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2014년 10월 14일 ~ 2014년 10월 26일
영화를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는 프레임이다. 이 프레임들이 모여 쇼트가 되고 시퀀스가 되며 의미가 만들어진다. 이 사각형의 의미단위들은 하얗고 평평한 스크린에 투영되어 상영된다. 대개는 ‘스크린-관객-영사기’가 일렬로 배치되는 형태이다. 극장에서 관객들은 – 정도의 차가 있겠지만 - 푹신한 의자에 앉아 다 함께 일제히 스크린으로 시선을 보낸다. 스크린이라는 단어는 ‘보호’와 ‘분할’을 의미하는 어원을 갖고 있는데, 극장에서 관객들에게 제공된 물리적인 환경은 그들이 상상적으로 자신의 신체와 분리되어, 오직 시청각적인 감각들로 스크린 위의 세계와 만나기를 권한다. 스크린은 외부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 자체로 완벽하고 견고하며, 마치 차단된 공간의 벽에 나 있는 하나의 창과도 같다. 이 창을 통해서 관객들은 나와 상관없는, 그 자체로 존재하는 세상을 엿보며 가상의 삶을/시간을 경험하게 된다.
한편,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영상은 필름이라는 물리적 매체를 급속히 이탈하였으며 좀 더 다채로운 신체를 갖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는 영화를 갖게 된 것이다. 단 하나의 스크린이라는 절대적인 약속은 오랜 시간에 걸쳐 비디오 아트, 설치, 퍼포먼스 등의 인접 예술과 만나면서 좀 더 부드러워졌다. 앞서 스크린은 보호와 분할의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애초에 스크린이 반투명의 막이었다는 사실이다. 그 막은 숨기고 보호하는 동시에 세계를 향해 열려있고 반영한다. 스크린은 고정적이고 안정적이지만, 동시에 유동적이고 신축성이 있다. 스크린은 이미지의 세계와 관객들을 분리하기도, 연결하기도 한다. 그것은 닫히기도, 열리기도 하는 가변적인 문이자 광장이다. 따라서 스크린에 겹쳐지는 프레임은 ‘스크린-관객-영사기’라는 고정된 환경만이 아니라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형태에 반영될 수 있다. 부드러운 스크린은 접힐 수 있고, 휘어질 수 있으며, 필요에 따라 찢어질 수도, 겹쳐질 수도 있고, 반사할 수 있는 모든 것으로도 변할 수 있다. 심지어 그것은 스크린이 아닌 형태로, 경험하는 이들을 향해 어떠한 무형의 이미지를 던질 수도 있다. 이 전시에서 우리가 스크린이라 부르는 것은 고전적인 방식으로 벽에 붙어 있을 수 있지만 공간과 공간 사이에 존재할 수도 있다. 바닥에 있거나 천장에 있을 수도 있다. 전시 공간의 안에 그리고 밖에 놓여 있을 수도 있다.
전시를 준비하면서 우리는 작가 개개인이 하나의 은유로서의 ‘장치’가 되어 전시공간의 스크린을 밝히고 있다는 지점에 공감하였다. 부드러운 스크린에서 시도되는 방식들이 완전히 새로운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우리는 각자의 스크린이 관객과 만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이미 촬영된/만들어진/완성된 이미지를 넘어, 특정한 시공간 속에서 유일한 것이 되기를 바란다. 전시의 방문자들은 전시 공간에 개별적으로 존재하면서도, 서로가 서로에게 관여하는 중인 ‘스크린’들의 몽타주 사이를 걷게 될 것이며, 우리가 느슨하게 배치한 장치들을 경험하고 각자의 스크린에 비추어 새로이 그 프레임들을 구성하며, 원형 공간 안의 산책자-편집자가 되기를 바란다. / 전하영
출처 :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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