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아트스페이스
2016년 8월 16일 ~ 2016년 8월 22일
Chez paul, 215×110×163cm, 종이, 나무, 2016
‘규정할 수 없음’에 대한 질문들
Paul Lee는 이영호 작가의 예명이자 특정한 경향의 작업을 하는 경향성을 보여주기도 하는 작가의 한 일면이다. 작가는 이영호, 하건주, Paul Lee라는 세 가지의 예명을 통해 활동하고 있다. 이렇게 몇 가지 복수적 상황을 보여주는 것은 작가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부분만이 아니다. 그의 작업 주제나 내용 그리고 작업재료 역시 그러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전시되는 그의 작업에서는 사람의 얼굴이나 집 그리고 축음기 모양의 확성기를 종이를 사용하여 그대로 닮게 만드는 것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종이는 펼쳐지면 일상 속의 종이가 되고, 확성기는 실제로 핸드폰과 같은 소리 가 나는 기기를 집어 넣으면 소리를 크게 확대시키는 기능을 해내며, 집 역시 들어가서 쉴 수 있는 기능을 할 수 있다. 작가는 어떤 형상을 닮게 하여 환영을 만들어내고 있는 듯 하지만 환영이 아니라 일상의 현실에 필요한 사물을 만들어내고 있기도 한 것이다. 혹자는 이것이 조각품인지 공예품인지를 묻는 이도 있을 듯 하다. 사실 많은 사람들은 나름의 카테고리를 가지고 자신이 접하는 사물이나 사건을 상당히 오랫동안 주위에서 사용되어 왔던 개념이나 관념에 의해 정의하거나 구분하려고 하는 경향성이 있다. 이러한 경향성은 이성적이고 분석적인 사고를 강화시킨 근대 이후의 시대적 흐름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원화된 후기 현대사회로 오면서 이러한 부분에 대하여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은 이미 많은 언급들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과거의 사회적 관습에서 자유롭지만은 않다.
작가는 이러한 지점과 관련하여 자신의 발언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어느 카테고리에 들어가는가?’ 혹은 ‘이것의 정체는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들에 익숙해진 이들에게 방향을 바꿔 그러한 카테고리나 정체를 규정하는 근거들이 적절한 것인지에 대해 역으로 질문하고 있는 것 같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러한 맥락에서 예술과 일상,주체와 객체, 사적인 혹은 공적인 존재로서의 인간의 위치에 대한 문제까지를 거론하면서 바라보는 대상의 정체를 구분하는 습관들을 지속적으로 흔들어냄으로써 그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작가를 발견하게 된다.그러므로 세 가지 예명을 사용하면서 복수적 주체에 의한 다양한 정체성을 드러내 보이고 있는 것은 이미 그가 제안하고 있는‘규정할 수 없음’에 대한 작가의 근본적 태도가 무엇인지를 공개적으로 천명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종이라는 2차원에서 무계획적으로 3차원을 구축해내고 이미 어느 곳에선가 본듯한 특정한 사람이나 사물을 재현해 보여주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것의 원본은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으며 그것들은 재현된 것들이 아니라 생성된 것들이기 때문이다.
이 즈음에서는 디지털 기반의 사이버스페이스에서의 원본 없는 복제물들을 떠올리게 될 수도 있겠으나 그의 작업은 철저히 아날로그적이다. 심지어 폐지나 재생용지를 떠올리게 만드는 크라프트지나 골판지를 사용한다. 그런데 요즈음은 재생용지로 보이는 이 종이들도 천연 재료인 펄프를 더 많이 쓴다고 하니 그의 작업 재료가 천연 재료인지 재생된 재료인지도 불분명하다. 작가는 이러한 재료를 사용하고 남은 박스 골판지와 섞어서 사용하기 때문에 재료의 정체 역시 모호하기 이를 데 없다. 작가는 이와 같이 끊임없이 기존의 정의나 규칙들을 넘나들면서 규정하는 행위나 관습에 대해 되돌아보게 하는 볼거리를 제공한다. 이때 그의 작업 어법은 직설적이기 보다는 상당히 완곡하고 친근한 방식이 특징이다. 주위에서 흔히 보아왔던 하회탈처럼 심하게 구겨져 있는 종이얼굴을 볼 때에도 그렇지만 종이로 만들어진 집에 들어가보고 종이 확성기를 직접 사용해 보다 보면 디지털 기반의 현대 사회가 잊어왔던 감각들을 재생시키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작가는 이렇게 감각의 영역으로부터 기존 관념의 경계들을 무너뜨린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작가가 주제로 표명한 사적이고 공적인 영역과 같은 구분도 사실상 작가에게 있어서는 무의미해 보일 수 있다. 이와 같은 표현을 사용하는 원인을 들춰보면 작가는 오히려 이 세계에 대한 총체적 시각을 요청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작가의 복수화된 작가적 정체성, 작업방식의 탈경계적 경향,그리고 재료나 소재의 복고적 방식 등 다양한 변조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그의 언어유희와 같은 작업 태도는 결국 경계를 모호하게 하기 위한 작가적 전략이며, 규정이나 정의에 의해 가둬둘 수 없는 예술과 인간의 위치를 묻고자 하는 작가의 질문 방식이었음을 그의 작업은 확인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
사이미술연구소 이승훈

Paper horn (with case),14×14×9cm (22×16×12cm), 종이, 금속 파이프, 2015

Paper horn, 47×19×33cm, 종이, 나무, 2016

Emotional faces, 25×24×7cm, 종이, 2014

Expression of face, 21×37×6cm, 종이, 2014
출처 - 사이아트스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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