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예술공간
2021년 12월 28일 ~ 2021년 12월 29일
아마도예술공간에서는 김옥선, 안옥현, 윤정미, 이재이 4인의 사진/영상 작가가 만들어 내는 퍼포먼스-영상프로젝트 ⟪합창 Dictee: Chorus⟫의 오프라인 전시를 2021년 12월 28일부터 29일 양일 간 진행한다. 이들은 2021년 초부터 테레사 학경 차(Theresa Hak Kyung Cha), 한국 이름으로 차학경의 텍스트 『딕테(Dictee)』를 함께 읽고 공부해왔다. 그녀의 텍스트와의 시차는 근 40년. 이들은 시간을 거슬러 오르며, 또 한편 이주, 난민, 팬데믹, 차별과 혐오라는 동시대의 위태로운 삶들을 상기하며 국경과 정체성을 가로질러 타자들 사이에서 공명할 수 있는 예술의 가능성을 들여다보고자 했다.
테레사 학경 차는 1951년에 태어나 서른 하나에 생을 마감한 비운의 예술가다. 1970-80년대 로스앤젤레스와 뉴욕에서 활동한 미디어 아티스트이자 개념미술가인 그녀가 차학경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소개된 것은 2000년도에 이르러서였다.(1) 작가이자 시인, 영화감독, 개념미술가, 비디오 아티스트, 퍼포먼스 아티스트로서 활동했지만, 사후 그녀의 작업은 미국에서는 물론, 한국에서도 접할 기회가 드물었다. 1997년 그녀의 대표작 『딕테』가 국내에 번역되면서, 영문학자와 국문학자들의 연구가 꾸준히 이어졌지만, 비디오와 퍼포먼스를 중심으로 한 그녀의 시각예술 작업들은 지금도 사진이나 몇 장의 스틸컷 외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차학경 작업이 이토록 비가시적이고 비의(秘義)적으로 여겨지는 진짜 이유는 사실 이러한 접근 불가능성보다 작품 자체가 지니는 중층성과 난해함에 있을 것이다. 구조주의 영상 문법과 정신분석학, 기호학, 탈식민주의, 페미니즘, 샤머니즘이 복합적으로 깃든 그녀의 작업은 결코 복원 불가능한 ‘모국’에 대한 좌절, 정체성과 동화(同化) 사이의 곤경, 망명자의 불안한 시공이 켜켜이 담긴 언어 실험이자 매체 실험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차학경이라는 이름에는 무거운 중압감이 붙어 있다. 그녀의 이름을 말하는 찰나, 그녀의 기념비적 텍스트 『딕테』가 출판되기 바로 전 일어난 그녀의 죽음을,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가 강간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의식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러한 참극이 먼저 전하는 충격, 분노, 슬픔이 차학경 작업의 다면적인 의미들을 일시에 덮어버릴 수 있는 위험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차학경을 입에 올리는 일, 차학경의 작업을 불러내는 일은 어쩌면 스캔들, 혹은 트라우마의 위험을 무릅쓰는 일이고, 무지, 오독, 멜랑콜리의 늪에 발을 디디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옥선, 안옥현, 윤정미, 이재이 네 여성 작가들은 차학경을 호명하는 일, 차학경의 『딕테』를 펼치는 일, 그녀가 새긴 호흡과 끊어진 말들을 따라 읽는 일이 지금을 살아가는 여자들에게 어떤 숙제, 아니 긴급한 필요와도 같다고 여긴 듯하다. 이 ‘읽기' 자체가 지금 팬데믹이라는 재앙이 표면 아래 묻어버리고 있는 이주자들, 소수자들, 오염으로 간주되는 모든 존재들과 공유할 수 있는 어떤 뭉근한 위안과 공명의 불씨가 될 수도 있다고 믿은 것 같다. 그래서 이 프로젝트는 차학경에 대한 기념, 오마주, 혹은 그녀의 작업을 동시대 매체로 재해석하는 재현이 아니라, ‘읽기'의 수행으로 기획된 것이다.
말하자면, ⟪합창 Dictee: Chorus⟫은 차학경의 생과 작업을 더듬더듬 함께 발굴하는 자리, 또 그녀의 언어를 떠듬떠듬 “받아쓰는" 자리로 마련되었다. ‘탈장르적' 텍스트라 불리는 『딕테』는 영어와 불어, 문자언어와 영상언어의 문법을 맞댄 언어 실험이자, 출처표기 없는 인용과 파편화된 말과 글의 콜라주이며, 텍스트와 시각예술 매체를 이종교배시킨 작업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리스 신화의 아홉 뮤즈 여신의 이름을 따라 아홉 장으로 구성된 『딕테』 안에는 식민의 경험, 이주의 역사를 관통하는 자전적 이야기부터 한국사의 장면들, 붓글씨와 경혈도, 발성기관의 도상과 황량한 사진까지, 또 어머니와 외할머니의 모습을 비롯해 유관순, 성 테레사, 잔 다르크(칼 드레이어의 마리아 팔코네티)와 같은 여성의 형상들이 몽타주를 이루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특히 ‘에라토-연애시' 장에 주목하면서 그녀의 텍스트가 지니는 여성적 말하기의 복수성과 모호함을 다시 읽어내고자 시도한다. 에라토는 사랑과 서정을 주관하는 여신으로, 차학경은 이 장에 영화 대본과 같은 글쓰기, 텍스트의 병렬적/비동기적 실험 등을 이용하는 한편, 영화속 한 장면 같은 가부장제 속 여성의 침묵을 그려내고, 자신을 봉헌하는 리지외의 성 테레사의 글을 삽입했다. 사랑을 발현하고, 열망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여성들의 몸과 말은 빛과 그림자, 흰색과 검은색, 분해와 디졸브라는 시각적 요소들과 섞인다. 이 불명료하고 영화적인 텍스트의 안과 밖을 살피며, 네 작가들과 프로젝트 참여자들은 저마다의 조각들을 주워들고 짜맞춰보기를 시도한다.
⟪합창 Dictee: Chorus⟫은 차학경의 ‘받아쓰기’를 다시 받아쓰는 행위를 통해, 그녀의 사유가 품고 있는 미결정과 경계넘기를 동시대적 감각으로 재구성해보고자 한다. 『딕테』를 받아쓰고, 소리내어 읽음으로써 우리는 이민자가 제2의 언어를 습득하기 위한 반복과 웅얼거림, 침묵과 소통불가능성, 그리고 동화의 욕망과 나란히 가는 상실의 감각을 환기하게 된다. 받아쓰기는 사유에 앞선 신체적 행위이고, 자신의 문체와 언어를 내려놓고 타인의 말과 리듬에 나를 동기화시키는 감행, 굳건하게 통합된 자아가 아니라 침투당하고 오염되는 새로운 문화적 교배의 영토로 자신을 내놓는 순간이다. 하지만 각자의 위치에 선 우리는 끝끝내 타자로, ‘너’에게로 넘어갈 수는 없다. 그래서 이 프로젝트는 『딕테』에 관하여 말하는 프로젝트가 아니라, 『딕테』 옆에서 말하는 프로젝트다. 한국계 미국인 여성 시인으로서 인종차별의 경험과 수치심, 우울에 대한 고백을 담은 에세이 『마이너 필링스』에서 캐시 박 홍은 예술가로서 ‘인종에 관하여’ 말하기가 어떤 것인지를 솔직하고도 날카롭게 기술한다. 우 창과 차학경의 예술을 한 장씩 할애에 쓰기도 한 그녀는 영화 감독 트린 T. 민하를 인용하면서 내 체험 바깥에 있는 무엇에 ‘관해 말하기(speaking about)'보다 그 ‘근처에서 말하기(speaking nearby)’가 필요함을 역설한다.(2) 복잡하게 엉킨 어떤 것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전력을 다해도 그 전반을 다루기는 불가능하며, 그저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근처에서 말하기’ 뿐이기 때문이다. 자꾸 옆길로 새고, 매번 다른 각도로 돌아오는 ‘근처에서 말하기’는 서투르지만 여백을 남기고 다른 연결의 가능성들을 계속 생성시킬 것이다.
(1) 차학경의 존재가 한국 미술계에 처음 알려진 계기는 2000년 5월 선재아트센터에서 열린 《한미한국전(KoreAmericaKorea)》에서 그녀의 비디오 작품 <망명자(Exilee)>가 소개된 것이었으며, 미국의 5개 도시를 순회하면서 열린 차학경의 유고전 《관객의 꿈: 테레사 학경 차 1951-1982》(BAMPFA가 2001년 기획)이 2003년 9월 국내 쌈지스페이스에서 열림으로써, ⟪딕테 Dictee⟫와 더불어 그녀의 미술작품이 국내에서 본격 주목받게 되었다. 김현주, 「한국/미국/여성: 차학경과 민영순의 이산의 정체성」, 『현대미술사연구』 vol.13: 2001.12; 「테레사 학경 차의 시대를 앞선 예술적 비전」, 『현대미술포럼』(20)(http://www.daljin.com/?WS=33&BC=cv&CNO=388&DNO=18385)
(2) 캐시 박 홍 지음, 노시내 옮김, 『마이너 필링스-이 감정들은 사소하지 않다』, 마티, 2020. 142-143.
주최: 안옥현
공동기획: 이진실
온라인 프로젝트 진행: 박정현
협력: 아마도예술공간(진행: 진민지)
퍼포먼스: 강민석, 김서희, 김옥선, 김인선, 김천애, 박정현, 빈지영, 송하연, 안예슬, 안옥현, 안유정, 안재영, 윤정미, 이병희, 이새아, 이은정, 이재이, 이진실, 진민지, 최영귀, Theresa-Xuan Bui
디자인: 프론트도어
웹개발: 빠른손
※ 온라인 전시: www.dictee-chorus.co.kr (2021년 12월 28일-2022년 12월 31일)
* 안전한 관람을 위해 방역패스 의무 지침을 시행합니다. 공간 방문 전 접종 완료 전자(앱)증명, 종이증명서, 스티커, PCR 음성 확인서 등 간편한 방역 패스를 준비해 주세요. 전시장 입장 시 관련 증빙자료를 직원에게 제시하여야 이용 가능합니다. (① 접종 완료자, ② PCR음성확인서 소지자(48시간 이내 발급), ③ 11세 이하인 자(12~18세의 경우 ’22.1.31.까지는 방역패스 없이 입장 가능), ④ 확진 후 완치자, ⑤ 불가피한 사유에 의한 접종불가자(의학적 사유에 한정, 의사소견서 필요)에 한하여 이용 가능)
* (전자출입명부) 확진자 발생 시 감염경로 추적을 위해 온라인 예약을 시행하며, 현장 예매 가능(온라인 예약 추후 공지)
출처: 아마도예술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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