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산문화회관
2016년 7월 1일 ~ 2016년 8월 21일
하얀방 White Void Room, 혼합재료, 5.9×6.2×4.5m, 2016
봉산문화회관의 기획, 「2016유리상자-아트스타」전시공모선정 작가展은 동시대 예술의 낯선 태도에 주목합니다. 올해 전시공모의 주제이기도 한 ‘헬로우! 1974'는 우리시대 예술가들의 실험정신과 열정에 대한 기억과 공감을 비롯하여 ‘도시’와 ‘공공성’을 주목하는 예술가의 태도 혹은 역할들을 지지하면서, 가치 있는 동시대 예술의 ‘스타성’을 지원하려는 의미입니다.
4면이 유리 벽면으로 구성되어 내부를 들여다보는 관람방식과 도심 속에 위치해있는 장소 특성으로 잘 알려진 아트스페이스「유리상자」는 어느 시간이나 전시를 관람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시민의 예술 향유 기회를 넓히는 데 기여하고, 열정적이고 창의적인 예술가들에게는 특별한 창작지원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공공예술지원센터로서 더 나은 역할을 수행하기 위하여 전국공모에 의해 선정된 참신하고 역량 있는 작가들의 작품 전시를 지속적으로 소개하고자 합니다.
2016년 유리상자 세 번째 전시인, 전시공모 선정작 「2016유리상자-아트스타」Ver.3展은 회화를 전공한 김윤경(1977년생)과 박보정(1979년생) 두 사람의 공동 설치작업 ‘하얀방 White Void Room’입니다. 이 전시는 작가 자신들이 경험한 공허空虛와 충만充滿의 기억 혹은 현실의 허무虛無와 신성神聖의 염원念願 사이를 오가는 어느 지점을 시각화하여, 우리 삶에서의 망설임과 불안不安의 상태를 예지叡智적으로 해석하고, 구체화한 다시보기입니다. 또한 지금, 여기의 상태狀態가 가능하도록 오랜 시간동안 지속해온 두 미술가의 지향적 신체행위가 관객과 만나 충만의 기억을 공유하려는 시․공간적 장면場面의 상상想像입니다.
이번 전시는 언어로 설명하기 어려운 작가의 지향을 시각화하는 지속적인 미술 설계의 어느 시점을 사방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유리상자 공간에 담아내려는 두 작가의 제안으로부터 시작됩니다. 평화로운 표정의 선승禪僧을 닮은 두상을 그려온 박보정의 회화와 무한히 가득한 빛을 배경으로 하얀 오브제 정물을 그리는 김윤경의 회화에서부터 출발하여 서로 협력하고, 여기 유리상자에서 6×6×5m크기로 확장擴張되는 작가의 설계는 시간과 공간을 잇는 연속적인 미술 행위로서 인간 삶의 굴곡과 변화에 대응하는 우리의 태도를 닮았습니다. 2년에 걸쳐 인연이 닿은 사물들을 수집하여 흰색 물감으로 칠하는 행위, 각각의 표정이 다른 4,000개의 작고 하얀 두상을 손으로 소조塑造하는 행위, 하얀 바닥이 있는 3차원 공간의 중앙에 흰색 그림을 그리듯 식탁을 놓고 그 위에 장식장을 쌓아 주변에 작고 다양한 오브제를 배치하는 행위, 이러한 ‘신체행위’는 생의 현실에서 경험했던 불안의 시간을 잊고 전혀 다른 충만의 기억으로 지향하려는 몰입 장치이며, 즉흥과 직관 그리고 반복과 지속을 더하여 흰색의 사물이 포개지고 나열되어 비운 듯 채워진 ‘하얀방’이라는 입체 정물화를 남깁니다.
16, 17세기 유럽의 바니타스Vanitas 화풍을 닮은 사물의 배치는 흰 색상으로 인해 공허해 보이는데, 뻐꾸기 시계, 3단 장식장, 식탁, 오래된 의자, 촛대, 그릇 등은 사용이 끝나 원래의 효용이 폐기된 사물들이고, 장식용으로 만든 다양한 조각상과 모조 석고상, 과일, 꽃, 보석, 해골 등은 원본을 흉내 낸 복제 사물이며, 빈 술병, 소라껍질, 새장, 깃털, 거울 등은 실체가 사라진 껍질 상태의 사물들입니다. 주변의 풍경과 관객의 등장에 상대적으로 더욱 공허해 보이는 이 공간의 바닥에는 마음을 담아 간절히 생각하고 기원하는 염원의 상징으로 해석할 수 있는 인물두상이 넓게 배열되어 있습니다. 유리상자에 채워진 흰색 사물들은 오히려 아무것도 없이 공허한 부재와 결핍의 공간을 강조하며, 동시에 빛으로 충만한 하얀방을 기억하기를 제안합니다. 이는 살아있음을 증거 하는 ‘지금, 여기’의 ‘공허’와 ‘충만’, 그 사이에서 충만을 기억하려는 ‘염원’의 스펙트럼, 또 지움과 비움이 곧 빛의 충만을 호출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질문입니다. 또한 자신의 지향을 실천하는 ‘신체행위’ 과정에서 스스로와의 만남, 동료 미술가와의 유대와 공감, 나눔의 경험들과 함께 세상과의 ‘소통’을 가능하게 합니다.
대략 7미터 높이의 천장과 흰색 바닥이 있는 유리상자 공간을 채운 듯 비운 하얀 방, 작가는 이를 두고 세상의 모든 빛이 모이는 곳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는 회화繪畵에서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듯, 기물 표면을 하얗게 칠하고 두상을 손으로 하나하나 만들고 그 결과물을 정연하게 설치하여 이곳 공간에 빛 그리기를 행한 것입니다. 이 그림은 인간 삶의 정서적 굴곡과 변화, 성장의 매개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작가는 자신에게 몰입하고 자신을 알아가기 위하여 이 그림을 행하는 듯합니다. 그래서 이번 전시에서 이 그림은 기억과 수집, 지우기와 만들기, 반복 등 또 다른 상상에서 기인하는 신체행위이며, 그에 관한 기록일 것입니다. 눈앞에 펼쳐진 ‘하얀방 White Void Room’는 자신의 허무와 환희를 비롯한 세계의 공허와 충만을 참조하는 회화이며, 그 기억을 따르는 신체행위를 반복하는 작가의 심리적 환상이고, 인간 삶의 과정에 관한 정서적 균형의 제안입니다. 충만의 경험을 기억하며 현재의 균형을 회복하려는 이번 유리상자는 미적 신념을 소통하려는 소박한 삶의 가치를 떠올리게 합니다. / 봉산문화회관 큐레이터 정종구
작가노트
우리(김윤경, 박보정)가 ‘하얀방’을 함께 만들자고 계획한 것은 그것이 비단 우리 두 사람만의 고유한 특징이어서 그런 것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하얀 색에 이끌린 이유는 어쩌면 지금껏 미술의 역사가 지속되어 오면서 많은 예술가들이 그러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만의 색채로 ‘죽음’에 대해, ‘저 너머의 세계’에 대해 상상하면서 하얀색을 결부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작가 박보정의 작품 속에 나타나는 하얀 사람들의 흉상은 얼핏 보면 석고상 같기도 하지만 표정이나 생김새에서 승려나 부처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데, 이는 아마도 작품 속에서 드러나는 그녀의 불교적 믿음과 한국전통사상인 샤머니즘적 요소 등을 보여주는 요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너무도 소박하고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는 그녀의 작고 하얀 조소 작품들은 비슷하면서도 서로 너무도 다른 우리 개개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반쯤 감은 눈, 평화로운 미소로 우리 한국인의 전형적인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한국화에서 중요한 요소인 ‘여백’이라는 것을 그림을 그리며 동시에 지우는 등 자신만의 색깔로 실험을 해 온 그녀의 작품 속에서 우리는 부정할 수 없는 동양 사상의 흔적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동, 서양을 막론하고 하얀색이 갖는 어떤 숭고한 느낌은 보편적인 근거를 획득하리라 생각된다. 나의 회화 및 설치 작품들 역시 ‘하얀방’에 관한 것이며, 무한한 빛 속에서 눈처럼 하얀 오브제들이 경계도, 어떤 중력도 없는 허공에 놓이는 상태에 관한 나만의 상상이며 동경이다. 바니타스 화가들이 인생의 덧없음을 표현하기 위해 그렸던 기물들, 즉 시간의 추이를 나타내기 위한 모래시계, 시들어가는 나뭇잎과 과일, 타들어가는 촛불, 그리고 강한 상징성을 갖는 해골 등을 하얀 설치 작품으로 재현하는 것은 삶과 죽음에 대한 그들의 진지한 사유를 공유함과 동시에 작업을 통해 영겁에 이르고자 하는 염원을 담는 것이다. 버려진 식탁, 장식장, 쓰레기 더미에서 찾아낸 갖가지 기물들을 단순함, 순수함, 그리고 성실성을 상징하는, 어쩌면 일회용품의 가벼운 느낌을 자아내기도 하는 하얀색으로 칠하면서, 우리는 결국 역사를 관통하는 어떤 정물을 만들고 있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 본다. / 김윤경

하얀방 White Void Room, 혼합재료, 5.9×6.2×4.5m, 2016

하얀방 White Void Room, 혼합재료, 5.9×6.2×4.5m, 2016

하얀방 White Void Room, 혼합재료, 5.9×6.2×4.5m, 2016
작가와 만남 : 2016. 7. 7(목) 오후 6시
시민참여 워크숍 : 2016. 8. 20(토) 오후 3시
코디네이터 : 윤현정 yhj8969@naver.com
기획 : 봉산문화회관
출처 - 봉산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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