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합공간 소네마리
2018년 7월 24일 ~ 2018년 8월 6일
2018년 문화복합공간 소네마리의 첫 전시로 ‘여성’의 언어를 담은 전시가 선정되었다는 점은 매우 인상 깊은 시작이다. ‘미투’ 선언 이후, 가려졌던 목소리들이 세계의 벽들과 부딪혀가며 울리고 퍼지기 시작했다. 울림은 ‘일회성’도 ‘지나가는 흐름’도 아니다. 모든 옛것이 흔들려 무너지지 않는 이상에야 그것은 멈추지 않는다. 한국 사회의 담론의 장에서 소외되고 사소한 것들로 치부되어왔던 여성의 목소리가 ‘공론의 장’에 올라서기 시작했다. 울림은 성을 불문하고 온 세상의 무디고 견고한 구조에 균열을 낼 것이다. 그리고 균열 난 세계에서 소외된 목소리를 찾아낼 것이며, 미시적인 감정과 감각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할 것이다.
세 명의 신인 작가들은 각기 다른 매체를 이용하여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윤결 작가는 제3 세계의 억압 속 여성들의 욕망을 전시장 공간에 덮어 자연스럽게 한국 모습과 비교하게 하고, 이 다은 작가는 디지털 매체에서 여성의 이미지가 어떻게 소비되는가를 추적하며 이미지 담론을 선점하고 지배하는 ‘주체’를 겨냥해 카메라의 프레임에 날카롭게 담아낸다. 그리고 홍양무현 작가는 배제되었던 여성들의 감정과 촉각의 결들을 종이 위에 섬세하게 스미게 한다. 사실 이 이야기들은 이미 누군가에게는 익숙한 일상이며, 언제나 사소하기에 언급될 수 없던 또 하나의 ‘삶’이다. 하지만 이 일상에서 더는 오늘과 과거의 시간이 같은 감각을 공유할 수 없게 되고, 삶이 머무는 공간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되었으며, ‘누군가’의 호소가 더 이상 ‘사소함’에 머물 수 없는 상황에 진입했다. 기존의 평화로운 듯 보였던 삶은 작가들의 이야기를 통과하고 난 후, 다르게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통점> 홍양무현
홍양무현 작가는 전시의 이름을 a pain point, 통점이라고 붙였다. 성폭력 사건에 등장하는 신체이든, 성적으로 대상화되어 상품으로 유통되는 신체이든 간에, 통각을 느끼는 신체 자체로서의 피부나 감각들은 쉽게 배제되곤 한다.
작가는 이번에 소개되는 작품들을 통해 신체의 모습들을 섬세하게 어루만져주며 이야기를 듣는다. 수채화는 이러한 듣기의 과정에서 소리들을 조금 더 증폭시켜 준다. 수채물감은 종이라는 바탕에 스며드는 질료이다. 연필은 종이 위로 신체의 돌기, 주름, 털 등을 놓치지 않고 담아낸다. 수채물감과 연필을 통한 작업은 자신이 표현해내고자 하는 형상의 속삭임들을 듣는 작업과 같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던 신체의 목소리들은 여기에서 각기 다른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다.
화폭 속에서, 많은 것들이 덧씌워진 상징의 언어가 아닌 신체로서의 감각들이 표현된다. 작가의 미시적 감각들을 찾아내는 작업은 무딤을 누렸던 이들에게 강한 진동으로 다가간다. (고산. 소네마리)
작가노트
나는 내가 만났던 생존자들의 상황을 그려내려 시도한다. 예를 들어, 성폭력을 경험한 사람들은 성폭력 사건 이전과 이후를 매우 다르게 구성하며, 사건을 중심으로 자신의 역사를 재편성하기도 한다. 자기 탓을 하다가도 가해자에 대한 분노를 표시하기도 하는 것은 생존자에겐 그러한- 무질서하고 혼재된- 타임라인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가해자의 피부가 닿았던 것이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몸을 좁혀들게 하는 기억으로 고정되어 자꾸만 그 상황으로 돌아가게 되는데, 그것을 헤쳐나가기 위해 무수한 감각들을 동원한다.
나는 성폭력 생존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들의 상태에 깊이 동화되었다. 생존자들의 감정이나 신체적 감각이 마치 종이가 물에 젖듯이 자연스럽게 내게 흘러들어 왔다. 그 아픔은 액체처럼 부드럽게 내게 스몄고, 어느새 내 일부가 되었다.
상담은 동조하는 것뿐만 아니라 방법들을 제시하고 대안들을 제안해야 하니까, 일정 부분이상 빠져들어서도 안 되지만, 생존자들의 말을 실제로 듣는 것은 중요하며 더 쉽게 말할 수 있는 기회와 공간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말하기’를 들으면서 신체적, 감정적으로 동화되면서도, 판단은 그와 다르게 내릴 수 있는 지점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어려운 부분이다. 예를 들어, 여성주의에 대한 편견에는 저항해야 하지만, 전략적으로 생활에서 부딪치는 크고 작은 어려움들에 어떻게 대응해나갈지는 이야기해볼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방법이 어느 상황에 걸맞는지는 본인이 선택할 수 있으며, 그러한 힘을 믿는 것이 여성주의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혼합된 상태, 엉켜있는 상황의 어색함이나 부자연스러움, 모순들을 나의 그림에서 보고 충분히 휩쓸리고 함께 헤맬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림에서 빠져나와 분리되었을 때, 그 때 볼 수 있는 세상은 예전과는 분명 다를 것이다.
작가소개
홍양무현 HongYang, MooHyun
대학에서 조형예술을 공부하고 성폭력상담소 성문화운동팀에서 2년여간 근무했다. 노들장애인야학에서 3년간 미술반을 맡아 가르치고 배웠다. 여성주의 시각예술공동체 언니모자의 구성원이다. 사람들, 특히 소수자들이 다르게 감각하는 상황에 대해 탐구하고자 한다. 각기 다른 입체적인 상황을 목격하여 상황을 포괄적으로 드러나게 하려 노력한다. 그 과정에서 신체는 유효한 도구로써 관찰에 사용된다. 신체를 기준으로, 개인마다 각기 다른 감각의 흐름이 사회로 향할 때 사회는 그것을 어떻게 수합해내는지, 개인의 감각과 사회의 감각은 어떻게 다르게 흐르는지에 대해 다투려 한다.
출처: 복합문화공간 소네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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