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퍼센트
2020년 4월 18일 ~ 2020년 5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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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유령사과§스테인드글라스@스티치그룹》은 좁혀지지 않는 의견과 방사형으로 뻗는 관심사, 산재하는 목소리, 집중되지 않는 시간을 노출한다. 전시에서는 그동안 나온 이야기들을 다듬는 대신 그대로 엮어낸다. 전시의 제목 “from유령사과§스테인드글라스@스티치그룹”은 각자가 내놓은 단어들이다. from을 붙이고, §로 유령사과와 스테인드글라스를 연결했으며, @으로 이메일주소를 만들었다. 이 제시한 단어들은 우발적인 심상으로 그 순간 쓰여진 것이라기보다 오래된 상태 메시지 같은 것이었다.
장식적인 고리와 같은 부호는 서로에 대한 희생과 양보, 보충을 암시한다. 그리고 그동안 던져진 이질적인 내용들을 어떻게 수식할지, 어떻게 배반할지, 또 결코 겹쳐지지 않은 상태 그 사이에서 왕복한다. 전시는 연결과 장식, 수식에 그치지 않고 부단히 떠들었던 것과 관계들이 엉겨 붙고, 또 어떤 것도 제거하지 않은 그 몸체를 수용하고자 한다.
작품소개
권세정+권동현
권세정과 권동현은 권동현의 <이름없는 양식-기념비 모형> 시리즈를 개입하는 방식과 조각적 완성도와 형태를 구축하는 충실함을 토대로 이 협업을 수행한다. 이는 네거티브와 포지티브를 반복적으로 거치는 조각의 제작과정 가운데 브론즈라는 전통적이고 무게감 있는 소재와 실리콘의 가변적인 소재의 결합으로 구체화된다. 권동현이 <이름없는 양식-기념비 모형>에서 기생하는 형태의 계단을 양식적인 반복을 통해 작품 내부에서의 완결성을 취하고자했다면, 이 협업작업 <소사본동 37°28’56”, 126°47’48”> 시리즈에서는 동일하게 한 건축물에서 발견된 계단으로부터 출발하지만 기념비적인 양식화를 이루기보다 그 외적인 맥락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태도의 큰 변화를 보여준다. <소사본동N 37°28’56”, 126°47’48”>, <소사본동P 37°28’56”, 126°47’48”>는 이 방향성 전환의 물리적 생산물이다.
이러한 조각적 교차라는 수행이 일어나는 <소사본동 37°28’56”, 126°47’48”> 시리즈의 출발이 되는 ‘계단 조각’은 건물의 층과 층을 넘어가는 그 사이에 기생물처럼 달려있던 계단 부분을 본떠 만든 것이다. 팔과 다리를 절단해 인체의 미를 부각시키고자 하는 토르소처럼, 위로 향하고 아래로 향하는 건물 층의 교차점, 그 사이에 기생하는 계단 부분을 절단했다. 그것은 마치 권세정이 반려견 밤세를 투명한 소재로 제작한 <가슴에서 배> 의 토르소를 연상시킨다. ‘계단조각’은 둘의 조각적인 수행을 결합하는 매개의 기능을 한다. 또 ‘계단조각’은 브론즈라는 견고하고 불투명한 무게감과 실리콘이라는 유동적인 속성과 투명한 가벼움이 만나는 물리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이렇게 ‘계단조각’은 협업이라는 관계와 물리적인 공간의 합을 이어주는 사이의 공간이라 할 수 있다. 브론즈와 실리콘을 만들기 위한 몰드와 원형이라는 공간의 전환이 반복되는 과정은 이질적인 것들이 결합된 것으로 제시된다. 이 조각적인 수행이 도착한 지점은 이질적이고 불친절한 조각이다. <용두동N 37°34’42”>은 용두동에서 발견된 한 계단의 주변을 삭제하고 그 주변을 단단한 브론즈로 메웠다. 텅 빈 네거티브 공간은 좌대에 견고하게 세워진다.
다시 질문한다. 권동현은 완결적인 조각을 제작하던 작업에서 어떤 지점을 열어 젖혔나. 권세정은 이 과정의 전반을 탐색하고, 개입, 변형, 길을 이탈하는 역할을 하면서 조각과 물질적인 장을 벗어나 무엇을 연결시키고 있나. 이질적인 것을 수용하고 서로를 수식하는 작용은 어떤 물리적이고 (불친절한) 변형을 만들어냈나.
소민경
<라일락>은 캔버스의 화면을 이미지가 얹히고 겹치는 바탕으로 상정하고 이미지가 화면을 점유하고 확장하고자 한다. 화면에서 이미지 덩어리는 중첩되고 또 가려져 있으나 그것은 확장되는 수평과 얕은 수직으로 펼쳐져 있다. <라일락>은 이미지를 확대하고 크롭하는 장치를 통해 개별 이미지가 가진 컨텍스트를 제거한다. 액자와 사진이 있는 이미지, 팩스로 들어가는 종이, 손에 쥐어진 종이, 이미지에 달린 장식적인 태그들은 소민경이 이미지를 어떻게 다루는지 엿볼 수 있는 이미지군이다. 즉 이미지는 내러티브를 위해 구성되기보다 이미지 자체의 속성을 드러내는 다중의 프레임으로써 보여 진다. 이 회화는 이미지의 연대를 드러내지만, 그려진 이미지들은 고글이나, 모자를 씌워 정체를 숨겨 드러내지 않도록 만든다.
<Evidence Store>는 캔버스에 그린 후, 이미지를 종이로 옮겨 복제하고 회화를 다시 감싼 과정을 거친다. 창문 안 혹은 밖을 들여다보는 얼굴 이미지 위로 컵과 빵, 책 모서리, 포대기에 싸인 강아지 이미지들이 무관하게 재생된다. 한 화면 안에 여러 개의 창이 열리면서 이미지 간의 간섭과 충돌을 일으키며 이미지간의 내러티브 없는 연결이 형성된다. 원본의 회화는 숨겨지고 이미지를 옮기는 과정에서 질적으로 도태된 이미지는 디지털 네트(net)에서 이미지의 유통과 소비로 열화되는 과정을 연상시킨다. 그려진 회화, 포장된 이미지는 다중적인 중첩의 이미지들의 재생과 함께 위계 없는 이미지들의 궤도 위에 올라간다.
<롱제로 롱미로 롱배로>는 4개의 개별 캔버스 위에 그려진 이미지를 하나의 종이 포장으로 감싼다. 그리고 4개 회화 중 한 개의 회화만이 포장 종이 위에 전사되어 보여진다. 하나의 이미지를 제외하고 3개의 이미지는 포토샵에서 레이어 숨기기 기능을 적용한 것처럼 두께로는 존재하지만 누구도 볼 수 없이 숨겨진다. <라일락> 의 고글, 모자의 이미지처럼 이 작업의 스카프를 두른 사람은 정체를 숨기고 익명성을 지향한다. 이미지의 익명성을 추구하는 것은 회화매체를 포장하여 숨기는 행위와 유사하게 보인다. 회화는 자기 복제와 숨기기를 통해 원본을 배반하고 이미지가 되는 것을 택한다.
이유성
<비타-모어 노트>는 부조 드로잉으로, 들꽃, 반려견 타니, 넝쿨, 캐릭터, 도상화 된 빛 등 신체적으로 연대하는 반려의 이미지들, 그리고 현재의 지배적인 심상을 축적해나가며 이미지를 출력한 메모라 할 수 있다. 나무 위에 각인된 유약한 이미지들은 개연성이 없어 보이지만 이미지로서 한데 엉켜 등장한다. 뭉개져 형상만 확인할 수 있거나 겨우 단서 하나를 들어 올릴 수 있을 개인적인 메모 같은 것이다. 반려견은 친밀하고 거리두기가 불가능할 정도의 심리적으로 가까운 곳에 있어 추상화되는 감각이 되었다. 패널의 중간부에 위치한 메모 도상에서는 또 다른 심상의 단서를 발견하게 된다. 장식적인 폰트와 선으로 새겨진 캐릭터가 안내하는 한 문구는 신체의 매끈함과 유능함에 대해 말한다. “What if your body ... was as sleek, as sexy and felt as comfortable as your new automobile?”§) 이는 조각적 행위와 연결시켜 던져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패널을 마주하고 오랜 시간동안 화면의 저기로, 또 이곳으로 눈과 손을 오가며 상세한 상을 새기는 움직임은 상상에 가까운 문장을 보다 행위 하는 신체를 포함하는 의미로 확장시킨다. 기억과 신경증, 속도와 효율과 같이 솟아오르는 감각들은 현재에 적응하고자 할 때 더욱 선명해지는 것들이다. 언젠가 꺼내어질 것들을 임시 저장하듯이 저부조로 연결한 도상들은 작가가 기댄 공생의 존재들이다. 이 각인된 부조는 심상과 감각, 기억의 장면이 응축된 순간의 기록이면서 동시에 묵시록적인 뉘앙스를 가진다. <Un and heli>는 <비타-모어 노트>와 보완되는 위치에 있는 작업으로 속도와 효율의 감각을 추상적인 도상으로 드러내며, 이질적인 요소와 결합하고 또 묻혀 사라지는, 그러면서 새로운 감각과 상의 도출을 시도한다.
§) 트랜스 휴머니즘 운동가인 나타샤 비타-모어 Natasha Vita-More(비타-모어는 이름에 염원을 담아 Vita와 more를 결합해 개명했다)가 제시했던 인체디자인 primo+에 대한 설명문에서 발췌한 문장으로, 원문의 의도는 홍보 문구에 가깝게 읽힌다. 이 글은 과학기술이 인류의 육체와 정신을 개선하고 노화, 질병, 죽음이라는 인체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트랜스 휴머니즘의 지향점은 과학기술이나 생명공학이 직접적으로 신체를 더욱 매끈하게, 빠르게, 영원하도록 보완할 것처럼 기술하지만, 우리는 기술적 환경에 부적응과 불화를 겪는다는 것을 종종 잊는다.
작가소개
권세정+권동현
권세정은 판단보류로 밀려난 상태들, 정의내릴 수 없는 존재와 경험을 가장 가까운 관계들의 충돌과 오해, 모순의 장면으로 가시화한다. 개인전 《아그네스 부서지기 쉬운 바닥》(인사미술공간, 2019), 기획전 《비트윈 더 라인스》(합정지구, 2019), 《구부러진 안팎》(탈영역우정국, 2018), 《A Research on Feminist Art Now》(스페이스원, 2017) 등에 참여한 바 있다. 권동현은 사회화된 신체, 유기적으로 연결된 도시와 건축물 등 삶의 리얼리티에서 채집된 요소를 양식화된 조각으로 제작한다. 개인전 《Shameless》 (아트랩 반, 2018), 《가까이 서서 무심히 바로보기》 (합정지구, 2016) 등이 있으며,《1224》(공간 일리, 2019), 《비정형항해일지》(아트선재센터, 2015) 등의 기획전에 참여했다. 이번 전시에서 권세정과 권동현은 조력자를 넘어 협업자가 되고, 권동현의 작업에서 출발하여 권세정의 조각적 개입을 시도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소민경
소민경은 이미지들이 중첩되고 패턴화되거나, 수직과 수평으로 연결되는 화면을 그린다. 그리는 행위를 편집과 포장의 기술로 전개하면서 회화에 매체적 부차성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회화의 범위를 확장한다. 회화 안에서 고르고 자르고 붙인 이미지는 하나의 개체적 속성에서 벗어나 연쇄적인 패턴 혹은 서로를 보충하는 이미지가 되고, 나아가 모든 것이 이미지가 될 수 있도록 용의선상에 놓는다. ‘lol’, ‘spray’, ‘리플릿 드로잉’ 시리즈를 해 왔으며, 《스프레이~!》(연희동76-5, 2016)로 개인전을 열었고, 2020년 5월 취미가에서 개인전을 앞두고 있다. 「VIEWERs」(2018)에서는 드로잉과 글로 참여했다.
이유성
이유성은 돌변하는 이미지와 낯선 기억들 사이의 일시적인 충돌을 단단한 매체의 표면에 새겨 융합시킨다. 표면에 드러난 조각적 도상-이미지들의 연쇄는 신체와 기억에 연대했던 잔여 이미지로서 서로 당기고 밀어내는 동시에 구조를 이룬다. 작업 과정에서 마주하는 물리적 감각 ─속도, 비효율, 거리감, 저항, 스케일─은 내러티브를 이루는 주요 동력이다. 개인전《Jane》(위켄드, 2019), 《플로피 하드 컴팩트》(갤러리175, 2016)을 열었으며, 기획전으로 《스티키포에버》(킵인터치, 2017)와 오픈스튜디오《Testing》(2018)이 있다.
전시서문
from유령사과§스테인드글라스@스티치그룹
전시의 제목 《from유령사과§스테인드글라스@스티치그룹》은 각자가 내놓은 단어들을 엮어낸 것이다. from을 붙이고, §로 유령사과와 스테인드글라스를 연결했으며, @로 이메일주소를 만들었다. 코로나가 창궐하던 시기, 스카이프로 대면하면서 각자가 생각하는 단어를 몇 차례 써서 보여줬고 그걸 잘 다듬고 엮어 만든 것이다. 이렇게 제시된 단어는 우발적인 심상으로 그 순간 쓰여진 것이라기보다 오래된 상태 메시지 같은 것이었다. 그 누구도 무엇에 대해서 단어를 써내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모두는 이 전시의 상태 메시지를 이렇게 말했다.
from유령사과
텅 빈 얼음사과의 형상이 오너먼츠처럼 나무에 매달려 있다. 유령사과(Ghost apple)로 불리는 이것은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 사과 표면에 내린 비가 얼고, 그 덕에 얼음 막 안에 있는 사과가 온실효과로 따뜻해져 이내 안에서 썩고 아래로 흘러내려 사과 형태의 얼음만 남은 것이다. 과냉각 상태의 비가 물체에 닿아 투명한 얼음 막이 형성된 우빙현상§)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 급속한 날씨의 변화가 알맹이를 앗아가고 그 외투, 사과 형상의 몰드만 남겨 놓았다. 사과의 살은 얼음, 외투의 열을 견디지 못하고 녹아 없어졌다. 낮은 온도가 대기의 비를 결빙하여 얼음을 얼렸고, 투명하고 영롱하게 코팅된 사과 형상을 남겼다. 사과가 떨어져 나간 공백은 얼음이라는 코트가 그것을 대신한다. 완전히 사과일 수 없지만 그것은 사과가 아닐 수도 없다. 그래서 그것을 ‘유령’이라고 불렀다.
아, 유령사과와 유사한 외형과 구조를 갖는 것으로 ‘탕후루’가 있을게다. 설탕을 녹인 시럽에 과일을 굴리면 과일이 코팅되고 투명한 막이 그것을 감싼다. 탕후루는 액체의 설탕시럽이 고체로 굳어지면서 부드러운 생물체인 과일을 코팅한 달콤한 사탕이다. 유령사과처럼 코팅된 투명한 고체가 알맹이를 감싼다. 액상 설탕시럽은 딱딱하면서 콱 깨질법한 고체로 굳어지고 알맹이 표면에 씌워진다.
§)https://www.ytn.co.kr/_ln/0104_201902111800065275 참조.
"for 100 years old...”
미국의 워싱턴 야키마의 한 창고에서 100년 된 웨딩케이크가 발견된다. 1915년 3월 17일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결혼기념 웨딩케이크를 손주가 발견한 것이다. 발견 당시에 케이크의 속은 텅 비었지만, 겉모습은 보존 상태가 매우 좋아 케이크의 장식이 선명하게 보였다. 어느 한 노부부는 할머니가 만들어주신 웨딩케이크를 60 년간 보관해서 결혼기념일마다 먹으며 둘의 지나간 사랑을 확인한다고 했다. “뻑뻑하긴 하지만 맛있어요. 그 시절 케이크는 요즘 케이크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맛있었거든요.” 상상하지 못하는 시간을 케이크가 견딘다는 것. 그 시간과 함께 말랑하고 축축한 살과 정념은 사라지고, 건조하고 바짝 마른 뼈대와 골격이 남는다. 충만한 사랑과 기억이라는 것이 있었을 테지만, 세월이 흘러 그 영혼(spirit)은 고체 상태의 물질에 안착한다.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늘 미완성 상태에 있는 건축물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은 가우디 사망 100주년인 2026년에 완공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과연 그것이 실현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일부는 실현되지 않은 채 대성당은 변형되고 재해석되면서 현재에도 지어지고 있다. 실현되지 않은 거대한 프로젝트!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은 100여 년간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권위가 부여되는 빌딩이고, 계속 지어지고 변형된 채 사용되고 있기에 살아있는 빌딩이자 완벽히 파악 불가능한 빌딩이며, 도면의 원형이 결코 실현되지 않을 불완전한 현재진행형의 구조이다. 영성을 담은 건축물은 시간을 거듭하면서 종교적 권위와 신성의 영역에서 관광과 지역경제의 영역으로 넘겨진다. 절반만 실현된 가우디의 성당은 이제 가우디의 고유한 창작물에서 벗어난다. 오리지널이 가지는 권위와 유일성은 더 이상 이 성당에 해당되지 않는다. 많은 이들의 손에 재해석되고 덧붙여진 오염된 건축언어이기 때문이다.
슈가-코트
#1 VR, 인공지능, 클라우드 등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사이버네틱스의 세계에서 우리의 살과 뼈는 데이터의 연장선상에서 더 유능하고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 유동성의 세계는 장애물과 이음새 없이 매끈하게 연결되고 움직인다. 가상공간의 판타지가 현실공간에서도 이어지는 하이퍼 라이프스타일, 즉 서드라이프(Third Life)의 삶에서 우리의 몸은 easy하고 유능해졌다. 매끈하고 요철 없는 세계, 데이터와 코드, 기호로 감지되는 매트릭스의 세계가 펼쳐진다.
#2 액체적인 세계를 상상해보라. 무엇인가를 액상 설탕시럽에 데구르르 굴리면 몇 초 뒤 얇은 막이 형성되고 유리알 같은 고체가 생성된다. 형체 없는 글루 혹은 액체를 콸콸 쏟아서 유선형의 투명한 컨테이너에 담으면 액체는 그것에 따라 형태를 바꾼다. 또 액체는 영롱한 유리알 얼음처럼 금방 녹아버릴 수 있고, 충격을 주면 와장창 깨져버릴 수 있는 유약하고도 단단한 성질이다. 액체인 동시에 온도에 따라 고체가 되어버리고 담기는 틀에 따라 몸체를 바꾸는 상태를 반복한다.
#3 네트워크와 데이터가 흐르는 유동성 속에서 회화와 조각은 열을 가하면 액체가 되고 덩어리를 따라 고체가 되는 슈가의 상태를 반영할 수 있을까. 이러한 종류의 매체는 디지털 테크놀로지와 신체, 인지의 결합이 매끈하게 접속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오히려 손의 감각에 의해 그것을 다시 이어 붙이며, 매끈하게 처리되었던 이음새들을 드러내고 이질적인 소재와 결합하여 미디어 내지는 신체가 놓인 이질적 환경에 반응한다. 예술가의 신체는 시대착오적인 것을 통해 동시대의 정동을 탐구하고 채굴한다. 그것은 현대화의 감각을 반영하는 신체적인 반응인 동시에 포획되지 않으려는 움직임이다. 그것은 유령사과로, 100년 된 케이크로,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으로, 슈가 코트로 호환되며 모습을 바꿔 나타난다.
@StitchGroup
스티치그룹은 좁혀지지 않는 의견과 방사형으로 뻗는 관심사, 산재하는 목소리, 집중되지 않는 시간 안에서 거칠고 귀엽게 움직였다. 스티치그룹은 공적이면서도 사적인 관계다. 권세정과 권동현은 작업실을 공유하고 서로의 작업설치를 보조했던 조력 관계를 협업의 관계로 변모하였다. 권세정과 권동현은 권동현의 기존 작업을 확장하고 완결되지 않는 조각들로 변형하며 제3의 저자의 저작물을 만들었다. 소민경, 이유성은 서로의 드로잉을 교차한 패턴의 벽화 작업을 하였다. 그들은 처음에 함께 있는 사람들조차 아슬아슬하게 하는 긴장되는 대화를 나누었지만, 이러한 케미스트리는 서로의 주파수를 열어 전혀 다른 것을 만들어 냈다.
컨텍스트를 벗어난 것처럼 보이는 단어들의 조합과 부호의 연결은 이 동맹관계를 그대로 노출한다. 부호는 이질적인 세계를 내파하고 변이되는 것과 관련 있다. 장식과 같은 부호는 서로에 대한 희생과 양보 또는 보충을 암시한다. 그리고 그동안 던져진 이질적인 내용들을 어떻게 수식할지, 어떻게 배반할지, 또 결코 겹쳐지지 않은 상태 그 사이에서 왕복한다. 스티치그룹은 연결과 장식, 수식에 그치지 않는다. 이 동맹은 서로의 몸이 달라붙어버린 몸체 그 자체이다. 그동안 부단히 떠들었던 것이 엉겨 붙고, 또 어떤 것도 제거하지 않은 그 몸체를 수용한다. 교환, 공유, 수용, 분담, 연민, 사랑, 존경, 충돌, 비동의, 적대 등을 섞고 엮어낸 상태 그대로이다. 이러한 것들이 엉겨 붙은 몸체일 때만 이 동맹은 존재한다.
글. 노해나
참여작가: 권세정+권동현, 소민경, 이유성
기획: 노해나
디자인: 튤립파크
공간설치/영상기록: 톱니귀
사진: 홍철기
주최: 오퍼센트
트위터: @group_stitch
인스타그램: @from.gssg
출처: 오퍼센트
* 아트바바에 등록된 모든 이미지와 글의 저작권은 각 작가와 필자에게 있습니다.
운영시간
월요일 휴관
화요일 11:00 - 18:00
수요일 11:00 - 18:00
목요일 11:00 - 18:00
금요일 11:00 - 18:00
토요일 11:00 - 18:00
일요일 휴관
휴관: 일요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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