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안갤러리 서울
2018년 5월 10일 ~ 2018년 6월 26일
미니멀한 모노크롬 회화인 ‘실버 페인팅’으로 해외 미술계의 떠오르는 신예 스타로 주목 받고 있는 미국 작가 제이콥 카세이의 신작, 《Jacob Kassay》전이 오는 5월 10일부터 6월 26일까지 리안갤러리 서울에서 개최된다.
카세이는 회화와 조각은 물론 인터랙티브한 설치미술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작품과 작품, 작품과 그 작품이 위치하는 공간과의 상호작용을 야기하여 그에 반응하는 관객의 지각경험을 극대화시키는 실험을 지속하고 있다. 특히 이번에 선보이는 신작은 극도로 단순화된 형태의 흰색 모노크롬 회화이지만 회화 고유의 매체 특성을 넘어 조각적 특성을 수용함으로써 미니멀리즘의 계보를 잇는 동시에 회화라는 매체가 갖는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작가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실제로 작가는 환경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페인팅을 선택했다고 한다. 또한 회화 그 자체만을 다루기보다는 회화가 위치하게 될 장소의 여러 가지 흥미를 끄는 요소들에 대한 반응을 회화에 접목시켜 실현시키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여기에서 흥미를 끄는 요소란 전시 공간의 건축적 환경, 빛의 조건 등을 들 수 있는데, 이전의 실버 페인팅에서는 은색 표면에 나타나는 빛의 작용과 관객, 건축 공간의 반사이미지가 작품의 가변적 성격을 두드러지게 한 반면, 이번 작품에서는 오로지 형태의 상호작용과 그 지각 잠재성에 강조점을 두었다.
카세이의 작품이 단순히 회화라는 하나의 예술적 범주의 차원을 넘어서 회화와 조각의 탈 영역적 양식의 조형적 실험을 한다고 볼 수 있는 이유는 먼저 작가가 회화의 가장자리 틀을 다루는 방식에서 찾을 수 있다. 현대 회화사에서 그림의 엄격한 사각형 틀에서 벗어나 벽 공간으로의 확장을 시도한 예는 프랭크 스텔라(Frank Stella)의 회화 탐구에서 이미 견지된 바가 있지만 카세이의 경우는 조금 더 복잡한 양상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 직사각형을 기본형으로 하여 템플릿 자를 연상시키듯 한쪽 혹은 양쪽 가장자리 선이 오목하거나 볼록한 형태로 다양화된 이 작품들은 그것이 전시장 벽에 설치되는 방식에 따라 평면 벽의 2차원성 뿐만 아니라 공간의 3차원성까지도 어느 정도 회화의 맥락 안으로 개입시킨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반복적으로 설치된 미니멀리즘 조각을 연상시키는 작품들은 일관된 논리와 간격으로 전시장 벽면에 설치되어 작품과 작품 간의 연결고리를 생성시킨다.
전시 공간의 한 벽면에 나란히 걸린 두 점 혹은 세 점의 작품들은 일련의 통일성을 이루며 벽의 중심축을 기준으로 거울로 반사된 이미지와 같이 완벽한 대칭을 이루기도 하고, 비대칭의 관계를 형성하기도 한다. 한 작품에서 다른 작품으로 이어지는 형태의 논리적 전개 또한 맞물리는 가장자리 곡선의 형태에 따라 달라짐을 알 수 있는데, 오목-오목 형태의 경우는 대칭 관계를 이루고 있고 오목-볼록의 경우는 아치형 곡선이 평행 곡선을 그리듯 동어반복적(tautological) 양상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대칭 관계든 평행 관계든, 한 작품의 존재 방식이 연이은 다른 개별적 작품의 존재 방식에 즉각적인 반향을 일으키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 반응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각각의 작품들은 개별적 독립성을 지니는 동시에 서로 유기적으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상호작용 관계에 놓일 수 있게 된다.
회화의 사각형 틀의 엄격성을 깨뜨리는 이와 같은 작업은 일반적인 회화 감상 방식인 회화 평면의 중심에 시선을 고정하는 정면 응시를 방해하고 회화의 가장자리 틀로 시선을 먼저 집중시킨다. 더군다나 카세이는 회화 표면을 윤기 없는 완벽한 흰색 모노크롬으로 처리한 반면 프레임은 오크 목재를 사용하여 시선의 주목도가 자연스럽게 가장자리로 이끌리도록 배치하였다. 그리하여 작품과 작품 사이의 상호적 대응 관계의 곡선을 따라 궤적을 그리며 형성될 수 있는 잠재적 형태의 원, 평행 곡선의 도형 등 다양한 기하학적 형태가 연상되거나 추론될 수 있도록 한다. 이는 앞서 언급했듯이 언뜻 스텔라가 시도했던 회화 공간의 벽 공간으로의 확장으로 이해될 수 있는 여지를 남기지만, 카세이가 도입한 오크 프레임은 회화 평면 공간을 벽 공간과 완벽하게 분리된 공간으로 만든다. 여기에서 카세이 작품의 이중적 ‘모순’의 미학이 드러난다. 다시 말해서, 가장자리 틀의 변이가 작품 자체의 맥락을 넘어 다른 작품과의 관계를 통해 전시 공간의 3차원 영역으로의 확장성을 갖지만, 동시에 이 가장자리 틀은 오크 프레임에 의해 강조됨으로써 현전하는 각각의 독립된 작품으로서의 존재론적 가치를 유지할 수 있게 한다.
또한 카세이의 흰색 모노크롬 작품에서는 여러 예술가들에 의해 오래전부터 회화에서 탐구된 주제 중의 하나인 형상과 배경의 이분법적 구분의 문제가 대두된다. 흰색 표면은 형상이자 배경이고 오크 프레임은 단순한 틀인가? 아니면 오크 프레임으로 강조된 가장자리 선이 형상이고 회화의 표면이 배경인가? 흰색 모노크롬은 이브 클렝(Yves Klein)의 블루 모노크롬과 같은 완전한 빈 공간으로서의 극도의 비물질성을 드러내며 마치 벽 공간을 그린 듯이 벽 색채와 동일시되어 벽 공간으로 돌아가려는 환원적 성질을 나타내는 것처럼 보인다. 캔버스라는 물리적 실체가 존재함은 자명하지만 그와 상관없이 심정적으로는 마치 구멍이 뚫린 열린 공간처럼 인식될 여지도 있다. 다시 말해서 템플릿 자를 대고 “공간”에 도형의 외곽선을 그린 것과도 같은 느낌이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역설적으로 벽에 걸려 있는 독립된 오브제로서 캔버스의 표면 ‘그 자체’의 물질성을 더욱 명징하게 드러내는 방법이기도 한다. 나무 프레임에 의해 벽과 엄격하게 구분되어 이질화되며, 어떠한 표현적 성질도 철저하게 배제된 비개인적이고 비개성적인 극도의 순수성과 중립성을 가진 물질성을 의미한다. 이러한 모순되고 상반된 양면성에 대한 해답은 이를 지각하고 인식하는 관객의 몫일 것이다.
작품과 작품 사이의 상호적 특성에 따라 각각의 형태들은 다양하고 풍부한 시각적 리듬과 변주를 만들어 낸다. 대칭 혹은 비대칭의 관계를 형성하는 작품들은 벽의 사이 공간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물리력에 의해 회화의 가장자리가 밀려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당겨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한 이 작품들은 전시 공간에 분산된 여러 개의 퍼즐 조각처럼 보이기도 한다. 2차원의 벽면 공간에 설치된 2차원 평면 회화의 정면성에 국한됐다는 한계가 있고 3차원 공간의 한가운데에 놓여진 3차원 미니멀리즘 조각의 현상학적 지각 방식과 완벽하게 일치하지는 않더라도, 카세이의 회화는 단지 물리적 형태 그 자체에 국한되어 ‘무엇’을 보느냐의 문제보다는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를 더 중요시하도록 한다. 전시 공간의 어느 시점에서 어떠한 관점으로 얼마만큼의 시간성을 지속하는가에 따라 관객의 지각경험은 극대화되고 확정되지 않은 ‘빈 괄호’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경우의 수’를 통해 풍부하고 다채로운 가능성을 획득하게 된다. 따라서 이번 전시에서 각각의 관객들은 카세이가 창조한 회화작품이 유발하는 지각경험에 따라 자기만의 방식으로 회화작품의 퍼즐 조각을 이리저리 조합하고 구성하는 ‘내재적’ 형태성을 실험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리안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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