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머 홀 '18
2018년 7월 13일 ~ 2018년 7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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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타인의 얼굴을 그릴 때 조금씩 저 자신의 얼굴을 닮게끔 그린다는 속설은, 그리는 자의 앞에 놓여진, 가상의 유리창을 연상케 한다. 이 유리창은 투명도나 빛의 반사율에 따라 때로는 유리가 부재하는 창틀처럼 느껴질 것이며, 때로는 거울처럼 느껴질 것이다. 일반적으로 보는 쪽과 보여지는 쪽의 상이 동시에 비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유리를 거쳐 인지되는 풍경은 상호간의 다중성을 반영하리라 추측해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유리창은 말하자면, 감각적인 차원에서 특정한 시(視)점에 내재된 조형적 체계와 외부의 조형적 질서가 상호 간섭하는, 추상적 시공의 단면에 가깝다. 만약 회화를 통해 작가의 창에 비친 양쪽의 조형을 얼마간 가늠할 수 있다면, 그 중심축을 무엇으로 삼을 수 있을까.
AS SMALL AS IT WORKS는 캔버스에 투영된 작가들의 조형적 스케일에 대한 전시이다.
전시에서는 캔버스의 크기를 중심축으로 삼아, 두가지 차원에서의 스케일을 살핀다. 하나는 작가의 조형체계가 캔버스의 크기 안에서 갖는 스케일이다. 회화 작가들은 고유의 조형적 단위들과 그에 따른 규칙들을 구축한다. 이 조형적 단위들은 점,선,면과 같은 원초적인 조형일 수도 있지만, 붓질이거나, 색채거나, 재현된 이미지거나, 미술사적인 도상일 수도 있으며,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기초한 알고리듬의 재연이거나 회화의 조건 그 자체일 수도 있다. 각 단위의 종류와 조합에 따라 규칙도 변화하고, 규칙에 따라 의미화되는 과정도 달라질 것이다. 이와 같이 조형적 요소들을 연결짓는 체계는 대체로 추상적인 형태로서 조형되지만, 회화의 조형성은 물질적이고 구체적인 제약 속에서 가까스로 구현되는 것이다. 따라서 작가의 조형 체계가 회화 형식을 통해 시각적으로 물화되는 과정에서는 어떤 종류의 감각적 낙차가 발생하기 마련이고, 이 낙차의 폭을 가늠할 수 있는 물리적 지표 중 하나는 캔버스의 크기다.
다른 하나는 작업실과 전시장이라는 각각의 공간에서 캔버스의 크기가 갖는 스케일이다. 회화 작가들에게 작업실이란 창작을 위해 절대적으로 중요한 조건이자 기반이다. 그들은 제한적인 공간 안에서의 지속적인 생산활동을 위해 공간의 적절한 활용 방식을 고민하고, 그에 따라 작업의 동선을 구축한다. 그러나 이러한 최적화의 과정은 언제나 불완전하며, 작업실의 풍경은 지속적으로 변화한다. 그 중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있다면 그림을 걸 수 있는 벽의 형태이다. 반드시 캔버스를 벽에 걸어둔 상태에서 작업하지는 않더라도, 조형성에 대한 입체적인 판단을 내리기 위해 작품을 벽에 걸어두고 전후좌우로 움직이며 다중적 시점으로 작업을 관조하고자 애쓰게 된다. 이때 벽의 형태는 작가가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캔버스를 둘러싼 또 하나의 프레임이 된다. 벽과 작업이 맺는 조형적 관계는 전시공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작가는 전시장의 성격과 형태에 따라, 전시할 작품의 스케일과 개수를 결정한다. 때문에 작업공간에서 작품의 스케일을 살피는 것은, 전시공간에서 작품이 갖는 스케일과도 연관을 갖는다. 만약 작가가 작업실에서의 조형적인 스케일과 상관없이 캔버스의 크기를 결정한다면, 특정 공간에서 갖게 될 스케일을 상정하며 작업하는 것이기에 그 함의를 추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전시장에 놓인 작가별 인터뷰를 보면 알 수 있듯,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다섯 명의 작가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캔버스의 크기와 조형적 스케일의 관계를 염두에 둔 작업을 전개해 왔다. 권세진은 서울로 작업실을 옮기게 되면서 공간의 스케일이 급격히 줄어들었으나 그로부터 어느정도 자유로워질 수 있게끔 새로운 규칙과 형식을 고안하고, 그에 적합한 작업의 스케일과 재료의 물성, 이미지의 비율 등을 고민한다. 비슷한 상황에 처한 임창곤의 경우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고 캔버스의 크기는 줄이되 기존의 연작에서 스트로크를 중심으로 구사했던 회화적 신체 표현들을 어떻게든 유지하고자 고군분투하는 반면, 이환희는 스트로크의 매스에 대한 입체적 접근을 바탕으로, 캔버스 스케일에 따라 변화하는 감각적 양태를 다시 조형적 요소로 끌어들인다. 이나하가 디지털이미지와 색면회화라는 이질적인 이미지-존재방식을 연결짓기 위해 전시장 벽의 크기와 캔버스의 단위를 작업의 조건으로 삼는다면, 이상훈은 직접 설계한 시스템과 회화 구조의 견고함을 맞물리기 위해 캔버스 제작부터 회화표면까지의 모든 공정에 걸쳐 물질과의 사투를 벌인다. 그러한 결과로서 도출된 디테일들이 갖는 조형성에는, 제작하는 과정에 존재했던 온갖 도구들의 물질적 스케일이 연쇄적으로 반영되어 있다.
다니엘뷔렌은 1971년의 글 <The Function of the Studio>에서 그가 어린시절 리서치를 위해 여러 작가들의 작업실을 방문해서 작품을 대면했을 때의 느꼈던 실재감에 대해 회고한다. 그는 작업실에서만 볼 수 있는 미적인 다양성, 그 각각의 특성과 풍부함, 그리고 진실성 등을 말하며 그 모든 것들은 작품이 작업실 바깥을 벗어나는 순간 사라져버린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글이 1971년에 쓰여졌음에도, 현재의 작가와 작업실은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듯 하다. 다니엘 뷔렌 역시 먼 훗날(2007년) 당시를 회고하며 새롭게 쓴 글 <The Function of the Studio Revisited>에서, 작업실의 형태나 유형이 다양화되었음에도 여전히 작업실은 작업의 형식에 영향을 미치며, 작업실을 둘러싼 시스템은 그 당시와 거의 동일한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인정한다.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예나 지금이나 작업실과 맺는 미술가들의 작업방식이 동일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이, 작업실 공간에 깃들어 있는 작업의 진실성과 더불어, 작업을 지속하게 만드는 조형에 대한 정념을 방증한다는 점이다.
미술관이 개별 작품들의 특수성을 존중하는 척 하지만 사실은 제도적 프레임에 끼워맞추어 천편일률적으로 늘어놓을 뿐이라는, 따라서 작업실에서 반출된 작품들은 언제나 위조품으로 전락하고 미술관은 묘지가 된다는 다니엘 뷔렌의 오래된 비판과는 별개로, 동시대의 회화는 새로운 종류의 위기에 처해있다. 이제는 예술의 영역뿐 아니라 삶의 모든 조형적 순간들이, 미술관이 아닌 일상 속에서, 맥락없이 진열된 채 소비되고 있으며, 그 속도가 가속화되면 될수록, 사람들은 이미지가 조형되는 과정에 점점 더 무지해져간다. 6-70년대의 미술인들이, 작업공간에서의 흔적들을 통해 과정을 인식할 때만 성립될 수 있는 작품의 실재성을 간과했었다면, 동시대의 미술인들은 회화가 물질적인 구조를 지닌 정념의 산물이라는 진실조차도 지나친다. 이와 같이 각각의 시대에서 평행하게 흐르고 있는 인식론적 난관은, 결과적으로 공간과 매체가 조형을 지탱하고 있는 방식의 유사성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든다. 어쩌면 작품과 작업 공간의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어떤 리얼리티를, 화면과 캔버스라는 공간이 맺는 관계와 겹쳐 볼 수 있지 않을까?


참여작가: 권세진, 이나하, 이상훈, 이환희, 임창곤
기획: 박정우
그래픽디자인:이재환
촬영:고정균
문의: asaiw.summerhall.1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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