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너아트스페이스
2012년 12월 7일 ~ 2013년 1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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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적 머리카락으로 뒤 덮인 두꺼운 머리 속을 벗어나려는 여성의 얼굴, 조용하고 투명한 달걀의 형태. 미스터리로 가득 찬 공간에서 종들의 진화는 여성을 통해 완성될 것이다.
만 레이 ‘흑과 백’, 1926년 5월호, 프렌치 보그
문명과 야만, 남성과 여성, 서구과 비서구, 흑과 백. 서구문명의 이분법에 대한 믿음은 나와 타자를 명백히 구분 짓는다. 20세기 초 패션잡지에서 드러난 서구문화의 여성에 대한 시각은 여성을 남성보다 더 원초적이며 본능적인 존재로, 자연에 더 가깝기에 진화하기 쉬운 존재로 치부하는 것이었다. 타자에 대한 환상은 이를 찾아 떠나는 여행들로 귀결되곤 했으며, 유럽의 남성은 본능적이며 원시적 신비의 상태를 찾아 문명을 버리고 이국으로 향했다. 1890년 타히티로 간 고갱이 그랬고, <암흑의 핵심 heart of darkness (1899)>에서 원시에 대한 무한한 호기심을 정직하게 묘사한 조지프 콘래드가 그랬다.
하지만, 두 번의 세계대전 이후 이러한 이분법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1949년 시몬 드 보부아르가 <제2의 성>에서 ‘여성들은 여성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선언했을 때, 여성성은 문화적 사회적 영역으로 재해석 되었으며, 젠더는 새로운 가치가 되었다. 또한, 아시아는 정치 경제 사회발전을 통해 비서구의 원시성을 전복시켰고, 새로운 타자로 탄생하였다.
사샤 폴은 서구의 흔들리는 이분법에 대한 현실을 포착하며, 새로운 ‘타자’를 기록한다. 작가는 2004년 이후 아시아를 지속적으로 방문하며, 과거 원시와 야만이라는 미지의 세계로 떠나온 유럽 남성의 시선과는 다른 경험을 한다. 인디언처럼 살면서 인디언이 되고자 했던 독일인들을 영상에 담은 설치작업 <독일 인디언German Indian>은 나와 타자의 구분이 모호해진 현 상황을 조망한다. 이미 문명화된 인디언들은 과거의 생활방식을 유지하고 있지 않음에도, 본인이 인디언보다 더 인디언적이라고 여기는 이 독일인의 사라진 미지에 대한 페티시를 표출한다.
이번 개인전은 크게 세가지 예술 작품을 차용하며 출발한다. 만 레이의 <흑과 백 Noire et Blanche> 사진 작업들, 테시가하라의 영화 <타인의 얼굴 Face of Another>과 알랑 레네와 크리스 마커의 <조각상 또한 죽는다 Statues also Die>이 그것이다. 이 작품들은 후기 식민주의적 관점을 당시의 관점에서 문제 제기한 시선들을, 2012년 현재의 아시아, 서울에서 전용한다.
<흑과 백>은 만레이의 동명의 사진 시리즈들을 한국의 모델들로 대체하여 촬영한 작업들이다. 흑과 백이라는 타이틀이 상징하듯, 하얀 피부를 한 한국 여성의 얼굴과 검은 아프리카 마스크의 대비는 여전히 강렬하다. 예술 오브제가 된 죽은 마스크와 살아있는 여성의 얼굴의 대비는 성적이며 인종적인 ‘다름’을 문화적으로 연계하여 관계를 설정한다. 하지만 흥미로운 사실은, 서구적 미에 익숙해진 한국 여성의 화장한 얼굴은 만레이의 작품 속 키키 드 몽파르나스의 모습과 사뭇 닮아있는 점이다. 아시아라는 서구적 시선에 의해 대상화 되었던 오브제는 사진 밖을 바라보며, 사진 밖 세계를 닮아가고 있다.
<조각상 또한 죽는다>는 1953년 제작된 동명의 다큐멘터리에서 출발한다. ‘아프리카 조각상이 서구의 미술관에서 관람 대상으로 전락하며 죽었다’고 선언하는 이 영상은 비서구의 유물들이 어떻게 서구의 박물관에 입성하는지를 비평한다. 사샤 폴은 아프리카의 유물이나 토템 석상들과 같은 고고학적 유물 대신, 전자 기기의 빈 상자로 그 대상을 전이한다. 스티로폼과 카드보드 상자들이 빛과 그림자의 패턴에 따라 변화하는 모습을 담은 16mm 영화는 비어버린 페티시의 대상을 기록하는 듯 하다. 작가는 또한 윈도우에 스티로폼 박스로 만든 램프를 설치한다.
<타인의 얼굴>은 아베 코보의 동명 소설을 1966년 영화화한 것으로, 전후 일본에서 화재로 얼굴을 잃어버린 주인공이 실재와 똑같은 마스크 형태의 새 얼굴을 얻는 이야기를 다룬다. 작가는 주인공 남자가 아내와 차를 마시는 거실의 한 장면을 윈도우 갤러리에 배치한다. 수평적으로 둘을 바라보는 카메라 앵글 속에서 기모노를 입은 아내와 양복을 입은 채 머리를 붕대로 동여맨 남편, 그 뒤로 보이는 찬장 속 토템적인 석상들 사이로 기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전후 끊임없이 변하는 도시 속에서 모더니즘적 정체성을 새롭게 구축할 것을 요구 받는 개인은 고통을 받는다.
이번 전시는 응시하는 자와 시선을 되받는 자 사이의 새롭게 정립되는 관계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콜럼버스의 미국 ‘발견’한 이래, 시선의 문제는 시간과 공간, 젠더, 인종, 계급의 문제를 분리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내가 바라보는 세상은 우리가 사진 속 한 여인을 바라볼 때, 그 응시의 태도와 힘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화면 속 여인이 우리를 응시하며 바뀌어 간다는 사실이다.
글: 양지윤, 코너 아트스페이스 디렉터
작가 소개
사샤 폴은 프랑크푸르트 미술대학과 암스테르담의 라익스아카데미를 졸업하였다. 2005년 쌈지레지던시에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한국과 관련된 다양한 작업을 진행하여 왔으며, 현재 한국-독일 교류프로그램인 Transfer Korea-NRW에 참여 중이다. 2012년 제 58회 오버하우젠 단편영화제에서 본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다양한 개인전과 그룹전에 참여하여 왔다.
http://www.saschapohle.net/
출처 : 코너아트스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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