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로탕 삼청
2017년 8월 30일 ~ 2017년 10월 21일
Leu, 2015. Acrylic and resin on canvas. 160 × 140 cm / 63 × 55 1/8 in © Bernard Frize / ADAGP, Paris 2017. Courtesy Perrotin
갤러리 페로탕은 최근작과 함께 한국에 돌아온 베르나르 프리츠의 개인전을 개최한다.
화가, 또는 페넬로페 같은 예술: 베르나르 프리츠의 최근작에 대해
탁월한 그림은 넓고 다양하게 감상자들을 불러 모으는 동시에 작품에 대한 깊고 진지한 사유와 해석을 촉발한다. 즉 한편으로 그림의 시각적 효과가 광범위하고 그 수준이 뛰어난 그림에는 각자의 미적 취향이나 예술적 입장과 상관없이 많은 감상자들이 작품에 즉각적이고 본능적으로 이끌린다. 다른 한편, 그런 뛰어난 흡인력을 가진 그림들은 감상자로 하여금 지적 탐구가 가능하도록 사유의 열린 공간을 제공한다. 단지 가시적 매력만이 아니라 내적 성찰의 힘이 작품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미술과 인문학의 융합을 지향하고, 둘의 상호작용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이유도 거기 있다.
베르나르 프리츠의 최근 회화는 이제까지 이 화가가 성취해온 시각예술의 아름다움이 여전히 매우 안정적이고 대가적인 풍모로 지속되고 있음을 실감시켜 준다. 사각형 캔버스의 화면은 이전 어느 시기 그림보다도 완결된 조형 미학을 구현한다. 이를테면 무르익은 색채, 깊은 톤, 정교하게 수직과 수평을 교직하는 붓의 운동, 엄격하면서도 리드미컬한 물감의 터치가 마치 하나의 완벽한 소우주를 구현하듯이 서로의 요소로 작용하면서 최고의 평면을 펼쳐 보이는 것이다. 특히 작가가 2016년 경 집중적으로 작업한 <불 과/또는 끈 Feux et Lacs> 시리즈에서 우리는 그 같은 미학적 성과를 경험할 수 있다. 이로부터 유추하자면, 프리츠의 최근작은 북쪽 지방의 빛처럼 다소 어둠이 스며든 무지갯빛 색채와 색조, 수직성의 상징으로서 폭포와 수평선을 연상시키는 대양의 이미지를 조형 요소로 채택해 그림들을 창작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와 동시에 앞서 분석한 조형적 특성들을 증폭시킴으로써 감상자를 정서적으로 자극하는 힘과 지적 사유로 이끄는 동력을 한 차원 높인 그림들이다. 우리는 기술적으로 완벽함에 이른 장치들이 오히려 가장 자연적이고 인간 친화적일 수 있음을 안다. 그처럼 프리츠의 최근 회화는 이제까지처럼 화가의 주관성을 통제하는 기계적 제작 규칙을 견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유연하고 풍부한 울림으로 감상자의 내면에 스며들고 형이상학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자극을 선사한다. 가령 그의 그림들과 더불어 우리는 고대 신화의 인문학적 의미를 새롭게 분석할 수도 있는 일이다.
수직과 수평이 그리드 형태로 직교하는 프리츠의 최근 그림들로부터 가장 멋지게, 또한 가장 수사학적으로 타당하게 떠오르는 고대 그리스 신화가 한 편 있다. 호머의 서사시 『오디세이아』 편에 등장하는 페넬로페 이야기가 그것이다. 대중에게 잘 알려진 내용을 반복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여기서는 그 주인공, 즉 오디세우스의 아름다운 아내 페넬로페가 밤새도록 베를 짰다가 다시 푸는 방식의, 영원히 완성되지 않는 직물 작업으로 자신의 정체성과 순결을 지키고 마침내 영광을 누렸다는 대목만 환기하자.
씨실과 날실, 또는 수직과 수평을 교직하며 짜나가는 베틀 작업이 문득 프리츠의 그리기와 연결되지 않는가. 단지 물리적으로만 비슷한 것이 아니다. 인문학적으로 해석하면 둘의 의미가 더 상징적이다. 페넬로페의 수없이 반복된 직조 과정과 프리츠의 캔버스 위 물감 층 쌓기 과정은 결코 경제적 효용성이나 목적 지향적 결과에 만족하지 않는다. 반대로 우리는 그 행위가 스스로의 본질, 가장 순수하고 고유한 것을 지키기 위한 무위의 창작에 가깝다고 말해야 한다. 그림을 그린 화가는 결코 창작 과정에서 작품의 주인, 주체, 나르시시스트로 나서지 않는다. 대신 미적인 것을 지키는 보이지 않는 실천자 자리에 머문다. 나아가 인간적으로 아름답고 자연적으로 좋은 예술적 가치들이 보다 널리 공유될 수 있도록 하는 매개자의 위치에서 지치지 않고 일 한다. 베르나르 프리츠가 자신의 최근 회화를 통해 우리 감상자를 황홀하게 도취시키는 것은 물론, 진지한 통찰과 자유로운 사유로 이끄는 힘의 배경이 이와 같다.
Dr. 강수미
2017년 7월
강수미는 미학자. 미술평론가. 동덕여자대학교 서양미술이론 교수이며 『까다로운 대상– 2000년 이후 한국 현대미술 Ticklish Object – Korean Contemporary Art Since 2000』, 『비평의 이미지 The Art of Criticism』, 『아이스테시스: 발터 벤야민과 사유하는 미학 Aisthesis: Thinking with Walter Benjamin’s Aesthetics. 』의 저자이다.
출처 : 갤러리페로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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