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팎스페이스
2023년 10월 3일 ~ 2023년 10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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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팎스페이스는 2023년 10월 3일부터 10월 15일까지 황예지 개인전 <부족한 별자리>을 개최한다. 새로운 국면의 저항 - 지형도 그리기를 하는 황예지는 어떤 사진을 찍고 있을까. 피붙이가 생긴 이후 ‘살길 잘했다’고 말하는 J, 한 사건을 빠져나오며 멈춰버린 시간 속에서도 부글부글 끓고 있는 S, 언제 용역이 들이 닥칠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사람들과 아침을 나누어먹는 L, 어떤 세계와 단절된 이후에도 아직 글을 읽고 쓰고싶다고 말하는 Y, 그들이 황예지의 렌즈 안에 담겼다. 그리고 남겨진 풍경들. 소강된 순간의 풍광들이 함께한다. 이 전시장 안에서 당신은 느린 발걸음으로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공기 안을 걸을 수 있을 것이다.
소강된 사람들이 잠드는 밤
각 대학에서의 2022년 2학기가 시작되고, 나는 화석 신분으로 모교 A대의 수업 하나를 청강했다. 오랜만의 모교 방문이 가져다주는 설렘과 편안함을 만끽하며 등하교 하기를 한 달여... A대의 청소노동자 파업이 시작되었다. 이 파업이 내게 가져다준 파괴적 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A대에는 내가 함께 외치게끔 만드는 어떤 가치들이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것들이빛나던 시기의, 함께 외치던 시절의 광휘를 여전히 믿고싶다. 그러나 캠퍼스 내에 파업 중인청소노동자를 규탄하는 대자보가 나붙는 걸 지켜보며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믿음들이 바래가는 경험을 했다. A대에서의 시간이 내 몸을 긴장케하는 위협의 시간이었다면 그 대자보 앞에서 조금 더 덤덤할 수 있었을까? 대자보들 앞에서 나는 크게 동요했다. 그건 일종의 배신이었다. 내가 울타리라 믿었던 것의 배신. 안전하다 여겼던 시간들이 허깨비로 돌아가는 시간. 광택 낸 어절들이 A대의 온라인 커뮤니티와 캠퍼스 사이사이를 부유하고 있었다. ‘수업 방해’, ‘학습권 침해’, ‘학생안전 위협’, ‘선전’.... 광택을 낼 필요가 전혀 없는 단어들이 있다. 부질없이 반질반질한 단어들 앞에서 숨이 막혔다.
황예지는 스스로를 “수집과 기록을 즐기는 부모님 밑에서 자랐고 그들의 습관 덕분에 자연스레 사진을 시작했다. 사진과 에세이, 인터뷰 등 다양한 형식을 다루며 개인적인 서사를 수집하고 있다. 개인의 감정과 관계, 신체를 통과해 사회를 바라보고자 한다.”고 말한다. 나는 오랜시간 황예지를 알았다. 황예지는 내게 ‘언제고 삶보다는 죽음을 해석하는 사람, 죽은 자에게 말거는 사람, 어리숙함과 같은 용감함이 저문 탓에 발언하기를 망설일 때가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하기를 멈출 수 없는 사람이다. 저문 용감함에 대해 이야기하기는 그 자체로 용감하므로. 허깨비가 되어버린 나의 시간을 붙잡기 위한 시도로 황예지에게 메일을 썼다.
“어떤 참담함에는 익숙해지지 않는 것 같아요. 나와 같은 가치를 공유하리라 믿었던 이들이어쩌면 아니었음을 깨닫는 시간, 회의감이 엄습해요… 나와 우리의 안전을 위해 배우고 발화했던 시간들, 그러나 그 공동체가 실은 나와 너, 나와 몇몇, 나와 A대만을 포함하는 생각보다작은 집단이었다는 걸…. 그런 일들을 실감해요. 여태까지의 싸움이 세계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이분법에 맞선 것이 아니라 사실은 나와 내 주변 몇몇의 이권다툼을 위한 것들이었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무력해지는 감정을 주체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황예지가 되돌려준 대답이다.
“반복과 소진 사이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요즘 내가 하는 생각은, 버려진 땅은 어디이고 끝까지 지키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불씨마저 꺼진듯해 보이는 사람들, 그들의 유령을쫓아가볼 수 있을까? 오래된 과거의 일이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사람들, 혹은 이미 죽은 사람들을 건져올리는 것이기도 해. 그런 것들을 떠올리며 내 자신이 소강상태에 진입했음을, 어쩌면 죽은 체 하는 날들이 있구나 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지금 우리의, 각자의 보이지 않는 위기와 전투를 떠올리는 거야.”
황예지가 이야기하는 바랜 말들에서 나는 다시 한번 전혀 광택을 낼 필요가 없는 단어들이 있음을 실감했다. 윤이 나지 않아 눈에 띄지 않을 뿐 아직 그 자리에 있는 존재들. 새삼스러울 필요 없었던 무력감. 반복되고 소진되는 무력감 사이에서 황예지는 또다른 저항의 지형도를 그리고 있었다.
새로운 국면의 저항-지형도 그리기를 하는 황예지는 어떤 사진을 찍고 있을까. 피붙이가 생긴 이후 ‘살길 잘했다’고 말하는 J, 한 사건을 빠져나오며 멈춰버린 시간 속에서도 부글부글끓고 있는 S, 언제 용역이 들이 닥칠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사람들과 아침을 나누어먹는 L, 어떤 세계와 단절된 이후에도 아직 글을 읽고 쓰고싶다고 말하는 Y, 그들이 황예지의 렌즈 안에담겼다. 그리고 남겨진 풍경들. 소강된 순간의 풍광들이 함께한다. 이 전시장 안에서 당신은느린 발걸음으로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공기 안을 걸을 수 있을 것이다.
2022년은 유례 없는 장마가 내린 해이기도 하다. 유례없는 장마에 무방비한 수해가 발생했다. 사고 이후 보여주기식 행정 앞에 익숙한 피로가 몰려왔다. 수없이 경험했음에도 도무지 무뎌지지 않는 무력감. 이런 무력감을 손쉽게 가을바람의 선선함에 날려 보내는 것까지 지겹게 되풀이되었다. 그리고 2022년의 10월 29일이 왔다. 세계는 구 모양의 깊은 슬픔이라는 생각을하는 사이 해가 바뀌고 2023년이 되었다. 여전한 반복 사이에서 황예지가 더듬어온 시공간들. 세월호, 홍콩, 수원 성매매 집결지, 이태원 참사. 황예지의 말이 인상 깊다. 이태원 참사의 추모행렬을 보며 ‘걸어가는 사람 마저도 상여행렬을 보는 것 같았다’던 그의 말.
황예지가 사는 이태원의 보광동. 그곳에서 영위할 수 있는 기한은 미정이다. 때가되면 해야하는 이사. 장마가 한창이던 올 여름, 떨어진 방충망과 천장에 선연한 누수자국을 한참 바라봤다. 한 친구는 누수로 천장에 고인 물을 칼로 찢고 양동이로 받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울고싶은 기분으로 웃었다. 사진을 찍고 글을 쓰며 먹고사는 일을 생각한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무수한 삶. 모여들고 모여들 수밖에 없었던 삶들. 연대하기 위해 사는 삶이아닌 살다보니 되어버린 연대. 황예지는 가난함이 복잡하게 뒤섞인 현재에 계속 떠올리는 사진이 있다면, 이폴리트 바야르의 사진이라고 말했다. 이폴리트 바야르는 ‘알부민 글라스 온타입’의 계란 흰자를 이용한 종이 사진법을 연구하고 완성하였으나 프랑스 정부의 권유로 발표를 미뤘다. 그 사이 정부와 다게르라는 인물의 은판 사진법인 ‘다게레오 타입’이 공표됐고, 다게르는 최초의 사진이라는 온전한 명예와 권력을 차지했다. 이를 항의하기 위해 이폴리트바야르는 사진 안에서 죽은 척 하는 셀프 포트레이트를 남겼다. 황예지는 그 사진에서 이 지리멸렬한 시간을 건너갈 수 있는 단서를 얻었다. 이후 황예지는 ‘알부민 글라스 온 타입’을 암실에서 재현한다. 자신이 선택했던 아지랑이 같은 풍경과 사물들 모습에 바야르가 남긴 기술을 덧입히고 있다.
아직 더위가 가시지 않은 2023년 여름 끝자락, 황예지와 함께 바지런히 사람들을 만났다. 나란히 책상 앞에서 기다리고 있노라면 어딘가 소강된 눈의 사람들이 내 앞에 앉았다. 어떤 불씨가 완전히 꺼지지 않도록 붙잡는 마음들을 생각했다. 지치고, 심란하고, 무력하다고 말하는사람들이 준비하는 내일을 상상했다. 미칠 수 있는 기회를 아이와 맞바꾼 사람, 참사 이후 그것은 외딴 죽음이 아니라며 도로에 드러눕고 싶다던 사람, 불타는 세상에 한 컵의 물이라도쏟아 부어야만 하겠다는 사람,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기 위해 체육관 바닥에 누워 밝은 빛의잔열을 견디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미처 잊고있던 와중에도.
용광로처럼 타오르던 전투의 불길은 사그라들고 도착했던 사람들이 떠나갈 무렵의 현장에는황예지가 도착한다. 다들 갈 때 가지않고, 한 발 늦게 폭력의 현장을 찾는 마음은 무엇일까? 상황은 저물지만 사회가 남긴 도덕적 상처는 아물지 않는다. 아물지 않는 상처를 목격하는 일에 대해 말할 시간이다. 지친 사람들이 상처를 어떻게 꿰매고 있는지, 어쩌면 꿰매지고 있긴한 것인지 응시하기 위해서. 이미 자리를 뜬 사람들은 볼 수 없는 광경이 포착되고 있다.
그렇게 황예지는 오물을 파헤친다. 황예지와 함께 읽은 『빈곤 과정』에서 저자는 인류학자메리 더글라스의 말을 인용한다. “오물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체계가 존재한다” 우리는 오물매만지기-파헤치기를 금기시한다. 찐득하게 더럽혀진 내부로 걸어들어가는 일을 주저한다. 그러나 바로 그곳이 황예지가 머무는 지점이다. 사진을 체제의 반영인 형틀로써가 아닌 인간존재자가 경험하는 깊은 슬픔을 더듬게하는 팔과 손으로 둔갑시킨다. 그 손으로 오물을 더듬대며 저항이 있었음을, 그곳에 있었음을 감각한다.
기획 / 글: 정어진
참여 작가: 황예지
출처: 안팎스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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