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프레스 서울
2016년 4월 1일 ~ 2016년 4월 27일
최진욱 개인전 : 서서히
2013년에 그린 ‘서서히’는 400호 캔버스에 시원하게 펼친 최진욱의 역작이다. ‘서서히’는 장지에서 관을 조심스레 내리는 행위를 가리키는 것 같지만, 작가에 따르면 ‘구시대에서 새 시대로 바뀌는 것은 서서히 이뤄질 것’이라는 친구의 말에서 따왔다고 한다. 그런데 이 그림은 ‘서서히’ 의 점차적인 변화보다는 일종의 조증 상태를 전달하는 감정의 파노라마다. 당시 작가는 2012년 겨울 대통령선거에서 박근혜 후보가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고, 침울했던 시기를 묻고 이제 새로운 변화의 기대 속에서 이 그림을 그렸다 한다. 그래서 이 그림은 여느 공원묘지에 늘 있는 일상의 풍경인 장례식을 구시대의 종말과 새 시대의 희망이 엇갈리는 정치적 사건으로 변모시킨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일상을 정치로 격상시키는 회화적 조작인, 그런 ‘변모’일까? 메를로-퐁티는 어디선가 ‘지각에 있어서 진실인 것은 역시 지성의 단계에서도 진실이다.’라고 했다. 겨울을 뚫고 나오는 봄꽃에 상투적인 희망의 메시지를 부여하는 순간을 생각해 보자. 그것의 상투성은 단순히 언어적 관습에 의해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봄꽃 자체가 실제로 희망과 같은 것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것처럼 땅 속으로 ‘서서히’ 내려가는 관은 낡은 권력 집단과 실제로 어디선가 이어져 있으며, 죽음과 구 정치는 상징이 아닌 실제의 차원에서 겹친다. 이 그림은 그런 의미에서 단순히 정치 변화의 열망을 그림으로 번역한, 정치의 은유나 '의미 부여'가 아니다. 이 그림은, 새로운 사회에 대한 희망이 실제 장례식의 구체적인 장면 속에 있다는 것, 장례식과 구시대의 종말이 새가 열매를 따먹는 것처럼 서로 직접 인접되어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최진욱은 이렇게 묻는 것으로 보인다. 회화 말고 다른 어떤 것이 그 같은 일을 할 수 있는가? 일상과 정치의 감각적 지적 일치라는 최진욱의 오랜 시도가 이젠 결실을 맺은 것 같다. (박찬경)
출처 - 인디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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