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블루갤러리
2022년 6월 10일 ~ 2022년 7월 10일
늘 볼거리가 즐비한 거리를 지나가며 저 구석 어딘가에 나의 것이 있지 않을까 하고 상상하였다. 만약 그것이 있다면 고민할 필요도 없이 첫눈에 알아보리라. 그렇게 습관처럼 거리를 들여다보고는 하였다. 그날은 평소와 무엇이 달랐을까. 조금 선선해진 바람 덕에 이왕이면 거리의 더 깊은 곳까지 가보자고 마음먹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난 볼거리가 즐비한 거리의 뒤 편에서 번듯한 모습으로 버려진 캐비닛 하나를 마주쳤다. 아니, 만났다고 표현하는 편이 좋겠다. 잠시 숨을 돌리고 그것을 나의 공간으로 옮겼다.
캐비닛은 꽤 튼튼하면서 무거웠고, 만듦새를 보니 요즘 것은 아닌 듯하였다. 묵은 먼지와 때를 벗겨 새로운 색과 마감재를 얹었다. 한 칸, 한 칸 캐비닛 안을 열어보며 감상하고 있을 때 문득 여기에 어울리는 것이 떠올랐다.
뒷 문을 열어 창고로 향한 나는 그 속에서 오래된 청동 조각상 하나를 꺼내들었다. 날개 달린 정령의 모습을 한 조각상은 어두운 빛을 내고 있었다. 제 빛을 잃는 법도 없이 오랜 시간 자리를 지키던 조각상을 캐비닛의 가장 첫 번째 칸으로 옮겼다.
생각처럼 꼭 들어맞는 모양을 보니 예리한 푸른빛이, 간절히도 떠올랐다. 그렇게 첫 번째 칸 안쪽 빈 벽에, 파아랗게 벼린 선으로 그려진 정령 그림을 걸었다. 보아서는 안 될 존재를 본 듯, 알아서는 안 될 존재를 안듯 입술이 바짝 마르기 시작했다. 작은 날개로 부유하는 저것들을 좀 붙잡아 두어야겠다. 다시 창고로 향했다.
창고의 또 다른 곳에는 건조하게 만져진 누군가의 두상 조각이 있었다. 갖가지 색과 형체가 뒤엉킨 그것은 안팎의 경계를 알 수 없는 꼴을 띠고 있었고, 거칠게 덧붙여진 표면과 반복해서 빗 그어진 날카로운 선에 눈이 갈 뿐이었다. 묽은 질감으로 탁한 색을 담고 있던 조각은 명암을 삼킨 채 그자리에 무겁게 놓여있었다. 캐비닛과 제법 어울리는 강도이지 않을까.
시곗 바늘이 반 바퀴를 움직일 동안 보고 나르고 고치고 놓고 걸고 매만지다 보니 어디선가 나를 깨우는 소리가 들렸다. 경쾌하게 분절되다가도 이내 몽환적인 음으로 지난 시간을 마중해 주는 소리. 그것은 느긋함을 말하면서 다시금 빠르게 제자리를 맴돌았다. 분명 창고 문을 처음 열 때부터 함께한 소리였다. 이내, 캐비닛 가장 첫 번째 칸의 가장 마지막 합을 찾을 수 있었다.
나는 속이 훤히 보이는 저 그림을 이유 없이 바라보고는 하였다. 층층이 난 얼룩의 깊이를 세어보다 그림 속에서 길을 놓치길 다반사였다. 길을 찾으려 한 나의 착오였을까. 흐르는 방향 없이 흩뿌려진 흔적을 눈으로 좇으며 이쪽에서 저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다시 저쪽에서 이쪽으로, 또다시 아래에서 위로, 그리곤 이쪽에서 저쪽으로...이어지는 긴 행렬에 갇히기도 몇 번. 부유하는 존재들 옆에 걸어두기로 했다.
평소와 달랐던 그날, 캐비닛을 나의 공간으로 들여왔다. 그리고 이제는 캐비닛 속에 내가 서있다. 그림을 마주하고 조각을 맴돌며 소리를 좇고 있는 내가 이곳에 있다. 가장 첫 번째 칸, 그 어느 곳. 캐비닛을 다시 말해본다. 그것은 꽤 단단하면서 저만의 무게를 가지고 있고, 만듦새를 보니 지금의 것이었다.
참여 작가: 윤정의, 맹희원, 이강욱, 민백
기획: 그블루
디자인: 이기정
사진: 유호식
도움: 김정아, 윤지음, 김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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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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