않는 이상) 그 림 속의 이미지들만큼 독특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잔뜩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더더욱 그의 난해한 세계에 끌려 들어갈 뿐, 거기서 더 본질적인 무언가에 다다를 힌트를 얻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즐거운 마음으로 각자의 길을 스 스로 더듬어보기로 하자.
나는 지효섭 작가의 캔버스 그림 뿐 아니라 사진, 종이그림, 직접 조각하거나 조합하여 만든 오브제들 모두를 무척 흥미롭게 생각하고 있다. 어떤 점이 그렇게 흥 미로우냐 하면, 역시 간단하게 몇 문장으로 설명하기는 쉽지가 않다. (그리고 내 머릿속의 어느 부분인가는 거기에 대해 말로써 규정짓는 것에 거부반응을 가지고 있다.) 당시 난 이런 타입의 필치나 마티에르를 가진 그림을 전혀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난 2010년 그의 두 번째 개인전에서 넓은 공간을 채우는 커다란 사이즈 의 그림들과 실제로 마주했을 때, 무척 혼란에 빠진 기분을 느끼고 말았다. 거기서 본 그림들은, 말하자면 내가 그림을 그릴 때 무의식적으로 피하거나, 의식적으로 배제하는 요소들의 집합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냥, 너무나 멋있 었던 것이다. 작업실에 앉아있다가도 자꾸 그 거대한 산맥이 생각이 나서 결국 서 너 번이나 전시장을 다시 찾고야 말았다. 나는 그 유쾌한 혼란과 흥분, 즐거움을 여전히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아무쪼록 지효섭 작가가‘보고 싶은 광경’들이 끊임없이 자꾸 샘솟아서 그가 어 쩔 수 없이 계속 그림을 그리길, 그리하여 계속 화가이길 진심으로 바란다 / 글. 화가 박주영
출처: 알떼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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