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너아트스페이스
2014년 9월 20일 ~ 2014년 10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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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사람들은 메트로폴리스의 매력에 매료된 채 제 삶을 맡긴다. 도시인의 성공을 향한 열망은 다시 그 도시에 활기를 불어넣고, 도시는 끊임없는 확대 재생산을 수행한다. 그 주체와 목적은 상실한 채.
_작가 노트에서
알베르 카뮈는 "과거를 잊은 도시를 위한 짧은 안내서"라는 에세이에서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그리고 열렬히 사랑한 알제리의 아름다움을 노래한다. 아프리카 대륙 북서부에 위치한 알제리는 지중해라는 천혜의 자연과 아랍의 문화가 공존하는 비-유럽의 공간이다. 에세이에서 선명한 색상의 드레스를 입고 가죽 샌들을 신은 젊은 아랍 여성들과 아니제트라는 술을 홀짝이는 청년들이 가득한 ‘까페 파쿨테’는 낭만적 활력으로 가득하다. 에세이는 1947년 쓰여졌다. 2차 세계대전이 일단락된 직후이며, 동시에 1954년 알제리 독립전쟁 발발을 향해가는 시기이다. 카뮈가 그리는 아름다운 알제리의 밤은 이후 다가올 전쟁의 비참함은 모르는 채, 참혹했던 과거를 잊고 일상의 평온을 만끽하는 아프리카인들의 모습이다.
최영환은 카뮈의 에세이에서 가져온 "과거 잊은..."이라는 문구를 압구정동 사거리의 길에 새긴다. 800여개의 작은 거울 패널에 도트를 만들고, 그 도트들이 모여 글씨를 만든다. 인공광에 의해 밤에만 비춰지는 이 산란한 문구 속에 도시의 활기가 사그라진다. 전시장을 마주한 백화점은 20시에 문을 닫고 압구정 사거리는 낮의 떠들썩함을 가라앉힌 채 적막해 진다. 시장이 드디어 잠에 빠져든다.
작가는 이 전시에서 '과거'라는 개념을 서울이라는 메트로폴리스의 건설을 위해 소모되었고 여전히 소모되고 있는, 잊혀진 개인들의 일상이라 말한다. 카뮈는 '개인의 실존'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했던 소설가이다. 카뮈의 탐구는 우리가 서울에서 겪는 도시화의 비인간적 과정을 비평하는데 중요한 참고가 된다. 최영환은 모더니즘에 주목한다. 그에게 모더니스트란 유토피아적 이상향을 추구했던 20세기 초 유럽인들이다. 서울의 대형 아파트 단지와 초고층 빌딩들은 과거 유럽의 모더니스트 건축가들이 추구했던 ‘효율성이라는 이상향’의 한국 버전이다.
모더니스트인 바우하우스 건축가들은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은 후, 그 끔찍한 과거와 단절하여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필요를 느꼈다. 그 근간으로 건축가들이 제시한 것은 효율성이다. 효율성은 물리적 공간을 수직으로 확장하여, 무수히 많은 고층빌딩(사무공간)과 고층 공동주택(주거공간)을 만든다. 바우하우스 건축가들이 갈구했던 물질과 시간의 효율적 배분은 서울을 살아가는 도시인들의 욕망 속에 가격으로 환산되고 치밀하게 계산된다. 강남의 사각형 콘크리트 아파트와 네오클래식한 백화점 건축은 그 욕망의 상징물이자 끝없이 욕망을 부추기는 기재로 기능한다.
최영환은 이번 작업에서 하나의 자기 모순을 발견한다. 도시화가 자아낸 인간의 비극적 실존에 대해 미학이라는 ‘순수’ 가치를 통해 비평한다해도, 도시를 지탱하는 주자원인 전기 에너지가 그의 작품 속 텍스트를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생생한 반상품화의 상징이 될 뻔 했던 "과거 잊은…"이라는 텍스트는 갑자기 공허한 메아리가 되고 만다. 도시인의 욕망이 갖는 허무함에 대해 소리치지만 그 울림은 다시 도시의 욕망 속으로 빠져들어 사라진다. 끝을 모르고 생겨나는 더 크고 더 높은 고층빌딩에 싸여 태양 빛을 볼 수 없는, 과거는 사라지고 미래는 오지 않을 것만 같은 현실의 좌절과도 같다. 최영환은 실패한 것일까?
최영환은 과거 태양 빛이라는 전생태적 자원을 활용해 특정시간과 장소에 하나의 텍스트가 보여지고 사라지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한 바 있다. 2010년 시카고에서 작가는 "Dancing In Dark Modern"라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머리와 가슴 부위에 100여 개의 거울 패널을 부착시킨 흰색 우주복을 입고 작가는 마천루 사이를 걸어 다녔다. 거울 패널은 화려한 마천루 사이를 뚫고 길에 내려오는 태양빛을 반사시켜, 거대한 모더니즘 건축 외벽에 움직이는 빛 조각들을 그린다.
"사라지기 쉬운 현수막" 프로젝트는 성북동 재개발과 관련해 지역의 주민들이 첨예한 갈등을 겪던 시기인 2012-13년에 기획되었다. 집집마다 내걸린 붉은 색 현수막의 "죽음을 불사하고 내 집을 지키겠다!"라는 격정적 문구는 일상을 투쟁의 공간으로 바꾸고 있었다. 여기에 작가는 거울을 이용하여 일시적으로 보이는 현수막을 제안한다. 하지만 제 일터와 집이 사라질 수 있다는 극단적 위기 상황에 처한 이들에게 예술을 매개로 제 삶을 조망할 것을 요청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최영환은 실패했던 것일까?
예술이 수행했던 실패들은 역사를 통해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이를테면 러시아 혁명에서 구성주의 운동은 칸딘스키의 비정형적 추상과 말레비치의 기하학적 추상 등 새로운 미학들을 탄생시켰지만, 사회적 혁명에 버금가는 미술적 혁명을 실현시키진 못했다. 심지어 타틀린의 "제3인터내셔널을 위한 기념탑" 모형은 당시의 유토피아적 열망과 인류의 점진적 진보를 상징하는 걸작이지만, 철근 부족과 기술적 문제로 실재로 제작조차 되지 못했다. 그러나 예술에 있어 실현되지 못함 혹은 수행되지 못함에는 그 자체의 미학이 존재한다. 작가가 대면하는 현실과 예술의 괴리에 대한 좌절은 역설적인 방식으로, ‘실패한 예술 작품’도 그만의 미학이 존재함을 반증한다.
성공을 향한 열망들로 가득한 신자유주의 시대에 예술가들은 실패할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예술적 실험을 계속한다. ‘실패라는 예술적 성공’은 성공만을 유일한 가치로 치부하는 이 사회의 견고한 틀을 가를 수 있는 유일한 틈이 된다. 최영환의 예술작품은 자본의 힘을 비판하는 문화적 대항운동이나, 이와 반대로 자본을 영유하는 문화산업으로 기능할 것을 애초에 목표로 하지 않는다. 두 가지 방법 역시 이 시대가 요구하는 바와 다름없이, 자신의 관점만을 관철시키는 성공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대신 작가는 우리의 일상에 스쳐가는 공기처럼 그의 예술 작품을, 잠시 배치한다. "과거 잊은…"이라는 산란한 문구는 시장이 잠든 시간에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을 부유한다. 뿌리내리지 못한 채 도시를 떠도는 소외된 인간들, 즉 우리처럼.
글: 양지윤, 코너아트스페이스 디렉터
작가 소개
최영환은 서울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2007)하고 시카고 미술대학에서 석사학위(2010)를 수여받았다. 작가는 영상, 퍼포먼스,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이용하여 도시화와 새로운 환경에 따라 변화하는 인식 간의 관계에 주목하며, 도시공간과 건축물들을 어떻게 현대문명의 역사를 반영하는 암시적 실마리로서 맥락화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작업을 한다. 공간이 가진 사회적 의미들에 대한 일련의 작업으로는 "Letters from Griffintown"(Auberge Alternative’s Arts Centre, 몬트리올,캐나다,2010), "동네스토리닷컴1,2"(스페이스 오뉴월,서울,2012,2013) 등의 개인전과 "나의 소중한 벗 성북에게"(성북예술창작센터,2011-2012), "사라지기 쉬운 현수막"(창동창작스튜디오,서울,2014) 등의 공공프로젝트가 있다.
*본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시행중인 "Emerging Artists: 신진작가 전시 지원 프로그램"의 선정작가 전시입니다. _ supported by Seoul Museum of Art
출처 : 코너아트스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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