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갤러리
2026년 6월 24일 ~ 2026년 8월 1일
두산아트센터 두산갤러리는 ‘두산인문극장 2026: 신분류학’의 기획전 《3개국어》를 2026년 6월 24일(수)부터 8월 1일(토)까지 개최한다. 두산아트센터 연례 프로그램인 두산인문극장은 과학적, 인문학적, 예술적 상상력이 만나는 자리로 다양한 관점에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며 함께 고민하는 프로그램이다. 2026년에는 ‘신분류학 New Taxonomy’를 주제로 공연 3편, 전시 1편, 강연 8회를 진행한다.
《3개국어》는 국적, 성별, 언어, 연령 등 인간을 규정해 온 기존의 이분법적·고정적 분류 체계에 질문을 던지며, 복합적이고 가변적인 존재를 향한 모호하면서도 명징한 이해를 시도한다. 전시 제목이자 단초가 된 ‘3개국어’는 한국 근현대사의 격변기를 관통하며 살아온 한 개인의 삶에서 비롯되었다. 1930년 북한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를 거쳐 한국전쟁 시기 남한으로 피난하고, 이후 미국으로 이주했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생의 마지막 단계에서 인지적 변화를 겪으며 일본어, 영어, 한국어를 혼용하여 발화하기 시작했다. 전시는 이처럼 한 인간의 내면에 축적된 다층적인 시간과 기억, 그리고 그와 관계 맺은 타자들을 경유하며 새롭게 구성되는 유동적 초상을 탐구한다. 참여 작가 김익현, 임영주, 정서영, 조은영은 빗겨보기, 오해하기, 추상화하기, 동시 발화, 중첩과 은폐 등 각자의 시각적 언어를 통해 고정된 분류 방식에서 벗어난 대안적 이해를 제안한다.
조은영은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언어의 생산 및 이동, 어긋남을 몸으로 마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파편화된 언어를 조형적으로 다루는 작업을 전개해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개별 시퀀스가 모여 하나의 전체를 이루는 오디오 비네트 형식의 작업 〈I Ordered a New Body and It Never Came〉(2026)을 선보인다. 다섯 점으로 구성한 본 작품 속 문장들은 여러 번의 번역과 재작성을 거쳐 타인의 몸을 통과해 변형된 발화다. 한국인 할머니와 미국인 할머니의 대화는 한글과 영어를 오가며 번역되고 낭독되는 과정에서 원본을 잃어간다. 다른 세대와 언어, 인종, 역사적 배경을 지닌 두 여성의 기억은 사람과 언어 사이를 건너며 마모되고 어긋나는 동시에 뜻밖의 리듬을 얻는다. 화자와 기억의 경계가 흐려진 지점에서 여러 시간은 동시에 공존하며, 언어는 그 불완전한 틈을 매개한다.
임영주는 사회의 미신과 신념, 종교적 믿음의 형성 과정을 추적하며, 기술적 욕망과 불합리한 믿음의 경계, 개인과 집단의 기억 등을 탐구해왔다. 신작 영상 〈가쿠메이 鶴鳴〉(2026)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유산이 세대를 거치며 전승되고 변형되는 과정을 작가의 고백적 서사를 통해 살펴본다. 작가는 기억 속 할머니의 학 울음 흉내와 암호 같은 일본어, 학춤을 추는 어머니의 몸짓을 교차시키며, 한 가족 안에 남겨진 무속의 잔여, 전승, 거부와 동경이 뒤엉킨 감각을 소환한다. 기록과 흉내, 전통과 잔여의 경계는 느슨하게 멀어지면서도 이어지며, 뜻을 잃고도 끝내 사라지지 않는 몸짓과 감각이 세대를 건너 지속되는 방식을 보여준다.
김익현은 사진과 이미지 데이터를 매개로 역사적 사건과 장소, 기술적 시각 체계가 교차하는 층위를 탐색해왔다. 전시장 외부 윈도우 갤러리에 설치하는 신작 〈어느 청동기〉(2026)는 재현이 전체의 회복이 아닌 부분의 축적일 뿐임을 환기한다. 작가는 우리가 역사와 인물을 기억하는 방식에 존재하는 누락과 상상을 짚어내며, 그 시선을 식민지 조선과 전후 한국의 동상 건립 문화로 확장한다. 외부의 조건에 따라 끊임없이 파괴되고 이동하는 동상을 담은 그의 사진은 인간을 둘러싼 분류와 기념의 체계가 결코 완전하거나 중립적이지 않음을 드러내고, 시대를 통과해 도착한 진실이 여러 번 재해석되고 옮겨진 흔적임을 보여준다.
정서영은 사물에 대한 자유롭고 시적인 사유를 바탕으로 낯선 조합 속에서 사물이 조각이 되는 비범한 순간을 선보여왔다. 전시장 중앙에 놓은 조각 〈떠돌이〉(2022)는 시멘트로 수습하듯 덧발라진 덩어리로 무엇이든 되고 무엇도 아닌 잠정적인 응결 상태를 보여준다. 그 수수께끼 같은 외형에 담긴 유동적 상태는 우리 각자가 서로 다른 층위의 시간과 관계들로 구성되는 변화무쌍하고 총체적인 존재임을 환기한다. 한편 사운드 작업인 〈무제—트랙2〉(2012/2026)에서 한 인물은 주택가와 대로를 걸으며 눈에 보이는 것을 즉흥적으로 묘사하는데,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침묵, 생략, 기억의 간섭은 익숙한 일상을 낯설게 만든다. 시각이 언어로 번역되며 발생하는 어긋남의 틈 사이, 사운드와 언어 사이의 역동은 하나의 조각적 사건이 된다. 이러한 어긋남은 규정의 실패가 아니라 다른 읽기와 대안적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틈을 마련한다.
참여작가: 김익현, 임영주, 정서영, 조은영
출처: 두산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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