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SP
2026년 5월 7일 ~ 2026년 6월 6일
갤러리 SP는 3인의 젊은 페인터들의 유동하는 인물화를 소개하는 기획전 《무드 Mood》를 5월 7일부터 6월 6일까지 개최한다. 인물의 형상성은 오랫동안 인식의 기준이었다. 눈앞에 놓인 얼굴과 몸은 서로를 구분하는 안정된 단서였고, 그것은 이미지를 가늠하는 최소한의 기준이기도 했다. 그러나 당대의 이미지들은 쉽게 생성되고 변형되며, 그 출처와 진위는 불분명해졌다. 본 전시는 불확실한 이미지 시대 속 흩어지고 변화하는 인물화들을 불러 모으며, 그것이 과연 무엇을 촉발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에서 출발한다. 전시의 인물들은 재현에 대한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 실재와 얼마나 일치하는지 확인하는 질문 역시 무의미하다. 캔버스라는 지지체 위에 얹어진 물감과 행위자의 자유로운 제스처(gesture)가 만들어내는 비결정성으로 인해 인물은 진동하며 일시적으로 화면을 구성할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목적지 없는 여정과도 같기에 보는 이로 하여금 무한한 가능성을 읽어내도록 한다. 《무드 Mood》는 인물의 형상이 재현된 타자를 벗어나, 정동을 일으키는 촉매로 기능할 수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전시에 참여하는 세 작가는 모두 인간을 그리지만, 그 접근 방식은 서로 다르다. 윤미류의 회화는 가장 구체적인 장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그림 속 인물들은 설정된 상황 속에 배치된 존재들로, 이들은 공간과 사물, 빛과 색의 관계 안에서 연출적 장면을 이룬다. 그러나 장면들은 하나의 이야기로 수렴되지 않는다. 라이브 포토로 촬영된 사진을 여러 개의 캔버스에 나누어 빠른 필치로 옮기는 과정을 거치면서 인물은 역동하며 흐르는 존재로 이동한다. 이에 더해, 즉흥적 붓질로 배경과 인물을 경중 없이 대하는 회화적 태도는 그림 속 모든 행위소들을 태동하게 하며 화면 전체에 생기적 움직임을 부여한다. 윤미류의 인물화는 사진의 순간을 경유하지만, 특유의 물성과 궤적으로 인해 멈춰진 화면으로의 귀속을 비껴간다. 한편 송승은의 회화에서 인물은 애초에 분명한 주체로 포착되지 않는다. 잔해에서 솟아난 인물들은 파편화된 채 출몰했다가, 다시 색면의 시공 속으로 빨려들어 간다. 여기서 인물은 사실과 허구의 접속지점에서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글리치(glitch)에 가깝다. 아마 그의 인물들이 오류로 인한 버그처럼 보이는 이유는, 기화된 화면 사이로 출몰과 탈주를 반복하기 때문일 것이다. 송승은의 글레이징(glazing)된 화면과 점멸하는 존재는 형태로부터의 구속을 해방시키고, 환영으로의 잠재성을 가속화한다. 고경호의 회화는 이 두 그림 사이를 가로지른다. 그의 인물들은 개인적 서사에서 출발하지만, 얼굴의 특징은 지워진 채 윤곽만 남아있다.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익명의 형상들은 미시사적 이야기를 보다 너른 서사로 확장하며, 그 흐릿한 얼굴 위로 관람객 각자의 이야기를 대입하도록 만든다. 최종적으로 고경호의 그림에 축적된 사적 메시지는 색과 선에 의해 뭉개지고, 내용과 형식은 상보적 관계를 이루며 서로를 부각한다. 3인의 인물들은 각기 다른 밀도로 화면을 점유하지만, 공통적으로 완결 이전의 상태에 머문다. 그리고 그 여백의 틈으로 화가의 몸짓과 관람자의 시선은 엉겨 붙으며, 물질의 집약체인 회화는 비물질적 접촉의 단계로 도약한다.
관객은 이제 화면 속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분위기, 즉 무드(Mood)에 침윤하게 된다. 전시의 3인은 인물들을 특정한 서사를 매개하는 도구로 사용하지 않는다. 다만, 물감의 되직한 점성, 솟구치는 붓질, 캔버스 내/외부의 인간 존재 간의 거리감을 통해 일종의 정조를 형성해나간다. 그것은 이미지임에도, 관객의 신체에 닿으며 촉지각적 감응을 발생시킨다. 이는 세 작가의 인물 형상이 안정된 도착점보다는 불안정한 상상력을 지향함에서 비롯된다. 대상의 재현과 누락을 오가는 붓질로 일궈진 윤미류의 회화는 비서사적 무빙이미지의 연속된 스틸컷을 떠오르게 하며, 화려한 색면 사이로 반짝 등장하는 송승은의 인물들은 먼 과거의 잔상 혹은 도래할 미래적 순간을 연상시키며 그림을 비선형적 시간 속에 위치시킨다. 그리고 고경호의 지워진 얼굴들은 개인의 역사에 새겨진 인물들을 단초삼아 회화라는 장구한 매체에 대한 화가의 질문을 이어가며, 형상과 서사의 균형점을 찾아가려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처럼 본 전시의 참여 작가들은 인물화를 통해 회화가 감각을 조직하는 방식을 각기 다른 조형 언어로 실험한다. 제인 바넷은 배치의 우발성으로 인해 사물의 능력이 창발되는 순간 정동을 느낄 수 있으며, 이러한 떨림은 인간에게 황홀감을 느끼게 하고 행위 역량을 강화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회화적 물질로 이뤄진 인간 형상에서 파생되는 비언어적 감응. 아마 그것이 여기 그림들의 공통된 발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전시명 ‘무드’는 특정한 분위기를 지칭하지 않는다. 여린 면들의 중첩은, 성긴 붓질의 연속은, 기묘한 형상의 출현은 화면을 언제나 열어 놓기에. 그래서 이들의 그림은 무엇이든 불러낼 수 있다. 이는 근대 회화가 인물의 재현을 통해 서사를 구성해왔던 전통에서도, 형상을 해체하거나 제거함으로써 추상에 도달했던 전략에서도 물러나 있는 지점이다. 이번 전시의 얼굴과 몸들은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혹은 그 전의 감각을 관객의 신체에 접속시킨다. 본 전시는 인물이라는 ‘형상’을 완전히 폐기하지 않으면서 그것을 재현의 중심에서 이탈시켜 ‘형성’ 중인 상태로 바라본다. 그리하여 인물은 고정된 의미의 담지자가 아닌 화면 안팎의 감각을 연결하는 조율자로 자리하게 된다. 전시 《무드 mood》는 얼굴과 몸이 완결이 아닌 진동으로, 의미가 아닌 정동으로 남는 순간을 포착하고자 한다.
글 김민영 (갤러리에스피 큐레이터)
참여작가: 고경호, 윤미류, 송승은
출처: 갤러리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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