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SP
2022년 12월 1일 ~ 2022년 12월 28일
다중의 몸과 우주를 꿈꾸라
글: 박지형
총체적 대상을 전도시키기, 마모시키기, 찢기, 끊어내기, 복제하기, 연결하기는 최근 최수앙의 작업에서 도드라지는 언어이다. 그는 인간 신체를 구성하는 무수한 요소들의 보편적 가치를 전복시키기 시작한다. 그의 손을 거친 피부와 근육, 기관 사이의 뼈, 그 사이를 타고 흐르는 혈관과 미세한 분자의 매커니즘은 정상의 틀에서 빠져나와 쪼개어진 비정형의 덩어리가 된다. 이들은 오롯히 탐구자의 주관적인 결정에 의해 새로운 몸체에 이식되거나 또다시 분해될 수 있게 되므로, 하이브리드적인 것으로서 존재의 방식을 달리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신체 조직들의 외형 및 기능의 해체는 역으로 작가가 보다 즉흥적이고 비언어적인 상태로 조형 실험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준다. 그리고 이것이 전시가 주목하는 지점이다. 복수의 우주를 뜻하는 《플루리버스(pluriverse)》는 그가 조형적인 의사 결정을 하는 데 있어 절대자의 위치에 있기를 내려놓고, 역으로 자신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중간 매개 변수들의 역할을 작품 안으로 능동적으로 수용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형태와 의미의 다층성을 살핀다.
돌이켜보면 작가가 오랜 시간 빚어내던 사람의 형체는 과잉의 테제를 기반으로 했다. 이는 인간 현존의 위태로움과 긴장감, 혹은 사회를 마주하는 개인들의 억압된 상태를 드러내고자 하는 보다 서사적이고 재현적인 목소리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노동집약적으로 완결되는 개체들은 그가 예술을 인식하는 확신과 강박, 동시에 어떤 불안을 표상하는 듯 보이기도 했다. 이와는 달리 작가가 각 개체의 절대적 상태를 구현하는 일로부터 물러서서 자신의 손과 몸이 허용하는 범위의 리듬과 속도, 재료의 강도에 보다 집중할 때, 우리는 어떤 미지의 생명체로부터 추출된 편린들의 키메라적인 조합을 보게 된다. 일시적으로 정지한 상태의 잠재태들은 움직임을 향한 욕망을 반영하는 듯하다. 또한 작가 역시 다루는 대상의 기질 (재료의 무게, 탄성, 질감 등)에 영향을 받게 되므로 애초에 설정한 최종 결괏값이 조정 또는 변형될 확률은 필시 증가한다. 우연성과 즉흥성을 끌어안으려는 시도는 관객들에게 복수적 관계의 가능성을 열어줌과 동시에 작가에게는 내재된 단단한 습성과 편견을 떨쳐내고 보다 가벼운 손과 머리, 몸의 감각을 증진시키도록 한다.
현실의 해부학 지식에 의거하면 작가가 선택한 기관들의 짜임은 오류로 가득 찬 것임에 틀림없다. 특히 몇몇 작품은 노골적으로 각 부분의 접합 부위를 지탱하는 보철 장치를 드러내고 있어, 이 접속들이 얼마나 임의로 이루어진 것인지 가늠할 수 있다. 그러나 디지털 환경에서 글리치가 허상이 아닌 실질인 것처럼, 그가 생산한 돌연변이 파편들은 눈앞에 실재하는 것이다. 기존의 명징한 위치를 잃은 조각들은 실제 3차원의 시공 안에서 그와 실질적인 관계를 형성하며 조금씩 그 외연을 변형, 증식, 확대시킨다. 말하자면 그가 수행하는 조작의 목적은 어떠한 단일한 메세지나 완결된 기념비적 지점을 향해가기보다 매끈한 형상(혹은 정보)의 외연을 반복해서 구부려 얻게 되는 변종들을 연접하고 그들에게 현재적 역할을 부여하는 데 있다.
예술적 대상을 생산하는 데 스스로에게 부여했던 엄격한 규칙이 해제됨에 따라 그 아래 억압되어 있던 에너지는 여러 방향과 층위로 분출된다. 그리고 이는 무조건적인 무질서의 상태로 방치되기보다 이전과는 다른 조형 요소들의 운동성을 가늠하는 방식으로 이합집산한다. <Assemblage P1>이나 <Assemblage H1>에서는 흩어져 있던 입자들이 하나의 구체적인 형태로 수렴되어 완결되는 듯하지만, 전시장의 가장 마지막 방에 놓인 <Blueprint>는 어떤 결합도 진행되지 않은 상태 그대로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Untitled>는 온전한 하나의 형태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임의로 절단되어 공간의 이곳저곳에 놓인다. 또한 드로잉이 담고 있는 응시의 다양한 시점 이동이 암시하듯, 각 작품은 이를 바라보는 각도나 위치에 따라 상이한 외곽선과 균형감을 갖는다. 따라서 관객은 어떠한 선제적인 제약 없이 위치를 이동하며 각 대상과 그것이 점유하는 빈 공간 사이의 운율을 감각하며, 주어진 조각들에 자의적인 규칙을 대입하여 볼 수도 있다.
세계는 공고한 확실성과 필연적 논리 위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졌다 부서지기를 반복하는 시행착오의 국면들을 통해 현현하는 것이다. 신체에 관한 통합과 안정 상태를 유보한 인식의 확장은 그의 문법 전반에 질적인 변화를 예고한다. 이제 그는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무수한 생명체와 우주 사이를 연결하는 노드를 추적하며 이로부터 채집한 이미지들을 중첩시키고, 나열하고, 변형하는 실천들을 이어가고자 한다. 각기 다른 순간에 채택한 궤도에 따라 군집하는 복수의 존재들을 끌어안으려는 낯선 여정은 결국 하나의 명징한 종착점에 도착하지 못할지 모른다. 대신 이는 우리 주변을 공전하는 감각의 선명한 실체들로 오랫동안 남고자 한다. 이 실체들이 여리고 작은 인간의 몸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사회 전체에 팽배한 고정관념을 전복시키고 유연한 인식의 틀을 견인하기 위한 동력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참여작가: 최수앙
출처: 갤러리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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