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위주 류가헌
2016년 9월 27일 ~ 2016년 10월 2일
최윤정, 신호등이 바뀌면 알려주세요, 캔버스 45 x 53, 혼합재료 콜라주, 2013
글 뒤로 남겨진 그림
꽃인가 하면, 어린 소녀다. 소녀는 저 먼 여백에서부터 앞으로 걸어 나오는 중이다. 아니다. 이것은 그저 짙고 옅은 얼룩이다. 얼룩의 번짐이다. <꽃은 피었는데 날이 너무 춥다> 그림의 제목도 뚜렷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분명 그림 속 실체는 하나인데, 꽃이었다가 소녀였다가 얼룩이 된다. 명확한 ‘단어’로 규정되지 않았기에, 더 많은 언어를 파생시킨다. 마치 침묵이 때론 더 많은 언어를 상상케 하듯이.
또 다른 그림의 제목은 <신호등이 바뀌면 알려주세요>다. 회벽의 벗겨진 흔적인가 싶으면 잘못 그려진 부등호 같기도 하다. 어쩌면 저 커다란 원들이 ‘신호등’일지도 모른다. 아니다. 눈이다. 신호등이 바뀌길 기다리며 서 있는 두 인물의 눈.... 어디에도 그림속 대상을 확정짓는 선이나 테두리는 없다. 바탕에 글자들이 얼비치지만, 그것이 어떤 정보를 전달하지도 않는다. 색도 없다. 모호한 형체와 없는 색이, 오히려 보는 이로 하여금 무수한 형상과 색을 만들게 한다.
그림을 그린 작가 최윤정은 출판사를 꾸리며 번역과 글쓰기를 하고 있다. 글에 적을 두고 있으니 그림에도 표가 난다. 작가는 “오로지 시각적인 효과를 위해서, 주어진 이미지를 이리저리 변형하노라면 제목이 떠오르고 거꾸로 그 제목이 일으키는 정서를 작품에 담는 방식으로 작업이 진행되었다”고 한다. 그는 글이 미처 다 담지 못하는 것들을 그림으로 옮겼다.
잘 다듬어진 글 뒤로 남겨진 것을 그림에 담다보니 재료 역시 새롭고 세련된 것보다는 낡거나 시간의 흔적이 남아있는 것으로 택하게 되었다. 자신이 썼던 책이라든가 아버지가 유품으로 남긴 편지가 그랬다. 최윤정은 이것들을 뜯어서 캔버스 위에 여러 겹으로 붙여 바탕을 만들고, 그 위로 삶의 온갖 얼룩과 흔적을 오랫동안 칠하고 지우고 문지르며 작품으로 완성했다. 그 가운데 일상의 이야기가 실리기도 하고 그날의 기분이 스미기도 했다.
<입 안에 고인 침묵>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여러 장의 그림들은 저마다 자신의 말을 한다. 하지만 무언가를 명확하게 확정하거나 설명하지 않으므로 더 많은 감정과 이미지, 이야기들을 담는다. ‘침묵’이지만 실은 수많은 말을 하고 있다. 이 말과 그림은 9월 27일부터 10월 2일까지 갤러리 류가헌에서 만나볼 수 있다.

최윤정, 마음은 늘 불편하다, 캔버스 53 x 72.5, 혼합재료, 콜라주, 2016

최윤정, 겨울 나무가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에 생명이 숨어있기 때문입니다, 합판 36 x 51, 혼합재료, 콜라주, 2014
최윤정, 4월, 꽃은 피었는데 날이 너무 춥다, 캔버스 73 x 91, 혼합재료 콜라주, 2015
최윤정, 신호등이 바뀌면 알려주세요, 캔버스 45 x 53, 혼합재료 콜라주, 2013
출처 - 사진위주 류가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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