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로탕 삼청
2022년 10월 6일 ~ 2022년 11월 19일
ob, Sandbox, 2022. Oil and oil pastel on canvas. 130.3 × 194 cm ©2022 ob/Kaikai Kiki Co., Ltd. All Rights Reserved. Courtesy Perrotin
공허의 감수성: 세계에 대한 적대를 거부하며
권시우, 미술비평
정동(情動)이란, 개인과 그것의 외부에 있다고 상정된 세계 사이의 의도치 않은 불화를 발단으로 삼아, 개인을 엄습하는 불/특정한 감정의 형식에 가깝다. 그리고 개인은 정동을 매개로 세계와의 불화를 해결하는 대신, 대개 정동에 압도당한 채, 그러한 상태를 해소할 수 있는 방식을 모색한다. 이는 어쩌면 표현주의의 본질이다. 즉 표현주의가 고수하는 ‘과장된 내용’은, 사실상 세계 자체와는 무관하게, 세계에 대한 일종의 트라우마를 감정적으로 분출한 결과다. 반면 ob의 회화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소녀들은, 스스로를 과장하지 않은 채, 그저 프레임 너머의 ‘세계’를 무던하게 점유하고 있다.
프레임 너머의 ‘세계’는 때때로 지나치게 정적이고, 온화하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상주하는 외부의 세계로부터 격리돼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곳에는 분명 불화의 징후가 존재한다. 즉 모든 불화가 종식된 듯한 세계에서, 개인은 더 이상 자신의 실존을 의문시하지 않는다. 달리 말해 작중의 소녀들은 자신을 주체로 규정할 수 있는 역량을 상실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세계’와 융화한 채, 세계와의 불화를 빚어낼 만한 여지가 있는 자신의 존재를 희석시킨다.
결국 일련의 작업들은 기억을 계속 은폐하기 위해, 개인 혹은 그것이 담보하고 있는 주체성이 무화된 ‘세계’를 반복해서 구현한다. 이번 개인전 《Miniature Garden》은 그러한 시도의 연장선상에 있다.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작가는 ‘정원’이라는 공간을 상정한 채, 그곳으로 각기 다른 개인들을 불러 모은다. 그들에겐 주체적으로 시간을 견인할 수 있는 여지가 없다. 파스텔 톤으로 흐릿하게 채색된 풍경의 일부로서, 서로 (들리지 않는) 사담을 나누거나, 무언가를 채집하거나, 어딘가에 늘어져 있을 뿐이다. 결국 ‘정원’은 그런 식으로 정체된 시간을 포괄하기 위한 일종의 개념적인 범주로 기능하면서, 그곳에 가담한 개인들이 ‘세계’ 속으로 사라지기 직전의 상태를 유지한다.
‘정원’을 가꾸는 행위가 의미하는 바는, 작중의 개인을 위한 새로운 기원(起 源)을 조성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나에게 있어 정원은 현실에서 벗어나 개인의 세계를 생성할 수 있는 공간이다.
나의 근작들은 소설 <Tom’s Midnight Garden>이나 <The Secret Garden>과 같은 아동문학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황폐해진 정원을 직접 되살리 듯, 작품 속 정원의 울타리 안에서 개인은 타인과의 만남과 상호작용을 통해 정서적 성장을 이룬다. - ob
애초에 (소년 만화에서 통용되는) 성장-서사는 개인이 정동을 극복하기 위한 극적인 사건들의 연속이며, 어쩌면 작가는 일련의 작업들을 통해 그러한 서사를 위반하고 있다. 물론 후자는 세계와의 불화를 해결할 수 없지만, 그와 별개로 개인이 ‘세계’ 속으로 침잠해 가면서, 자신과 세계 사이를 영원히 중재하는 과정에 참여하게끔 만든다. 그러므로 작중의 개인들이 취하고 있는 모호한 제스처, 이를테면 자신이 방 안이나 탁자 위에 부려 놓은 상황에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모습은, 영원한 중재의 과정에서 점차 드러나는 공허를 연상케 한다. 그러나 이는 ‘세계’를 뒤늦게 부정하는 게 아니라, 작가가 공허를 매개로 개인들을 결속시키는 방식에 가깝다. 즉 그들은 프레임 차원에서 구현된 각기 다른 순간들 속에서, 공허를 함께 만끽하고 있다.
결국 이번 전시는 우리가 그 과정에서 발생한 공허의 감수성을 가늠하게끔 유도한다. 그리고 공허의 감수성은 더 이상 세계와 적대하지 않겠다는 개인의 의지를 유포하면서, 우리를 점차 프레임 너머의 세계로 회유한다.
작품 속 캐릭터들은 선박(컨테이너)과 같으며, 그 의미는 보는 사람의 존재에 의해 나타난다.
“보여지기 때문에 보인다”는 메커니즘이 보는 이들의 공감을 이끈다 믿는다.- ob
ob
1992년생 ob는 2010년 일본 SNS 세대와 함께 부상한 여러 작가 중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교토의 한 대학에 재학 중이던 그녀는 일러스트 커뮤니케이션 서비스인pixiv를통해또래의다른작가들과연락을취한후몇차례전시를 기획하고 진행했다. ob의 이런 시도는 많은 주목과 찬사를 받은《wassyoi》 라는 전시에서 정점에 다다랐는데, 전시명《wassyoi》는 일본에서 길거리 페스티벌이 열리면 흥겨운 취객들이 외치는 구호에서 비롯되었다. 비디오 게임과 소셜 미디어가 일상인 환경에서 성장한 신세대 작가 ob는 섬세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띤 작품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큰눈의 소녀를 통해 여성 정신세계의 몽환적 필터를 탐구한다. ob는 다수의 해외 아트 페어에 참여했다.
출처: 페로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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