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소소
2024년 10월 11일 ~ 2024년 10월 31일
칼리코 Calico
최은영
2023년 8월, 내가 오랜 시간 돌봐온 길냥이 삼색이가 세상을 떠났다. 돌봐왔다는 말이 맞는 것일까? 우리는 서로를 지켜봤다. 늘 적당한 거리를 둔 채로 단 한 번의 물리적 접촉도 없었지만, 그와 나는 늘 함께였다. 와우산 산책로부터 복잡한 홍대 골목까지 동네 전부가 삼색이의 자리였다. 위험하다는 생각으로 더럽다는 이유로 내가 가지 못하는 곳에서 삼색이는 휴식을 취하고 새끼를 낳아 키웠다. 언젠가는 나의 머리 위 지붕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때로는 높은 담벼락의 가장자리에서 낮잠을 자기도 어쩌다 마음에 여유가 있어 보이는 날엔 창밖의 실외기 위에 누워 내가 일하는 모습을 한참이나 관찰하다 가고는 했다. 매일 같은 자리에 머물며 비슷한 일을 하는 내게 삼색이는 내가 닿지 못하는 세상을 가져다주는 존재였다.
개인전 제목 <칼리코 Calico>는 흰색, 검정, 주황색의 삼색 털을 가진 고양이를 뜻한다. 삼색 고양이는 암컷 고양이이고 매우 드물게 수컷이 태어나도 무조건 불임이다. 칼리코는 모든 색을 다 가지고 태어나지만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하는 불명확한 존재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림에 주로 등장하는 길고양이, 길가에 놓인 화분, 빈 터 등은 도시에서 매우 흔한 풍경 안에 자리 잡고 있지만 일상적이라는 이유로 주목받지 못한다. 나는 이들을 도시의 중간적 존재들로 인식하고 거리에서 발생하는 예상치 못한 변화와 임시적 개입을 회화적 행위와 결과물로 구현하려 했다.
이번 전시를 위한 작업 대부분은 불투명 수채물감 과슈를 사용하여 그렸다. 물과 아라빅 검이라는 수채 바인더를 사용해서 물감의 농도와 질감을 조절하고 얇은 붓질을 통해 두터운 질감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붓질 위에 붓질이 지나가고 물감 위에 물감이 덮어지다 보면 납작하지만, 단단한 조직 같은 표면이 생겨난다. 하지만 견고해 보이는 물감의 층위는 물이 닿는 순간 모든 결계가 풀어지며 가지고 있던 텍스쳐와 이미지를 잃어버린다. 나의 그림은 언제든지 물안에 흘려들어 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릴 수 있다. 시간을 머금은 한 장의 그림은 연약함과 견고함 그 위태로운 경계 위에 존재한다.
내게 회화는 현재의 나를 마주하게 하는 동시에 그 시간을 관통하는 경험을 하게 한다. 내 그림에 등장하는 장면들을 내가 오랫동안 그림 밖의 시간에서 머물며 봐온 것들이다. 거리를 오가며 직접 찍어왔던 사진들은 그림을 위한 주된 자료가 되었다. 사진을 찍는 짧은 순간(seconds)은 그리기의 과정에서 시간(hours)이 된다. 수년간 도시를 걸으며 다져진 언젠가는 그림이 되겠지 라는 믿음은 결국 그림이 되어 흩어진 나의 시간을 연결하고 있다.
참여작가: 최은영
글: 남웅
그래픽 디자인: 김서경
후원: 경기도, 경기문화재단
본 전시는 2024 경기예술지원 생애첫지원에 선정된 전시입니다.
출처: 갤러리소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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