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민아트센터
2016년 4월 27일 ~ 2016년 7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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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여름부터 2016년 초까지 내가 카메라를 들고 돌아본 청주는 일곱 개의 마을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마을들은 성안길, 시장들, 무심천, 오래된 청주공단과 오창과 오송, 미천리와 두모리, 수암골, 상당산성과 근처의 유원지이다. 물론 청주가 이 일곱 개의 마을만으로 이루어져 있을리 없지만 나는 청주가 가진 시간과 공간의 구조를 그렇게 나누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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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를 처음 찍기 시작했을 때 청주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은 별로 없었다. 잘 알려진 수암골과 20년 전 보았던 플라타너스 가로수 길에 대한 기억 정도였다. 하지만 다시 와 본 가로수 길은 예전의 그 길이 아니었다. 차츰 청주를 알아 갈수록 내가 느낀 것은 막막함이었다. 청주는 행정 구역상 하나의 도시이지만 하나의 도시로 보이지 않았다.
청주는 비슷한 규모의 다른 지방 도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삼국시대 이전부터 시작되는 오랜 역사, 그 이후의 변화, 신시가지를 중심으로 한 도시의 확장 방식 등을 생각해보면 그렇다. 청주는 확장 과정에서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중층적 구조를 이루게 되었다. 최근에 청원군이 통합되면서 청주의 중층성은 심화되었다고 할 수도 있다.
시간이 축적된 결과물이라는 측면에서 보아도 청주는 여러 층위를 가진 도시였다. 오래된 구도심은 여전히 도심지 역할을 하지만 거기를 조금만 벗어나면 청주의 시간은 과거로 되돌아간다. 농촌 마을들과 최근에 형성된 고속터미널 부근의 신시가지, 구 공단과 오송, 오창의 새 공단은 서로 다른 시간 축에 있었다. 공간도 다르지 않았다. 건물의 밀도, 부의 축적 정도, 인구 분포 등의 사회과학적 데이터를 들지 않아도 이름은 청주라고 불리지만 완전한 전통 농촌 마을들에서부터 첨단 공단 도시에 이르는 공간의 스펙트럼은 아주 넓었다. 공간과 시간을 축으로 하는 두 개의 스펙트럼은 서로 겹치면서 청주의 중층적 구조를 이루는 것이다.
그러므로 청주를 어떤 시선에서 보아야 제대로 읽을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은 난망해 보였다. 우선 카메라를 들고 청주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구체적으로 체험해보는 방법 외에는 없었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야 청주라는 도시를 한 측면에서만 보아서는 알 수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일곱 개의 지역이었다. 하지만 그 지역들을 통해서 청주를 제대로 읽는 다기보다는 하나의 시도 혹은 제안이라는 점이 정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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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어느 도시라도 모두 생성과 성장과 소멸을 겪는다. 청주는 성장의 속도가 빠르지 않았다. 역사는 오래되었고 지역의 중심이지만 흔히 말하는 압축 성장의 태풍에서 살짝 비켜서 있었다. 때문에 60년대에 만들어진 공단 이후 새로운 공단이 들어서고 산업의 변화가 시도된 것도 거의 21세기에 이르러서이다.
이 느린 변화 속도는 청주를 사진적으로 흥미 있는 장소로 만들었다. 예를 들면 피난민들이 주로 정착했던 수암골이 그런 경우이다. 이는 부산의 산동네에 비하면 아주 작은 규모이지만 드라마와 연예 프로그램에 의해 알려진 뒤 급격한 변모는 놀라운 것이었다. 구도심이 잘 보이는, 도청과 시청에 가까운 위치에 있으면서 산기슭에 형성된 마을은 전망이 탁월하다. 그러나 수암골에 들어선 수많은 까페들은 수암골과 무관하다. 수암골의 지명도, 위치 등에 기생하는 부동산 투기와 한국식 관광 투자의 한 전형인 것이다. 나쁘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 아주 익숙해져 당연한 일이니까.
상당구 문의면의 경우도 그렇다. 문의 마을로 알려진 미천리는 상당 부분이 새로 조성된 면 단위 고을이다. 1983년 대청호가 형성 되면서 수몰된 마을이 통째로 옮겨온 것이다. 그리고 그 주위에 관광단지가 만들어졌다. 그런 일이 있은 지 벌써 삼십여년 지나면서 미천리는 원래 그곳에 있던 마을들과는 다른 분위기를 갖는다. 그것은 면 단위 소도시의 한가한, 그러나 뭔가 다른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가까운 청남대도 예사롭지 않다. 전두환의 별장에서 시작해서 관광지가 된 내력에는 권력의 변화와 부침이 그대로 드러난다. 대통령의 침소인 건물은 기이한 권위를, 옆에 비어 있는 풀장은 공허함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인다.
공단도 크게 다르지 않다. 6-70년대에 조성되어 상당수의 공장이 이전해버려 이제는 아파트 단지로 재개발 되고 있는 옛 공단은 퇴락의 기미가 보인다. 아직 도자기, 반도체, 화학, 화장품 등의 공장들이 성업 중이기는 하나 오창과 오송으로 헤게모니가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현대식으로 지어진 공단 관리처의 옥상에 가면 그 풍경들이 보인다. 엊그제 지은 듯한 세련된 건물과 시설 등이 오래된 공장, 그 부속 시설들과 충돌한다. 그리고 오창과 오송은 새로운 공단 도시가 갖는 공허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를 분위기가 있다. 호수와 잔디밭과 빈 터에 핀 개양비귀의 색깔들은 기이하기조차 하다.
두모리는 어떨까. 큰길에서 떨어져 있어 변화가 더딘 그곳은 퇴락 중이다. 적어도 번성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느티나무가 서 있는 마을 입구에서 마을 왼편의 야산에서 보는 경관은 우리나라 전형적 농촌 마을의 모습이다. 길들은 예스럽고, 빈집이 듬성듬성 서있다. 노인네들은 마을 입구 나무 그늘에 앉아 가뭄을 걱정했다.
상당산성의 성안 마을은 완벽한 관광지다. 애초의 성곽 기능이 사라진 이 전쟁용 방어시설은 산책 코스가 되었다. 시간은 죽음과 전쟁의 공간을 놀이와 휴식의 공간으로 전환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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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찍은 사진들은 청주의 정체성에 대한 제안이나 답이 아니다. 내가 하려 했던 것은 청주의 일상적인 삶 혹은 경관 속에 드러나는 아이러니, 아름다움, 익숙한 낯설음에 관해서였다.
나는 두모리의 늦은 여름 대낮과 무심천의 벚꽃과, 수암골의 가을을 사랑했다. 쑥스럽지만 그렇게 말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번화가인 성안길에서 일직선으로 이어진 육거리 시장길, 카메라를 들고 나가면 끊임없이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던 시장 아주머니와 밥집들을. 모두 그랬던 것은 물론 아니다. 처음 봤던 때의 기억이 너무 강해서 그런지 플라터너스 가로수 길은 너무 변한 것처럼 보여서 별로 찍고 싶지 않기도 했다.
청주의 모든 경관은 그곳 사람들의 삶의 결과물이다. 그러므로 내 사진은 그 삶에 대한 어떤 기록이기도 하다. 사진전의 구성은 일종의 청주에 대한 개인적인 여행의 기록으로 할 생각이다. 하지만 이러한 청주에 대한 사진은 청주의 것만은 아니다. 사실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서울을 비롯한 우리나라 모든 지방도시에 해당되는 상황이다. 군이나 읍 단위 정도의 마을에만 가도 우리는 서울의 일부를 살짝 잘못 떼어다 놓은 듯한 중심가를 만나고, 논바닥에 선 아파트와 커다란 간판이 결사적인 식당들을 만난다. 모든 곳이 서울의 기이한 축소판 같은 도시들과, 그 도시들에 들어선 대자본이 투여된 가게들을 본다. 패스트푸드, 옷 가게, 전자제품, 보험회사, 자동차 판매점, 휴대폰 가게....등등을. 이는 물론 인문지리학에서 말하는 장소성을 지우는 그런 난폭한 행위이기도 하다.
이 모든 경관은 자본, 돈과 권력이 흘러간 흔적이며, 지방 도시의 경우에는 그 규모가 좀 작은 것이라는 편이 정확할지도 모른다. 즉 자본은 장소성과 장소 애착을 선택적으로 지우고 재편하며, 도시 경관은 그 결과물인 것이다. 청주도 물론 다르지 않으며, 내가 찍은 사진이란 그 결과물에 대한 희미한 흔적에 지나지 않는다. 당연히 그 흔적은 시간을 견디고 살아남아야 의미를 획득한다. 그러므로 내 사진들은 청주의 지금에 대한 사진이 아니라 사실은 과거와 미래에 대한 사진일지도 모른다.
강홍구(작가)
상상적 도시 속 자유인
“이번 작업은 청주라는 도시에 대한 기술記述과 묘사描寫 사이에 있다. ” 강홍구
2003년 전시 <드라마세트 Drama Set>를 진행 했을 때다. 이전까지 흑백사진은 아련한 향수와 아우라를 뿜어대는 줄로만 알고 있었던 신진 큐레이터의 눈에 달콤 시큼한 대중문화의 배경으로 사용한 “진짜 가짜” 세트가 마치 서늘한 공기가 압축된 흑백 꿈같은 풍경은 새로운 세계였다. 작가는 이전 <그린벨트>(1999-2000)와 <한강 시민공원>(2001) 작업에서 서울과 근교 도시 재개발에 따른 농촌과 일상의 우울한 풍경을 포착했다. 이후 <오쇠리 풍경>(2004)연작은 김포공항 근처 소음피해 지역, <미키네 집>과 <수련자>(2005-2006)는 불광동 재개발 지역, <사라지다>(2009)는 은평 뉴타운 지역, <사람의 집>(2012)은 버내큘러적 장소성을 가진 부산 산동네이다.
뚜벅이 작가의 공간은 대략 2010년을 기점으로 수도권에서 세종, 신안, 부산, 청주로 넓어진다. 또한 <그 집>(2010), <녹색연구>(2012)나 <Under Print>(2015) 연작에선 생산주의적 개발의 황량한 장소를 디지털(디지털 카메라와 프린트)과 아날로그(아크릴릭, 잉크, 붓)적 표현과 구성의 변화를 꾀한다. 20여년 동안 생산주의적 공간 개발에서 지역적 공간의 실재적 장소성을 기록해온 작가는 2013년 여름부터 2016년 초까지 상상적 도시 청주의 만보객이 된다.
상상적 도시, 청주
전시장에 들어섰을 때 우리는 익숙함과 낯섦의 경계에 놓인 풍경을 마주한다. 청원을 포함한 청주에 살고 있는 관람객들은 정면으로 보이는 공단과 높은 공시지가를 자랑하는 주상복합 단지 풍경에 낯설었다가, 작업 표제와 이미지를 익숙하게 연결하며 추억과 기억이 담긴 이야기들을 주고 받을 것이다. 반면, 별다른 연고나 기억이 없는 관람객에게 표제와 이미지는 낯선 청주를 알게 하는 정보가 되지만, 웬지 대한민국 어디에서나 마주하는 공간이란 익숙함을 느낄 것이다.
이방인 작가가 ‘도시’ 청주를 상상하는 방식은 7개 ‘마을’의 중첩이다. 마치 민족이 상상적 공동체인 것처럼, 작가는 압축적 근대화와 신자유주의가 들끓는 ‘도시’를 주로 시골에서 여러 집이 모여 사는 ‘마을’들로 아이러니하게 재구성한다. 복대시장과 육거리 시장, 신구공단, 수암골, 성안길, 무심천, 미천리와 두모리는 청주 사람들이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 청주를 소개 할 때 대표적으로 언급하는 장소들이다. 무심천은 한강 같은 상징성을 가지고, 상당공원과 수암골은 역사적 유적지와 피난민 마을을 관광의 컨텐츠로 역사성을 소비한다. 전통시장인 복대시장과 육거리시장, 원도심 번화가 성안길은 흥덕구와 오창·오송의 신구공단은 자본주의 전개에 따른 지역 경제 흥망성쇠의 지표이다. 미천리와 두모리는 생산주의적 개발이 가져오는 장소상실의 증거이다.
앞서 말했듯이 작업의 제목을 가렸을 때, 그 장소는 복대동, 중앙동, 석교동, 수동이 아니라 불광동, 산복동, 해안동 등이 될 수 있다. 그것은 작가가 자본과 권력의 이동과 흔적이 드러난 공간의 장소성에서 균질화된 공간의 시각성이 주는 익숙한 낯설음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지역성이란 차이의 공간보다 신자유주의적 재개발이 가져오는 장소성의 균질화, 공간의 형식이 주는 보편적 장소성, 사회 경제적 구조에 따른 비가시적 영역이 물리적 공간의 실재가 된다. 그렇기에 지금 여기 우리에겐 장소-특정적 지역성이 아닌 보편적 공동성을 위한 자기-성찰이 필요한 것이다.
기술記述과 묘사描寫 사이의 자유인
지역적 장소 작업을 하면서 작가는 그 지역과 공동체에 경계적 위치짓기를 유지하는데 이번 작업도 마찬가지다. 지역 토박이나 오래 살았다고 지역에 대해 다 알 수도 없거니와, 이방인으로서 작가는 지역에 관한 정보와 텍스트나 인터뷰나 문화기술지文化記述誌 ethnography 방법에 사로잡히거나 기대지 않는다. 공간과 공동체를 담은 풍경들은 너무 가까워 오글거리지도 너무 멀어 대상화되어 메마르지도 않았다. 풍경 속 눈 높이와 시점은 자연스럽게 그 장소를 산책하게 안내한다. 작가가작업을 위해 나설 때 날씨가 기대만큼 좋지 않았다고 했지만, 풍경의 색조는 과하지 않고 이전 작업들처럼 서늘한 느낌이 덜해 약간 기분 좋은 날 동네를 시장을 공원을 돌아다니는 기분이 든다. 특히 복대시장의 파라솔과 육거리 시장의 가판대 풍경은 정겨우면서 특별하다.
작가는 자신의 생각을 힘주어 말하거나 어렵게 설명하지 않는다. 관람객들은 얼핏 보면 한번 셔터를 누른 가로로 긴 풍경들이 이어지는 전시장을 편안한 마음으로 산책하듯 전시장을 어슬렁거릴 수 있다. 동일한 장소를 찍은 사진 몇 개가 어느 지점에서 살짝 겹쳐진 것을 지점을 찾은 섬세한 관람객은 물리적 공간에 장소성과 역사성이 쌓여가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마주한다. 작가는 지역적 청주를 강조하는 방식보단, 지역적 장소성의 공간이 가졌던 역사성과 공동성이 자본과 권력의 이동에 따라 장소성 상실로 부재증명의 평면적 공간이 되어감을 지각할 수 있는 거리와 사유를 넌지시 건넨다.
작가는 이번 작업이 청주를 기술記述하기와 묘사描寫하기 사이 어디엔가에 있다고 말한다. 토박이의 정주도, 관광객의 표류도 아닌 작가의 산책은 특정 지역과 사건, 인물에 대한 예술의 다른 의미를 내포한다. 만약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예술의 희망을 놓을 수 없다면, 지역성과 공동체에 대한 전형적 작업과 활동이 예술과 삶의 관계를 왜곡시킬 수 있다는 것을 늘 경계해야 한다. 그렇기에 작가는 지역 작업 과정의 형식과 내용에서 느슨하지만 견고한 거리두기를 계속하는데, 스피노자의 개념을 빌린다면 ‘공동체를 초월한 자유인’과 ‘공동체 안에 내재하는 자유인’ 사이를 가로지르는 자유인의 모습이다.
작가 강홍구는 익숙한 공간 풍경에서 지역적 특수성과 내용을 강조하기보다 공동적 장소성과 맥락의 사유를 제안하면서 한국 사회의 자본과 권력이 만들어 내는 장소상실을 기술하고 묘사하고 있다. 또한 지역 관계 작업의 과정에서 예술의 삶 정치성을 회복해야 하는 작가의 위치짓기와 태도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러한 지점과 태도는 지역성을 강조하거나 소재로 삼는 현대 미술의 많은 작업이 지역과 공동체의 관계를 재구성하는데 중요한 전제를 제공한다. 이번 전시가 기획초대 중 지역-연고가 없이 지역-관계의 다른 상상과 실천을 보여주는 첫 번째 전시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채은영(미술이론, 독립기획자)
전시 연계 프로그램 1
<도시 읽기의 한 방법 - 강홍구의 청주사진들>
2016년 4월 27일 수요일 오후3시
강홍구(작가), 채은영(전시기획자), 신정훈(미술사학자)
전시 연계 프로그램 2
'문화가 있는 날' 청소년 교육프로그램 <일곱 개의 풍경>
2016년 5월 25일 수요일 오후2시
출처 - 우민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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