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공간
2021년 11월 8일 ~ 2021년 11월 21일
핸드 투 핸드
《콘택트》 전이 열리는 남공간은 본래 회화 매체를 주로 다루며 작업을 지속하는 동료작가 김민성, 정지윤, 김지윤, 진종환이 함께 사용하는 작업공간이다. 그렇기에 지금과 같이 ‘일시적’ 상태의 전시장으로 존재할 때에 비로소 ‘남공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는 이곳은 ‘대개는’ 작업실이지만 ‘종종’ 전시장이 되곤 하는 두 개의 정체성을 가진 공간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사실 이렇게 작가들이 작업실을 개방해 사람들을 초대해 작업을 보여주는 것은 사실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는 행위이기도 하다. 또한 이들 4인이 ‘회화’라는 공통의 매체를 다루고 있음에도, 작업이라는 것은 각자의 입장과 고민, 관심사에 따라 첨예하게 나뉘는 것이기에 당연하게도 이들의 작업을 하나의 결로 묶을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전시로 묶여, 하나의 공간에서 열리는 《콘택트》 전이 갖는 의미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먼저 각각의 작업을 살펴보자. 먼저 김민성 작가의 작업은 “내가 현재 보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부터 출발한다. 오늘날 우리는 가상공간을 현실의 연장이자 삶의 일부로서 인식하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재계와 가상계 사이의 어긋남은 언제나 발생한다. 김민성은 이러한 어긋남에 집중한다. 구체적으로 9개의 조각으로 나누어진 하나의 작업 <데스크톱 1>을 살펴보자. 그에게 캔버스란 데스크톱에서 무한으로 띄울 수 있는 브라우저와 같다. 그렇기에 현재 9개의 조각으로 나뉘어져 있는 이 화면들은 언제든 하나로 줄어들 수도 있고, 반대로 수없이 많아질 수도 있는 성질의 것으로서 이해할 수 있겠다. 김민성은 캔버스를 환영의 창으로 바라본 르네상스적 입장은 물론이고 절대적 공간으로 상정했던 모더니즘적 특성으로부터도 벗어난다. 그저 2차원의 평면을 2차원으로 옮기는 행위이기에 시작과 끝 모두 에어브러쉬를 사용해 매끈한 인터페이스의 미감을 고스란히 재현하는 데에 집중한다. 그러나 그는 여기에서 작업을 마무리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간다. 그의 작업에는 작품은 현장성, 그러니까 전시장에 어떻게 설치되느냐가 중요한 요소로 개입한다. 9개의 판으로 나뉘어져 그려진 그림은 오롯이 벽에 걸리는 것이 아닌 높이와 위치를 달리해 레이어를 형성하며 보는 이로 하여금 반드시 몸의 움직임을 수반해 관람하길 유도한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실제계로 튀어나온 이 작품들을 바라보는 데에 원근법이 유효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김민성의 작업은 가까이 있는 것은 작게 보이고 멀리 있는 것은 크게 보이는 인지 부조화의 상황 속에서 2차원 평면과 3차원 실재의 경계를 교란시키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실재계와 가상계를 이어보려는 회화적 시도로서 이해할 수 있겠다.
한편 정지윤 작가의 관심사는 보다 전통적 범주에서의 회화를 향한다. 정지윤은 웹에서 찾은 파운드 이미지를 차용하여 그림으로 옮긴다. 여기서 주목해보아야 할 점은 그에게 중요한 것은 사진이 지시하는 내용보다는 그것의 조형성이라는 점이다. ‘사진으로 기록하고 싶은 순간’이란 어떤 이유에서든 그 순간을 붙잡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될 것이다. 그러나 정지윤은 사진이 담고 있는 감정, 서사 그리고 기억 등의 요소에는 관심이 없다. 그저 사진을 구성하고 있는 대상의 포즈, 표정, 그리고 상태만이 관심일 뿐. 그렇기에 그가 직접 찍은 사진이 아닌 익명의 파운드 이미지를 그림의 재료로 삼는 것은 당연한 선택이 되겠다. 작가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이를 극대화시키는 방법론으로서 모노톤을 사용한다. 다시 말하면 원본이 가지고 있던 색을 날려버리고 단색을 이용하여 화면을 재구성하는 것인데, 색이 배제되는 과정은 자연스럽게 원본이 왜곡되어 해석될 수 있는 ‘가능성의 상황’으로 화면을 밀어내는 역할을 한다. 이는 화면이 함의하는 서사란 작가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며 하나의 그림을 보고도 다양한 감상과 해석이 가능함을 긍정하는 작가의 태도와 닮아있는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두 피스로 나뉘어 그려진 회화 <Swim without a destination> 또한 이러한 맥락으로 살펴볼 수 있겠는데, 오른쪽 그림을 먼저 본 관객이라면 이것이 호수임을 쉽게 알 수 있겠지만, 왼쪽 그림만 따로 떼어놓고 본다면 이것은 보는 이에 따라서 물인 동시에 그저 추상성의 붓질일 수도, 혹은 하늘의 풍경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편 정지윤 작가의 작업은 물감을 흩뿌리는 드리핑 기법을 통해 마무리되는데, 이 작업의 마지막 제스쳐를 통해 가미된 추상성은 다시 한번 그의 작업이 표상하는 바가 ‘이미지의 재현’이 아닌, 붓질이자 회화 그 자체임을 상기시키길 시도한다. 그렇게 정지윤의 작업은 회화가 가질 수 있는 고유한 특정성을 가져가는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습적 해석으로부터 벗어나 읽어낼 수 있는 가능성의 자리를 살펴 나간다.
반면 김지윤 작가는 핸드폰 카메라로 직접 찍은 사진들을 재료 삼아 이를 캔버스에 옮긴다. 이는 일차적으로는 사진을 매개로 당시에 작가가 느꼈던 기억과 감정을 다시 붙잡고 지금으로 끌어오려는 시도로 이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김지윤의 그림은 실제로 본 풍경을 기반으로 그리는 그림임에도 그것을 그대로 재현한다기보다는 디지털 디바이스의 스크린을 통해 재인식하는 과정을 거쳐 화면으로 옮겨진다. 이때 말하는 재인식이란 스크린을 ‘통해’ 비치는 이미지의 모습은 물론이고 그것을 통함으로써 가할 수 있는 변주의 가능성을 전제한다. 이를테면 스크린이 예시하는 매끄러움과 픽셀 단위의 촘촘함, 스크린을 손가락으로 문질러 대상을 줌인, 줌아웃 할 수 있는 유동성까지도 떠올릴 수 있겠다. 이러한 디지털 디바이스를 매개하며 가능해지는 시각 조건은 사진 속 원본의 맥락을 흐려지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데, 이는 망각을 전제로 하는 기억의 본질과 맞물리며 대상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김지윤의 그림 속 상황과 조우한다. 이것은 풍경일까? 아니면 풍경을 찍은 스크린일까? 풍경과 스크린 그리고 기억을 경유해 캔버스에 종착하는 일련의 프로세스 안에서 작가는 원본 속 풍경을 마주했던 시간의 감정을 되새김질하는 동시에 비쳐지는 지지체에 따라 대상의 성질이 달리 보이는 상황 사이의 간극을 고스란히 캔버스에 담는다. 그렇기에 이것은 풍경이면서 동시에 스크린이 맞다. 경계의 불분명함 속에서 김지윤은 실견과 디지털 투사, 그리고 언제나 회화에 달라붙는 기억과 서사의 맥락을 오고가며 위치를 조정해 나아가는 회화적 실험을 지속한다.
진종환 작가는 회화 매체를 통해 시각 외의 감각을 시각 범위 안으로 끌어들이기를 시도한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업은 계절이 변화하며 작가가 몸으로 느낀 변화, 이를테면 수풀의 습도, 온도, 냄새 등을 추상적 제스처로 치환한 그림이다. 특정 순간을 떠올리며/떠오르게 하는 ‘감각’ 그 자체를 캔버스에 담아내는 것에 집중하는 그의 화면은 신체의 율동감, 리듬감과 같은 비가시적 존재를 가시적인 상태로 돌려놓는 움직임이다. 특히 높이 2.3미터의 대작 <Sound: Summer Forest>는 신체가 감각할 수 있는 스케일의 범위를 벗어나는 그림으로, 외려 그림이라기보다는 공간의 일부에 가깝게 느껴진다. 보는 이에 따라서 벽 너머 진종환이 구축해 놓은 ‘감각의 풍경’은 오래된 회화의 역사와 궤를 함께하는 작업으로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여기에 개입하는 현장성의 문제로 생각을 확장시켜보면 조금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 그림을 한눈에 보기 위해 전제되어야 하는 어느 정도의 ‘거리감’은 그것이 확보되는 순간 가장 먼저 이 작업이 벽에 안정적으로 걸리지 않고 비스듬히 걸린 상황, 일종의 불안정한 상태를 자처하였음을 알게 한다. 이는 전체적으로 화면을 구성하는 붓질의 방향성과 같은 곳을 향함으로써 다시 한번 계절이 변화함에 따라 작가가 느꼈던 불안정한 감정을 드러내는 장치로 작용한다. 반면 그림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눈을 가득 메우는 붓질 부스러미는 회화 매체가 가질 수 있는 매체 특정적 요소들, 그러니까 붓질의 속도, 양감과 질감을 내포한 성질의 것으로써 진종환의 회화를 다시 한번 전통적 회화의 범위 안에 돌려놓는 트리거가 된다. 이렇게 진종환은 그림의 오래된 역사의 여정 안에 있는 듯 보이면서도 시시각각 변화하는 외부의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시각을 제시함으로써 회화가 함의하는 의미망을 확장시키며 오늘날의 환경 속에서 그림을 직접 대면할 수밖에 없는 당위성을 제시한다.
어느 날 이들의 요청으로 전시를 준비하는 일련의 과정을 관찰하게 된 나는 이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작업실을 ‘남공간’이라 호명하고, 내부를 전시장의 모양새로 정돈하고, 또 관찰자이자 외부인을 초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며, 본인의 작업은 물론이고 근거리에서 바라보아온 옆자리 동료의 작업까지 ‘다시 보기’의 돋보기를 들이미는 이들의 움직임을 스스로를 거리 두고 바라보길 시도하는 자생적 행위로서 이해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발견한 이들이 공유하고 있는 하나의 공통적 태도는 오늘날 온라인으로 많은 것이 대체되고 있는 환경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회화’ 매체를 대면하지 않고도 유효할 수 있는 성질로는 대체 불가능한 어떤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오늘날 일상 시각 환경의 변혁 속에서 회화라는 전통적인 매체의 범위 역시 자연스럽게 변화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 변화라는 것은 의미의 갱신이기도, 확장이기도 혹은 과거를 돌아보며 현재를 이해함으로써 미래를 여는 변증법적 투사에서 비롯되는 의미의 재창출일 수도 있겠다. 그 과정의 방법을 선택하는 것은 작가들의 몫이겠지만, 분명한 것은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랫동안 회화라는 매체가 지속되어온 힘은 이미지의 오랜 역사 그리고 그것을 기록하려는 인간의 습성과 맞물려 오늘날에 이르른 것이기에 앞으로도 그것은 어떠한 형태로든 존재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일시적 전시공간이자 상시적 작업실인 이곳 남공간에서 열리는 전시 《콘택트》는 각자의 작업을 펼치고 이들이 회화를 앞에 두고 지속하는 고민을 솔직하게 꺼내놓는 자리이다. 그리고 이는 내부적으로는 자아 비평적 성격을 띄고 있는 동시에 외부적으로는 작업 공간의 임시 변모를 꾀함으로써 사람을 불러모으고 작업과 직접 대면하길 제안하려는 시도로서 그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참여작가: 김민성, 김지윤, 진종환, 정지윤
글: 신지현
전시 기획자. 현재 하이트컬렉션에서 근무하며 WESS 공동운영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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