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팩토리
2025년 2월 12일 ~ 2025년 2월 22일
「펼쳐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꺼내어질 때까지」
개인적인 이야기를 꺼내기에는 사실 많은 것들이 덩어리져 있는 상태이다. 그것은 단순히 복잡하고 얽혀 있다는 뜻만은 아니다. 풀어서 설명하는 방법도 얼마든지 있지만, 이 상태를 유지하는 이유가 있다면, 아마도 이를 설명이나 주장으로 푸는 대신, 기억으로 간직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한 사람의 부재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상실을/에 대하는 것이다. 상실을 대하고—감정을 느끼고, 위로하고, 때때로 억누르고, 상실에 대하는—맞서고, 기억하고, 잊지 않는 일. 그리하여 부재하는 사람은 한 사람의 기억 속에서 덩어리진 채 간직된다. 그것은 한 사람이 있던 흔적이자 내가 상실을/에 대하는 자취를 빚어낸 것이 된다. 더듬으면서 맞이하는 상실 앞에서, 이 덩어리진 기억만큼 구체적인 동시에 추상적인 것도 없다. 닳도록 매만져진, 그러나 일부분만 선명하게 남은 기억은 나와 그 사람을 애도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덩어리진 상태를 펼치고 부분별로 나누어 나열하는 대신, 허세빈은 시각 작업을 통해서 상실감을 전달한다. 개인전 《접혀야 온전한》에서 작가는 외할아버지의 기억에서 출발한다. 여기서 기억이란 할아버지 본인이 갖고 있던 기억과 작가가 할아버지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기억이 하나로 뭉쳐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치매를 앓던 할아버지는 과거에 살던 집과 지금의 집 사이를 왔다 갔다 하셨다. 한 지점에서만 본다면, 그 모습을 보고 ‘헤매는 것’이라고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접힌 채 보이지 않는 면이 그렇듯이, 두 지점을 오가는 일은 기억을 하나의 덩어리처럼 만든다. 작가는 할아버지와 나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그러면서 덩어리진 형태는 이번 전시에서 ‘접힘’이라는 방법론을 통해 형상화된다. 접힌 면이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채, 하나에서 출발하여 다른 면이 되어 (다시) 만나듯이, 작품을 통해서 작가는 접히고 덩어리진 기억의 모양새를 시각적으로 전달한다.
전시 제목으로 나타난 것처럼, 이번 전시에서 허세빈은 ‘접힘’을 시각적 표현 수단으로 다룬다. 전시장을 맞이하는 <Welcome>(2024)에서 중간 글씨는 접혀 있어서 보이지 않는다. 접힌 상태에, 기억 속에 덩어리진 상태를 우리는 목도하게 된다. 그 외에도 전시장에는 내밀한 상태를 형식적으로 유지하는 작업이 소개된다. <Handheld loss: 상실의 불안정성에 대한 연구>(2025)에서 우리는 접힘과 펼침의 과정을 볼 수 있다. 앞과 뒷면에 그려진 문의 이미지는 연결되어 있는 동시에 단절을 만드는 종이의 특성을 따르고 있다. 한 번 아닌 여러 번 접힌 종이는 그 접힌 모습 안에 무게를 지니게 된다. <Dialogue>(2024)의 접힌 형태는 가까이 있지만, 서로 만날 수 없는 층위를 위아래로 이룬다. 책 작업 <Zine for overlap>(2024)은 이번 전시에서 가장 구체적인 출처를 가진 작업인데, 작가의 할아버지가 이전에 살던 지역 근처(로 추정되는 곳)에서 찍은 사진과 사진의 시각적 형상을 선으로 따온 흔적이 기록된 트레이싱지가 서로 겹치는 구성이다. 이와 같이, 작가가 상실을/에 대하는 방법은 시각적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대신, 그 흔적을 따라가고 반추하는 것이 된다.
전시장 중앙에 설치된 <기억 속의 집>(2025)에서 그림은 덮은 일기장의 한 페이지와 같이 펼쳐진다. 인체 감응 센서를 통해서 잠시 펼쳐진 상태에 (우리는) 얼마나 가까이, 그리고 깊숙이 타자의 기억으로(써) 빠져들 수 있을까. 꺼내어진 상태가, 그 접힌 채로 있는 것들이 일종의 덩어리처럼 여겨진다면, 우리는 거기에 쉽게 다가가기 힘들다. 타자의 기억을 내 것으로 만들기 어렵다는 이유도 있지만, 기억이란 한 사람 안에서 이해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곱씹어진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펼쳐야 온전한”이 아닌, “접혀야 온전한”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접히고 덩어리진 시간과 공간, 그리고 기억의 모양새는 쉽게 해독되는 것이 아니라 나-그 사이의 경청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접힘은 사유와 접촉, 이 모든 과정을 담은 결과물로 전시장에 있다. 허세빈이 회화 작업 <시시콜콜한 일상의 상실>(2024)과 <부재의 존재>(2024)에서, 있었다가 사라진 전단지의 흔적을 그린 이유도 마찬가지다. 장소를 가리는 동시에 또 다른 층위를 만드는 전단지는, <왼쪽에 있던>(2024)과 같이 걸리면서 한 사람을 기억으로 소환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접힌 면은 공간을 이룬다—나뉜 채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은 왜 떠나간 사람의 서랍장을 여는 걸까요? 상실 앞에서 우리는 해명되지 않은 진심과 해결되지 않은 마음을 이해하는 시간을 보낸다. 독백도 대화도—타월에 실크 스크린으로 작업한 <Monologue>(2024)과 <Dialogue>처럼—언젠가는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꺼내어진다. 여전히, 보낸 사람에게 보내는 마음이, 그곳에 함께하길 바라면서. 조개껍데기에 귀를 갖다 대듯이, 그 안으로 들어가 소리를 들으려고 한다. 허세빈에게 상실은 전적인 부재가 아니다. 그는 작품을 통해서 시간과 공간을 열고 닫는, 그 과정을 통해서 감상자 또한 깊숙이 들어갈 수 있는 빈자리를 만든다. 깊이를 지닌 곳은 접혀야 온전하며, 그래야 조심히 다가가 내가 펼칠 수 있다. 거기서 맴도는 감정이 헛되이, 무(無)로 돌아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으며.
글: 콘노 유키
작가: 허세빈
주최 및 주관: 옥상팩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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