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히읗
2026년 10월 16일 ~ 2026년 11월 21일
뒤엉킨 굉음 같은 소란함이 머릿속에 밀려온다. 우후죽순 지어지고 파괴되는 번화가들, 빠르게 사고팔리는 상품들 사이로 아득해진 정묘한 감각이 고인다. 한 걸음만 내디디면 닿을 수 있는 속도감에 뻗어가려는 욕망을 꿀꺽 삼켜 낸다. 가만히 서서 떠오르는 질문을 되뇐다. 손과 마음에 쥘 지식과 물질을 스스로 결정하는 다중적 경로를 발견할 수 있을까. 무엇이 삶의 규범을 조직하고 세계를 인식하는 틀을 꾸며 내는지, 그로 인해 우리가 소외시키고 유실해 온 것은 무엇인지를 어떻게 추적할 수 있을까.
《Organic Recipes》는 지식, 물질, 감각이 형성되는 경로를 각자의 방식으로 탐구하며, 고착된 인식 체계를 재고하는 오가영, 윤영빈, 이영, 한이경의 실천에 주목한다. 아주 먼 시공에서부터 밀접한 시공에 이르기까지, 네 작가는 삶의 정동이 깃든 사물을 작업의 소재로 소환한다. 특히 정형화된 시스템에 소비되기 전후의 물질과 이미지의 가변성을 재활성화하고, 새로운 관계망을 구축하는 유기적 변화를 모색한다.
윤영빈이 선보이는 ‘빛깔 연작’ 회화는 기성의 소비 체계가 지닌 상업적, 물질적 가치에 질문을 던진다. 〈260713–261008 구파발역 야채가게에서 구입한 부추와 호박잎 그리고 유통기한이 지난 홍차 빛의 풍경(협력: 머루, 비트, 시금치, 치자, 코치닐)〉(2026), 〈241231–250113 청량리농수산시장 3번 출구 할머님께 구입한 치자빛 노란 열매(협력: 머루, 비트, 시금치)〉(2025) 등은 지인이 수확한 열매, 주변 상권, 온라인에서 채집한 동식물 유기물에서 직접 추출, 여과하여 만든 안료로 제작했다. 이는 상업 상품과 색채 체계가 유도하는 기성 물감의 완벽함에서 이탈하여, 유기물이 머금었던 실제 빛과 시간성을 화면 위로 운반해 온다. 수제 안료의 원물이나 클립아트 이미지를 모방하며 실제 대상과 그려진 형태 사이의 어색한 거리감을 연출한 화면들은 선명한 채도와 정량적 기준으로 대변되는 산업 시스템을 우회하려는 시도다.
가공된 완벽함을 의심하는 윤영빈과 유사하게, 이영은 파스타, 고무줄, 밀랍, 석고, 코르크 등 일상 재료들이 공유하는 형태적, 성질적 유비에 주목하며 조각의 (비)완결성을 유희적으로 횡단한다. 단일 사물의 닮은꼴을 연쇄하는 그의 실험은 물질간 상호 참조의 맥락을 재구성한다. 〈Biscuit〉(2022)는 극심한 허기에 눈앞의 코르크를 보며 쌉싸름한 커피와 젖은 비스킷을 상상한 경험에서 출발한다. 그는 얇은 코르크판을 겹겹이 붙여 만든 덩어리를 로투스 형태로 깎으며, 착각이 불러일으킨 감각의 전환을 형상화했다. 그 연쇄적 연상을 이어받아 석고를 섞는 법과 파스타를 반죽하는 법을 교차시킨 〈두 개의 레시피, 돌〉(2026), 과거 자신의 퍼포먼스에서 다리미로 녹여 파스타 반죽처럼 만든 밀랍 일부를 다시 알루미늄으로 치환한 〈녹이기/굳히기〉(2026)가 더해진다. 붙이고, 녹이고, 굳히고, 누르며 얽히고설킨 유사성을 연속하는 행위 속에서, 그의 조각들은 물질의 비선형적 이행을 조직해 나가는 가변적 조리법처럼 다가온다.
그런 한편, 오가영은 소재의 출처를 도시 생활로 확장하여 전형적인 가정의 기물, 이방인의 시선, 도심 저변의 비인간 생태를 관찰한다. 〈식탁 위 접시들(조약돌)〉(2026), 〈식탁 위 접시들(복숭아 씨)〉(2026), 〈접시 사이〉(2026) 등은 종이접시에 잎사귀 패턴과 뉴욕 바닷가의 조약돌, 조개껍질, 집 내부로 들어온 쥐, 어린 시절 그릇에 담아 먹던 백도 씨앗 등을 포트메리온 접시 조각과 결합한 콜라주다. 이는 한국 주방마다 표준처럼 자리하던 ‘포트메리온’ 그릇에 대한 사적 기억, 이상적 자연과 공동체를 꿈꾸며 조성된 영국 포트메리온 빌리지의 기원, 그리고 거주지인 뉴욕이라는 거대한 스펙터클을 교차시킨다. 〈뉴욕 월계수잎〉(2026), 〈브루클린 실잠자리〉(2026), 〈마우스 인 더 하우스〉(2026)은 그가 도시를 통과하며 수집한 미시적 생태와 파편적 경험을 중첩한다. 익숙하게 향수하는 기억과 낯설게 찾아오는 현실을 하나의 플레이트에 올리며, 그는 도시의 속도감에서 감각하는 피로와 만족, 외부 환경에 반응하는 개인의 연약함, 화려함에 가려진 비인간 존재를 동일한 위상으로 불러들인다.
세 작가가 재료의 물성과 사물의 배치에 집중한다면, 한이경은 이를 언어적 차원으로 확장한다. 그는 캐스팅과 번역 과정을 통해 대상을 둘러싼 분류 체계의 모호함을 직시하며 이름과 물성 사이의 간극을 고찰한다. 프랑스의 ‘중국 배추’와 한국의 ‘양배추’처럼 문화적 지형에 따라 분화되는 호명의 다의성을 다룬 석고 조각 〈Chinese Cabbage ?!〉(2023)와 아보카도의 단단한 겉과 부드러운 속이라는 양면적 물성을 실리콘으로 통합한 〈남겨진 것들〉(2022)은 사물을 대하는 관습적인 시선을 탐구한다. 나아가 천 개의 성냥갑 위로 발화 직전의 폭죽 이미지를 인쇄한 〈Timed Tension〉(2026)은 표면의 서사와 달리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한 성냥갑 속 성냥의 상태를 빌려, 가능성과 중단 사이를 오가며 다가오지 않은 시간을 상상하게 만든다. ‘읽기-소화하기-번역하기’의 단계를 거치는 그의 조형 방식은 대상을 빠르게 식별하고 소비하도록 부추기는 뚜렷한 사회적 코드를 흐릿한 층위로 뒤섞는다.
이로써 《Organic Recipes》는 도시의 소란과 속도에 휘말리지 않고 주체적 시각으로 지식과 물질을 다듬어 낸 네 작가의 실천을 제안한다. 할렘 129번가에서 목격한 자동차 흠집에서 가장 비정형적인 동태를 발견한 오가영의 〈W 129th St〉(2023)처럼, 이들이 건네는 ‘유기적 조리법’은 표준화된 매뉴얼로부터 물러난 예측불가의 시간들을 고안하는 방안이다. 이곳에 뒤엉킨 그 가능성들 속에서, 정해진 지침을 비켜난 자신만의 레시피를 손과 마음으로 써 내려 가기를 바란다.
글: 김진주
참여작가: 오가영, 윤영빈, 이영, 한이경
출처: 상히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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